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앵커 옆에 어리고 미인인 여성 아나운서가 앉아 있는 일반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이것이 ‘아름다움’을 통해 여성을 억압하는 대표적인 사례인가?. 권력구조가 ‘직업에 필요한 아름다움이라는 자격 조건’을 만들어 공공연하게 일하는 여성의 고용 및 승진 조건으로 널리 제도화하는 가?
. 왜 여성이 ‘아름다움의 신화’라는 사회적 덫에 빠져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지
집안 살림과 자녀 양육 등 여성 역할의 상당 부분은 왜 가정에 국한되어 있는가? 여성은 왜 다이어트, 성형수술, 값비싼 화장품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는가? 직장이라는 공적 영역에서부터 종교, 섹스라는 사적 영역까지 ‘아름다움’을 강요받고 이를 따르도록 학습되었던가?
'여자는 예뻐야' 무언의 압박, 누구를 위한 아름다움인가?왜 무엇이 그녀들를 이뻐야 한다고 강요하는가?
뉴스를 전하는 데 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필요할까?
아름다움에 대한 신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까지 침범해 여성의 삶을 잠식하고 있다. 남성들은 화보에서 튀어나온 듯 인형 같은 대상을 원하고, 여성은 그에 맞춰 고통스러운 행위를 지속한다. 성형수술, 다이어트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여성들을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들이 거액을 투자해 예뻐지려고 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살아남기 위한 가치가 돼 버린 탓이기 때문에 비난해도 된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의 신화는 나이 든 여성과 젊은 여성 사이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아름다움의 신화는 종교의 구조를 갖춰 두려움과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다움이 천국이라면 잡티나 지방세포는 황폐해진 영혼, 못생긴 것은 지옥이다. 이익을 보는 건 미용산업이다. 이제 그 덫은 어린애까지 향하고 있다. 노소 모두 상품화되고 대상으로 평가받는 상황을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이라는 여성 억압 이데올로기
“여성이 가정이라는 여성의 신비에서 벗어나자, 아름다움의 신화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아름다움의 신화를 “여성에 관한 낡은 이데올로기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것”으로 지목한다.
아름다움이라는 신화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여성의 육체와 정신을 파괴하는지 드러낸다. 그는 여성에게 주로 문화적인 방식으로 강요되는 아름다움이라는 압력은 어떤 역사적·생물학적 근거도 없으며, 신체기준에 따라 여성의 가치를 매겨 수직으로 줄을 세우는 권력관계의 표현이고, 다른 어떤 것보다 여성을 가두기에 좋은 사회적 허구라고 주장한다. “여성은 여성의 몸을 바꿀 필요가 없다. 여성이 바꿔야 하는 것은 혁명적인 근로이다”.
특히 아름다움이라는 신화가 여성의 진보를 가로막는 정치적 무기로 사용되고 있고, 여성들이 그동안 거둔 자유와 권리를 내면적으로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또 여성운동이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1980년대의 이야기들을 “사악한 거짓말” “터무니없는 희망” “역사적 플라시보”라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페미니즘을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