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당선을 성공의 지표로 삼는다면 잠깐이라도 정치사를 톺아볼 일이다.
이를테면 전두환을 사랑하는 이가 있을까. 그를 추종하는 이조차 과연 그를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민중을 학살한 장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청렴을 내세우며 청와대에서 수천억 원을 챙긴 대통령, 그러면서도 돈이 없어 벌금을 못 낸다고 30만원도 없다던 인간 아닌가. 전두환은 대통령 권세가 인생의 성공과는 전혀 무관함을 능글맞게 일러주고 있다.
현직 대통령 박근혜는 퇴임 뒤 어떻게 평가될까. 아직도 임기를 1년 반이나 남겨둔 그는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가고 있다”며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라고 훈계했다. 박근혜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강조하며 “떼법 문화가 만연하면서 사회적 비용이 증가되고, 대외 경쟁력까지 실추되고 있다”고 부르댔다.
어떤가.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나온 것이 “언제부터인지”를 정말 모르는 걸까. 남은 임기라도 국정을 잘 하라는 충정에서 명토박아 말한다. 바로 박근혜 취임부터다. ‘국민성공시대’를 내건 이명박이 ‘친기업’과 ‘부자감세’로 일관하며 부익부빈익빈 체제를 굳혔을 때, 박근혜는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대선에 나섰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그는 “기업규제 완화”로 선회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나가야 함에도 정규직 노동자들을 ‘기득권’으로 집요하게 마녀사냥해 왔다. 국정 전반에 무능을 드러내면서도 한사코 자본을 대변해온 그의 실정으로 민생이 어려운데도 박근혜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라고 꾸지람이다. “떼법문화”가 만연했다는 살천스런 공격도 빠지지 않았다.
평생 최고의 기득권을 만끽해온 박근혜의 인생에 손경희의 삶을 들려주고 싶다. 김포공항의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그는 관리자들의 징글맞은 성추행과 폭언, 가혹한 노동조건을 견뎌오다가 마침내 올해 봄에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청소노동자들에겐 ‘호봉’도 없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부터 일한 사람도 신입과 같아 시간당 최저임금이다. 공항공사 퇴직자들이 용역업체 관리직으로 내려와 ‘가슴이 멍들도록’ 성추행하고 자칫 계약직에서 잘릴까 싶어 쉬쉬해오던 그들이 마침내 노동조합을 만든 것이야말로 ‘용기’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었다.
50대 청소노동자가 잠시 쉬는 틈에 유산균 음료 한 병을 마시면, ‘관리자’가 나타나 “야, 넌 뭘 그렇게 처먹냐”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곳, 그러기에 “공부 잘해 대학을 나왔어야지”라고 비아냥대거나 “씨X”이란 욕설이 ‘기본’인 곳, 바로 그곳이 대한민국 공항이다.
▲ 8월12일 '경고파업 승리 결의대회'에서 삭발 결의를 한 손경희 지회장. 사진=민중의소리여성 대통령은 충격을 불러온 공항 여성노동자들의 절규에 지금까지 전혀 언급이 없다. 그가 임명한 공항공사 사장들 체제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그렇다. 광복절에 화려하게 나타나선 “떼법문화” 운운하며 ‘꾸지람’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를 불러 송로버섯, 바닷가재, 훈제연어, 캐비어 샐러드, 샥스핀 찜, 한우 갈비로 ‘공짜 점심’을 즐기는 여성에게 값싼 유산균 한 병 마음 놓고 마시지 못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라고 촉구하는 내가 미친 걸까. 목울대 꾹꾹 누르며 그럼에도 쓴다. 삭발하며 눈물 글썽이는 아름다운 여성을 떠올리며, 국민 세금으로 호의호식하면서도 잔뜩 훈계만 늘어놓는 인간에게 간곡히 권한다.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