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내리고 있는 제 피부를 위해
홈쇼핑에서 큰 맘 먹고 주문한 마스크팩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어제 받았는데 오늘에서야 찾으러 경비실에 다녀왔어요.
남들은 흑설탕팩이다 뭐다 해서 하루가 다르게 피부에서 광이 난다는데 제 피부는 답이 없네요 ㅜㅜ
경비실에 가보니 역시 경비 아저씨는 안 계세요.
모든 택배는 경비실에 맡겨달라고 주문하는 편이기에
택배 받을 때마다 경비실에 가야하는데 매번 경비 아저씨와 숨바꼭질 하는 기분으로
오늘은 또 어디가서 이 아저씨를 잡아오나....이런 심정으로 내려갔어요.
이 아파트 이사온지 3달 되어 가는데 처음엔 당췌 찾을 수 없는 경비 아저씨 때문에
많이 당황했었는데 이젠 그러려니 해요.
이 아파트는 주민들이 알아서 지키는 자율경비 시스템인가.......;;
폭염이 끝도 없이 이어지던 이번 여름 같은 날씨에
나 같아도 저 덥고 좁아터진 상자같은 경비실에 앉아 있기 싫겠다 싶어서
항상 자리를 비우시는 경비 아저씨를 이해해드렸는데
더위가 다 지나고도 절대 경비실에 안 계시는 걸 보니
그냥 우리 경비 아저씨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가봐요.
일단 아저씨가 주로 짱박히시는 지하실 입구에서 불러봤는데 안 계시길래
주차장으로 나가보니 뭔가 시끌시끌하고 경비 아저씨도 거기 계시더라구요.
뭐 하시나 가봤더니 할머니 세 분과 왠 아저씨 한 분과 함께
대추나무에서 대추 터느라 정신이 없으세요.
오래된 단지라 나무들이 다들 아마존 원시림 수준으로 울창한데
전 여태껏 그게 대추나무인지도 모르고 살았어요.
제가 택배 찾으러 왔다고 말씀드리니 아저씨는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알았다고 하시고
여전히 대추 줍느라 정신 없으신데 이미 마트 봉지로 하나 가득 채우셨더군요.
근데 제가 택배 찾으러 왔다고 하니 할머니들이 갑자기
"아이고 워쩐디야. 택배 찾으러 왔다쟎아. 어서 가봐야겠네~"
하시면서 되게 좋아하시더라구요.
순간 단박에 알겠더라구요.
아저씨와 할머니들 사이에 피 튀기는 대추줍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는걸 ㅋㅋ
괜히 아저씨 방해한것 같아 죄송해서 뻘쭘해하며
저도 바닥에 비내리듯 쏟아지고 있는 대추를 열심히 주으며
이게 대추 맞냐고 할머니들에게 여쭤봤어요.
일단 막 열매가 쏟아지니 본능적으로 줍기는 하는데 실은 그게 대추라는 확신은 없었거든요.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이게 뭔지도 모르고 뭐하러 줍냐길래
진짜 이건 어떻게 먹는거예요? 하고 되물었다가........
먹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 뭐하러 주워가냐고 이리 내놓으래요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아파트 일진 할머니들이었나봐요.
마침 와이드팬츠 주머니가 커서 열심히 채우고 있던 저는
걍 주머니 다 털어서 드리고 조금 더 주워드리고 왔어요.
내미시는 자루를 보니 어마어마하게 채우셨더라구요.
쳇.....나도 관리비 내는 입주민인데 ㅠㅠ
뭐 그자리에서 단지내 유실수에 대한 권리 주장 한다고 먹힐 분위기도 아니고
전 대추 들어가는 음식이라고는 약식과 갈비찜 밖에 모르겠는데
그거 해먹을 것도 아니고 해서 순순히 드리고 오긴 했지만
할머니들 포스가 장난 아니긴 했어요 ㅋ
경비 아저씨와 다시 경비실로 돌아오는데
저 할머니들이 며칠째 저 나무 못 털어먹어서 몸살을 하며 난리를 쳐서
오늘 날 잡고 터는거라고 하시며 연신 저 대추로 대추차 끓여 먹어야 하는데....
걱정하시더니 저에게 택배 상자 내어주시고는
다시 쏜살같이 주차장으로 뛰어 나가시더군요.
평소에 경비 업무를 그렇게 빛의 속도로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ㅎㅎ
할머니들에게 대추 상납하고 돌아와 일단 얼굴에 팩 한 장 붙이고
주차장에서 자란 나무에서 딴 열매따위 먹고 싶지 않아....라며
정신 승리 중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