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문재인을 '유약하다'라는 프레임에 가두려는 사람들이 늘었는데 우리 정치가 너무 오랫동안 제왕적 카리스마를 가진 대통령에게 끌려다녀서 합리적이고 치우치지 않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는 정치인을 낯설어하거나 or 문재인의 면면을 제대로 꿰뚫어 보지 않은 분들인 것 같다.
문재인의 20대는 유신독재,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살았고 반평생을 인권변호사로 약자를 보호하며 살았다. 그럼에도 권력욕이 없었다. 노무현은 문재인을 가르켜 이렇게 말했다.
"나보다 나이는 적지만 언제나 냉정하고 신중한 사람이고 권세나 명예로부터 초연한 사람이었다."
1988년 김영삼은 부산의 잘 나가는 인권변호사 문재인,노무현,김광일에게 국회의원 영입 제안을 했지만 문재인은 유일하게 정치입문을 거절하고 그의 길을 걸어갔다.
이 후에도 정치권으로부터 숱하게 러브콜을 받았지만 뜻을 꺽지 않았다. 그런 그를 계속 정치로 불러들였던 사람이 노무현이었다. 대통령 당선 이후 노무현은 다시 변호사로 돌아가겠다는 문재인에게 '나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으면 끝까지 책임지라'며 설득했고 결국 참여정부의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냈다.
문재인은 결벽스러울만큼 자기검열이 심한 사람인데 청와대 재직시절 부정청탁을 받지 않기 위해 동창들을 멀리했고 아내의 백화점 출입도 허용하지 않았다.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단 한차례의 식사나 환담 자리를 갖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민정수석으로 내정된 이후에는 휴일도 없이 막중한 업무를 처리하느라 과로가 누적돼서 잇몸병이 생겼고 치아를 10개를 뽑아야했다. 남들은 잔뜩 긴장하며 받는 치과치료를 잠에 골아떨어져서 받을 정도였다.
사표를 내고 잠시 휴식을 가지기도 했지만 노무현에겐 문재인이 필요했고 문재인은 노무현을 도와야했다.
참여정부가 막을 내리자 그는 첩첩산중 시골마을로 내려갔다. 함께 낙향한 대통령과 참여정부 참모진들은 농사나 지으면서 소박하게 사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2009년 5월 23일 1년만에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노무현의 서거 전 검찰의 짜맞추기식 수사에 분노한 문재인은 "검찰의 들러리로 죄 없는 실무자들을 괴롭히지 말고 차라리 나를 소환하라"며 울분을 토했다.
버틸거라 믿었던 인생에 오랜 동반자가 눈 앞에서 허무하게 쓰러져갔다.
사람들은 문재인이 상주로서 묵묵히 장례를 치르고 의연했던 모습만 기억하지만 그는 자신이 여러가지 결정을 해야했던 첫 날을 제외하고 장례기간 내내 눈물을 쏟아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고 노제 때는 시청 앞 무대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대통령 서거 2년 뒤 그가 출간한 '운명'이라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소회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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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이 많고 평탄치 않은 삶이었다. 돌아보면 신의 섭리 혹은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 자리로 이끌어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한가운데에 노무현 변호사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는 나보다 더 어렵게 자랐고 대학도 갈 수 없었다. 어려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나보다훨씬 뜨거웠고, 돕는 것도 훨씬 치열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 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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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야권의 구원투수로 떠오르며 2012년 4.11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 되었고 그해 9월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 짧은 정치 이력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치러야 했던 선거였다.48% 야권 역대 최다득표였지만 뼈아픈 패배를 맛봤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했다. 총선에 실패하고 당이 위기에 봉착하는 등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그 위기를 넘기고 현 야권유력 대선 주자로 설 수 있었던 과정은 무엇인가? 민주당의 당대표가 되고 나서 그가 한 일은 대충 이러하다.
1.당의 지출내역들을 투명하게 공개
2.탕평인사를 통해 당직자들을 전 계파에서 골고루 등용
3.공천을 시스템에 맡겨 계파정치를 청산
4.공천평가위 외부전문가들로 구성해서 엄정한 평가
5.혁신안을 중앙위에 통과시켜 당헌 당규로 정함
(그간 누구도 하지 못한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한다)
6.총선 6개월 전 인재영입 TF가동
-1000명 데이터 베이스 구축
-검증 후 인재영입
7.네트워크정당을 위해 관련법을 개정시켜
온라인입당 가능하게 함
8.생활임금제 추진
9.디지털소통위원회 만들어 네트워크정당 기틀마련
10.을지로위원회 전국단위로 격상
11.호남민심을 제대로 듣고 개선하기 위해 호남특위구성
12.경제살리기 위원회 설치
13.더불어민주당 사무당직자 공채
14.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특별법 통과
15.고리원전 폐쇄 주도
등등..
그는 알려진 대로 원리원칙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당을 투명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일부 의원들의 옹졸한 공격에도 타협 하지 않았다.
"기득권을 지키고 공천 지분권을 챙기기 위해
지도부를 흔들거나 당을 흔드는 사람들과 타협 할 생각이 없습니다. 정치를 안하면 안했지. 당대표직을 온존하기 위해 그런 부조리나 불합리와 타협하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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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위안부합의,국정교과서,노동개악법 등 민의에 귀 기울이고 그 뜻을 거스르는 일에도 앞장서서 거리로 나갔다. 세월호 얘기 지겹다 그만해라 다들 욕할 때 문재인은 외면하지 않았다. 유민아빠를 설득하러 갔다. 지난 대선 그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사람이 먼저였다.
"건강이 걱정된다. 내가 단식 할테니 이제 그만두시라"
유민아빠의 뜻을 꺽지 못하자 그 자리에서 열흘간 동조 단식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는 내홍을 겪는 당을 수습하고 쇄신하고 새로운 인물을 들여오면서 당의 체질까지 변화시켰다. 당 대표에서 물러나고도 이양한 당지도부에 의해 부당한 이유로 공천권에 탈락한 의원을 다독이고 야권후보의 단일화를 이뤄내고 비례파동으로 어수선한 당을 정리하고 살인적인 스케줄로 전국 유세를 다니며 더민주당에 불리하게 흘러가는 여론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치 않았다. 결국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적 심판과 더불어 원내 1당이 되었고 문재인은 유력 대선 후보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간혹 문재인을 두고 노무현의 후광으로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이렇게 말하고 싶다. '문재인이기 때문에 노무현의 후광을 꺼지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문재인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의 살아온 삶이 그 증거이다. 그저 노무현의 친구라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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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됨됨이를 알기에 박근혜 게이트에 조급증을 내는 사람들 틈에서도 그의 행보를 믿고 기다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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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해법을 논의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책무이다. 이마저 무색해질때 거리로 나설 명분을 얻게된다. 대통령은 이를 모두 무산시켰다. 지난 토요일까지 기다렸다. 뒤늦은 결정이 아니라 지금 나서는게 적절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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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비교적 숨김 없는 솔직한 성격인데 어느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는 야권을 대표하는 대선 후보가 되어서 정권을 교체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부터 부쩍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가 운명이라고 말한 노무현이 남긴 숙제가 분명해진 것일까.
최근 그의 워딩에 자주 등장하고 힘주어 말하는 단어들은 이렇다. "낡은체제, 낡은 가치, 낡은 질서, 낡은 세력, 수 십년의 적폐, 반칙, 특권, 부패,대개조, 대청소, 새시대"
나는 문재인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지도자의 품격을 갖춘 이 사람을 통해 새시대의 희망을 보고 싶다. 부디 그가 지난 4년간 야심차게 준비해온 데이터베이스가 세상에 빛을 보기를 바란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상식이 통하는 세상, 사람사는 세상, 반칙과 특권을 뿌리뽑아 새시대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어주길 바란다.
문재인의 걸음을 느껴보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