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들이 보기에는 운이 좋은 케이스 예요.
첫아이 출산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솔직히 복귀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아주 맘 편히 육아할 수 있다는 장점이...) 10년만에 비슷한 직군의 일로 복귀한 케이스 거든요. 이 말을 먼저 드리는 이유는, 제가 업무 적응이나 새로운 일을 배워야 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지는 않고 있다는 설명을 드리기 위해서예요.
연봉이나 각종 대우는 그럭저럭 만족스럽습니다.
문제는, 직장 복귀 이후 저녁도 주말도 없는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업무가 많아서 (물론 일 자체도 좀 많긴 합니다)라고 하기에는, 저와 비슷한 정도의 업무 강도를 가지고 있는 제 또래의 직장 동료는 (그 사람은 일을 쉰 적이 없습니다.) 나름대로 주말이면 아이와 짧은 여행도 다니고, 해외 여행도 다녀오는데, 저는 하루하루 너무 허덕이며 일을 합니다. 저는 그 동료가 너무 신기하고 대단해 보입니다.
일 그 자체가 많은 게 아니라.... 심적인 여유가 생기지를 않아요.
막상 일을 하지도 않는데(지금도 보세요. 82에 글 쓰는 여유도 있네요. ㅠ.ㅠ) 그냥 항상 마음 속에
저녁이 되어도 내일 사무실가서 처리 해야 할 일, 주말이 되어도 월요일까지 되어 있어야 할 일 걱정에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방치상태(그나마 남편이 제 마음을 여러가지로 이해해 주는 편이라 도움을 많이 줘서 다행)
집안 꼴은 엉망진창(이것도 그나마 남편이 집안일의 많은 부분을 전담해 주고 있어서 집 꼴이 갖춰져서 유지됩니다.)
정규 퇴근시간은 오후 5:30 인데, 하루가 멀다고 혼자 야근하고 밤 9-10시에 집에 들어가고요,
주말이 되어도 이틀중의 하루는 애들과 남편을 집 밖으로 내몰거나 제가 동네 까페나 도서관등을 전전하면서(심지어 출근해서 사무실을 이용할 때도 많아요.) 일을 해요.
그렇다고 일은 제대로 하느냐 하면 아니요. ㅠ.ㅠ 아무리 이전에 해 봤던 일이지만,
10년만에 복귀한 사람이 구멍은 또 얼마나 많겠어요.
직장 복귀한지 이제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솔직히 1년이면 적응할 때 되지 않았나요?
이쯤 되면... 저는 직장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인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아이는 이제 초등 고학년이라, 한창 공부에 신경써야 할 때고, 지난 10년간(네, 부끄럽지만 제가 정말 애 열심히 키웠습니다. 이건 애 아빠도 아이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저에게 학습에 관한 것을 많이 의지하고 있던 아이들이라 제가 막상 손을 떼니 뭔가 휘청휘청.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방향 잡아주지 않은 저도 잘못이 있지요. 인정합니다. 어쨌든 현실이 그렇다는 거지요.
숙제를 내주고 제가 체크를 하면 되는데, 정말 머릿속의 95% 이상을 회사일이 잡아먹고 있어요.
숙제 내기만 하고 체크도 제대로 안하니 아직 애들인데 뭘 그리 열심히 하겠나요.... ㅠ.ㅠ
일찍 퇴근하는 날도 적지만 일찍 퇴근해도 도저히 아이들 공부를 봐 줄 엄두가 나지를 않아요.
아이들 보다 먼저 골아 떨어지는 날도 많고요, 아침엔 애들 등교도 못보고 출근하는 날도 부지기수...
무슨 일이 그렇게 많으냐면... 연구 사무직 비슷한 일이라, 해도해도 티도 안나는 일들이 너무 많아요. 해도 티가 안나는데 안하면 바로 티가나는 일이라고 할까요. 그렇다보니 머릿속에 내내 그 일만 있습니다. ㅠ.ㅠ
친정에서도 그러고, 남편도 그러고 인제 일 놓을 생각 하지말고 꾸준히 일 하라고, 얼마나 좋은 기회냐고 그러네요.
이제 1년(처음엔 일단 1년 계약으로 들어간 거라)이 거의 다 되어가고, 회사에서는 연봉이니 근무 조건을 다시 조정해야 하는 상황인데요. 그냥 확 까놓고 이야기 해서 10년 경력 단절에, 전문직도 아니라는 것, 대기업도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연봉이 꽤 쎕니다. 업무 만족도도 높아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휴직기간 길었던 분들께 질문드리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까요? 그래서 저희 직장 동료가 가지고 있는 어떤 여유를 가지게 될까요?
지금은 제가 일을 너무 오래 쉬다가 다시 시작한 탓에 이런 시행착오, 오류를 겪는 걸까요?
일을 그만두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