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밀정을 보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보려고 했는데 직장 때문에 바빠서 시간을 겨우 맞추어서
봤네요....
작년에 암살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가 상업적 성공과 작품의 완성도 두 가지를
다 잡을 수 있다는 전례를 보여 준 이후에, 이 시대 영화들이 많이 나왔고 지금도 제작 중입니다.
지금껏 만들어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영화 중 작품성이 가장 훌륭하네요~~
암살이 아무래도 흥행을 위한 오락과 재미의 요소를 어쩔 수 없이 넣었다면,
밀정은 그야말로 그 시대 독립운동하던 사람들의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긴장과 초조,
불안, 하루하루 목숨을 내놓은 삶과 일상을 관객이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준 작품입니다.
심리극이기 때문에 시원한 액션이나 활극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지루하다는 평도 봤어요....
대신, 그 당시에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얼마만큼 처절하고
모진 댓가를 각오하고 했어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줍니다.
어쩌면 그것은 신성록의 고백처럼 "시골뜨기 몇 명이 모여 폭탄 몇 번 터뜨린다고
독립이 되냐?" 는 말이 맞는지도 모릅니다.
동아시아에서 최강의 군대와 군사력을 가지고 세계대전까지 뛰어든 일본에 비하면
어쩌면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 무모한 일을 계속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왜? 왜일까요? 누군들 편안한 삶과 안락한 일상을 누리고 싶지 않은 이가 있을까요?
일상의 모든 안온함 대신, 내가 태어나면서 받은 천수 대신, 언제나 누군가에게 쫓기고
발각되어 끌려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위험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성공보다 실패의 확률이 훨씬 더 높은 그 일을.....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댓가는 차디찬 감옥에서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고문과 죽음이 뒤따르는 그 일을....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계속했던 것인지....?
이런 깊은 의문이 들게 합니다.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교과서와 책 속의 몇 줄, 몇 페이지로 표현된 그들의 삶은 과연 어떤 색깔이었을까.....
저는 한지민이 맡은 연계순이 고문받는 장면에서 같은 여자라 그런지
마치 제가 받는 듯한 아픔과 슬픔을 느꼈네요....
영상과 화면이 수려하고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심리묘사,
독립운동에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 배신과 밀고,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들에게 바치는 이 영화를 지금껏 나온 독립운동 장르
(사실 몇 편 되진 않아요. 워낙 적게 만들어서....) 중 최고라고 말하고 싶고
올해, 내년, 내후년에 이 최고의 작품이 다시 다른 최고의 작품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모습을 즐거이 기다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