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데, 같은 팀에 저보다 나이 어린 직원이 있어요.
몇 년 전에 이 친구가 한국에서 일하다가 제가 있는 나라 A로 발령나오고 싶어서 저한테 컨택을 많이 했더랬죠.
출장 오면 일정 끝나고 저희 집에서 재워 주기도 하고, 밥도 사주고, 현지 사정 등등 나름 알뜰 살뜰 챙겨줬어요.
그러다가 저희 옆 팀 B팀으로 자리를 얻어 왔더라구요.
처음 왔을 때 어린 친구가 타지 생활 힘들겠지 싶어서 여러모로 신경써줬네요. 제가 알고 있는 현지 한국직원들 소개도 시켜주고 좋은 말도 많이 전해주고요.
그리고 나서 몇 달 후 저도 그 친구랑 같은 B팀으로 옮기게 되었어요.
근데 그 친구 태도가 예전 같지 않더군요. 이미 몇 달간 현지 생활에 적응도 했고, B팀이 좀 텃세가 심한 팀이었는데, 그 중 핵심세력(?) 하고 이미 친해져서 저한테는 말도 잘 안걸더라구요.
B팀 텃세가 심한 건 예상했지만 그래도 그 친구가 있으니 좀 낫겠다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거들떠도 안보더라구요.
마음 많이 다쳤죠. 댓가를 바라고 잘해준 건 아닌데,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에..
뭐랄까, 알고보니 굉장히 정치적인 친구였어요.
자기가 필요한 사람한테는 잘하고, 필요가 없다 싶으면 한쪽으로 치워버리는.. 그리고 또 본인한테 도움이 되는 네트워크를 계속해서 구축하는 거죠.
어디가서 말도 못하겠더라구요. 전 그 친구가 처음 왔을 때 괜찮은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들한테 소개시켜 준 입장이었거든요.
그렇게 몇 년이 흘러서 그 친구랑은 그냥 인사정도만 하는 사이에요.
뭐 사이가 아주 안좋은 건 아닌데, 그냥 그 사람한테 마음 줄을 끊어버린거죠. 그래도 가끔 제가 다른 사람들하고 차타고 어디 나가서 점심 먹는다 하면 세상 가장 착한 얼굴을 하고 같이 따라오고 그러더라구요. (저희 부서에 운전하는 사람은 저 혼자에요).
다음 달에 제가 퇴사를 하거든요. 그냥, 당분간 쉬면서 아이 보려구요.
그 몇 년 동안 그 친구에 대한 어떤 말도 안하고 지냈는데, 얼마 전 옆팀 한국 선배들이랑 저랑 점심 먹는데 그 친구 어떠냐고 묻더라구요.
저는, 솔직히 이제 나가는 마당에 할 말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딱 한 마디 했어요.
정치적인 사람이라서 이제 곁에 안 둔다고..
그러니까 그 선배들도 돌아가며 얘기하더라구요. 본인들도 다 느꼈다고..
겉으로 보기엔 순진하고 사람 좋아보이는데, 세상 모르는 소식 없고, 모르는 사람 없이 오만 사람 다 만나고 다니면서 소위 말하는 네트워크 하고 다닌다네요. (주로 높은 사람들하고)
같은 레벨급 내지는 본인이 필요한 거 다 뽑아 먹었다 싶으면 무시 아닌 무시하며 지내는데, 그게 그 선배들도 다 느껴진데요.
전 그 동안 저 혼자만 그렇게 느끼나.. 내가 저 친구한테 뭘 잘못했나, 무시당할 만큼 그런 사람인가 자괴감도 느끼고, 암튼 맘 고생 많았는데,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씩 그 사람의 본색을 알아간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위안도 됐어요. 내가 이상한 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에..
그래도 그런 얍삽한 정치적인 사람들이 승승장구하긴 하겠죠?
이제 뭐 회사 나가니까 그런 사람 다시 안봐서 좋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