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욥…
뻘글 들고 왔어요;;
아일랜드 깡시골 친구 부모님네 집에서 9일 동안 펑펑 놀면서
그 집 식량을 아마도 상당량 축내고 온 처자입니다.
제가 축낸 식량 중에 매일 아침 먹은 포리지가 있어요.
빨강머리 친구 아빠가 포리지 담당이에요.
포리지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자면…
밤에 자러 가기 전에 적당한 때가 되면 (9시-9시 반 사이)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요.
친구는 저와 이층에서 음악 듣거나 같이 사진파일 보거나 책 읽거나
각자 노트북 들여다보면서 따로 놀다가도
자기 전에 아빠 엄마에게 축복받지 않을래? 이러면서
저랑 같이 일층 거실로 내려와요.
그럼 거실에 좀 같이 있다가
벽에 걸린 십자가 아래 선반 위에 세워져 있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 촛불을 켜고
친구 아빠가 성경의 시편을 한 개 낭독하세요.
그걸 듣고 한 1분 쯤 조용히 있다가 Salve Regina라는 라틴어로 된 노래를 불러요.
그리고 친구가 아빠 앞에 무릎을 꿇으면
아빠가 친구 이마에 조그만 십자표를 그려주고
친구가 엄마 아빠 한 번씩 끌어안고 뽀뽀하고
아빠 엄마도 서로 끌어안고 뽀뽀하고.
이 집에 온 둘째 날, 이렇게 하는 동안 저는 어정쩡하게 옆에 서 있었는데
친구 아빠가 윙크를 하면서 잘 자라면서 안아주셔서 어색함이 해소되었어요.
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친구 엄마와도 허그, 친구와도 허그.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마치는 경건한 의식 같은게 신기했어요.
촛불을 불어서 끄면 퍼지는 희미한 재 냄새 같은 거…
무슨 축복이 온 집안에 다 퍼져서 어두운 집안이 다 향기롭고 평화로워 보일 지경이었어요.
처음에는 무슨 영화의 한 장면 보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전혀 꾸민 것 같지 않았어요.
천주교는 모든 집이 다 이런가요?
세째 날부터 저도 무릎 꿇고 친구 아빠의 축복을 받았어요.
좋은 건 일단 받고 보는 거야! 이 축복 때문에 이 친구가 진국이 된 건지도 몰라! 이러면서 ㅋ
그리고 나서 따뜻하게 차를 마시기 위해 주방에 가는데
친구가 차를 우리는 동안 친구 엄마는 식탁을 세팅하고
친구 아빠는 포리지를 준비해요.
운두가 얕고 밑판이 두꺼운, 사각형 전골냄비 비슷한 빨간색 소형 전기팬에
거칠게 부순 오트를 담고
호박씨와 해바라기씨를 첨가한 다음 우유를 부어서 오트를 골고루 팬에 깔아요.
그리고 전기팬의 가열 강도를 약하게 조절해서
타이머가 달린 전기콘세트에 코드를 연결해요.
다음 날 아침 여섯 시 오십 분부터 전원이 들어오도록 타이머를 맞추고
유리 뚜껑을 팬에 덮으면 끝.
밤새 우유에 불려져서 부드러워진 오트가 뭉근하게 데워지면
아침 일곱 시 반에는 아주 아주 부드러운 포리지가 돼요.
누군가 늦잠을 자느라고 못 일어나면, 그 사람을 위해 계속 전기팬의 온도를 약하게 해놔요.
잘 남지는 않지만 먹고 남으면 그걸 락앤락 통에 잘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다음 날 포리지를 준비할 때 섞어요.
그 전기팬은 이렇게 매일 끓이는 포리지용이에요. 다른 용도로는 쓰지 않는 것 같았어요.
주방 싱크대 한구석에 전기 커피 드리퍼와 함께 놓여있어요.
이 포리지를 먹을 때는 친구 아빠가 여기저기서 채집해 온 각종 베리들과
뒷 마당 한켠에 직접 재배하는 산딸기로 직접 만드신, 아주 새콤하게 만든 소스를 얹어요.
이 소스가 잼은 아니에요. 잼보다는 훨씬 덜 달고 덜 되직해요. 숟가락에서 흘러내릴 정도.
열매 건더기가 그대로 보이는 시럽이라고 해야 되나요?
포리지에 우유를 넣었고 씨앗들도 들어가서 어떻게 보면 좀 느끼한 맛인데
이 새콤한 소스가 정말 잘 맞는 것 같아요.
아침 식탁에 올라오는 포리지 소스병을 관찰해 보니
친구 아빠가 네 가지 종류를 만들어 놓으셨어요.
저녁 식사 때 우묵한 큰 세라믹 사발로 마시는 우유 탄 홍차는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미봉책으로 홍차 양을 좀 더 줄이고 꿀을 조금 넣으면서 그런대로 제 입맛에 맞게 되었어요.
두 손으로 사발을 감싸 들고 마시면 한약 마시는 기분이 들었죠.
친구 아빠표 포리지에는 그야말로 푹 빠졌어요…
독일에서는 독일남자와 같이 사는 친구네 집에 갔는데
시내에서 초 공예 가게를 발견했어요.
직접 만든 진짜 밀초들을 팔고, 얇은 초 색종이?
그런 걸 오리고 잘라 붙여서 장식을 해서 팔기도 하고 그 초 색종이와 초에 그리는 물감,
그 외 여러가지 장식 재료도 파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한 뼘 길이의 노르스름하고 좀 포동포동한 진짜 밀초를 두 개 사서
카드와 함께 친구 집에 부쳤어요.
밤에 축복 기도 드릴 때 켜시라고요.
집에 돌아왔는데
9월 말이 되면서 아침에 좀 선선해지니까
문득 이 포리지 생각이 났어요.
근데 좀 웃겼어요. 제 머리 속에서 죽 비스무리한 것들이란
배탈이 났을 때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드시는 음식이었거든요.
그러니까 환자식 ㅎㅎㅎㅎ
영국에서 영어 배울 때도 아침은 토스트였고 이탈리아에서는 꼬르네또에 카페라떼에
제 맘대로 달걀후라이 한 개 먹었는데
이런 죽 같은게 다 생각이 나다니.
오트를 사러 수퍼마켓에 갔어요.
친구네 집에서 본 것과 같은 큰 알맹이로 부순 오트는 찾을 수 없었고
콘플레이크 진열대 구석에 납작하게 누른 오트가 있었어요.
해바라기씨와 호박씨도 한 봉지씩 오트와 함께 사 왔어요.
라면을 끓일 때 애용하는 작은 냄비에 그걸 두 숟가락 퍼 담고
씨앗도 한 숟갈 넣고 우유를 붓고
하룻밤 방치한 후에 다음 날 최대한 약한 불에 나름 정성을 들여 끓였어요.
오렌지 마말레이드에 레몬즙을 더해서 좀 더 새콤하게 만들어가지고
그걸 그 위에 한 숟갈 얹었어요.
그거 퍼먹는데
멀쩡하게 해 뜬 아침에 눈물이 뚝뚝…
친구와 거의 매일 페이스타임을 해요.
야 나 포리지 만들어 먹으면서 울었어, 그랬더니
저보고 좋은 싸인이라네요.
자기는 출근할 때 굳이 직장에서 한 블럭 떨어진 이탈리안 카페에 가서
제가 좋아하는 꿀 든 꼬르네또와 카푸치노를 먹고 있다며.
친구 엄마는 아이리쉬 캐나다인이에요.
토론토 근처 미국과 접경 지역에 있는 아이리쉬 동네 출신인데요.
조상들이 아일랜드에서 이 지역에 살았었는데 19세기 말에 캐나다로 이민을 갔대요.
그래서 토론토에서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늘 꿈에 그리던 아일랜드 본토로 혼자 돌아오셨대요.
아이리쉬들이 자기들 뿌리와 전통에 자부심이 매우 강하고
어떤 아이리쉬들은 몇 대가 지나도 아일랜드 본토를 거의 자기네 모국으로 여긴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봐요.
그래서 조상들의 도시에서 직장생활 하다가 친구 아빠를 만나셨대요.
넓고 광활한 나라의 대도시를 떠나 대서양을 건너 와서
이곳에서 조용히 행복하게 살고 계신 걸 보면 좀 부럽기도 했어요.
두 분은 인근 도시에서 함께 직장생활을 하셨고,
차례로 은퇴하시고 나서
(여기서는 펍을 빌려 먹고 맥주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은퇴식을 하네요.
펍 천장에 뭘 주렁주렁 장식해 놓고 밴드 불러 놓고 축제 분위기 ㅎㅎㅎ 사진 잔뜩 봄)
친구의 할아버지가 사시던 곳으로 돌아오신 거였어요.
그래서 뒷마당이 곧바로 숲으로 이어진 두 분의 집은 100년이 넘은 집이예요.
친구가 보고 싶어서 뭔 일을 해도 재미가 없어요…
상큼한 가을 하늘이 제 마음 안에서만 확 죽었어요.
친구 때문에 아일랜드가 무슨 돌아가야만 할 고향으로 제 마음 속에서 격상된 것 같아요.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도 아니고 ㅠㅠ 북해를 건너가 만나리인가요 ㅠㅠㅠ
아일랜드라니… 허허허… 2년 전만 해도 그 섬이 영국의 왼쪽인지 오른쪽인지도 관심없었는데…
다 쓸 수는 없지만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게 좋은 말씀 해 주셨던 언니와 이모들…
여러 가지 두루 생각해서 제 인생의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