바로 현행 선거제도를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바꿔야 한다는 제안이다. 왜냐하면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도입한 선거제도 가운데 가장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선거방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지역주의의 폐해와 세대 간의 견해차가 큰 나라에서는 더욱 도입의 필요성이 절실한 제도다.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왜 가장 합리적이며 효율적인가를 보자.
첫째, 독일식 정당명부제의 핵심은 정당지지율(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수를 배분하는 원칙에 있다. 한 마디로 의미 없는 표, 즉 사표(死票)를 가장 효과적으로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인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지역구 소선구제는 후보들이 난립한 경우, 패배한 후보를 지지한 수많은 표들이 필연적으로 사표가 되어버리는 구조를 갖고 있다. 또한 해당 회기에 어떤 정당에 결원이 생길 경우, 비례대표 후보들이 순번대로 그 자리를 메우도록 되어 있어 번거로운 보궐선거를 따로 실시할 필요가 없다.
둘째, 독일식 정당명부제에서는 정당지지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므로,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각 정당의 정강 정책과 공약 내용에 각별히 주목하고 서로 비교하게 된다. 이로써 특정 인물의 카리스마나 인기가 아니라, 이념과 정책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는 진정한 '정당 정치'가 뿌리 내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셋째,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국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을 고양시키는 데도 매우 효과적이다. 국민들은 이제 선거가 실시되기 전에 지상파 방송을 통해서 중계되는 정강 정책 토론회만 2~3회 시청하면, 각 정당의 노선과 차이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고, 따라서 훨씬 더 주체적이며 자율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선거철마다 동네 큰 건물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자화자찬 현수막'을 더이상 볼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넷째, 정강 정책 중심의 정당 홍보가 활성화됨으로써,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기득권 정당이 아닌 새로운 정치 세력이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훨씬 더 공정하게 보장해 줄 수 있다. 이것은 선거제도와 직접 관련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참정권 보장은 물론, 한 사회 전체의 정치적 활력과 역동성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장점이다. 한 사회와 문화의 발전은 창의적인 정치 프로그램의 실현 가능성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국민들이 각 당의 정강 정책을 분명하게 비교할 수 있음으로써, 독일식 정당명부제에서는 특정 정당이 과반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획득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에 따라 정당 독재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고, 합리적 토론과 합의에 의한 정당들 사이의 정책 연대를 자연스럽게 촉진하게 된다. 우리 정치 현실에서 이것이 얼마나 필요하고 강화돼야 할 정치 행위인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렇듯 장점이 많은 제도를 왜 지금까지 도입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그 어느 정부와 어느 정당도 진정으로 국민의 편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 20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우리 사회와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여야의 득실과 권력이동을 따지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정당 정치와 국가의 미래가 걸린 선거법 개정을 본격적으로 공론화해야 할 것이다.
하선규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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