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과 네티즌의 영화평점은 9점 정도인데 영화평론가들은 별 하나의 혹평을 하고 있는 극과극의 평가로 논란의 중심에 선 ‘인천상륙작전’을 어제 보았습니다.
원래 저는 이런 류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2주 연속 영화(터키 영화 ‘전장에서 온 편지’-국립현대미술관, ‘이레이션널 맨’-혜화동 CGV)를 본 형편이라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만 워낙 무더위가 심해 피서 겸, 평론가들은 별 하나를 주기 아까워하는데 60대 이상의 노년층이 아닌 20~30대도 왜 몰려드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여 극장을 찾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80년대에 영화가 개봉되었어도 혹평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올해 최악의 영화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설픈 스토리에 복선이나 반전도 없고 전쟁물인데도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는데다 극중 인물들에 감정이입이 전혀 되지 않아 감동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스펙타클한 장면이 있어 눈을 즐겁게 하는 것도 아니고 만화나 007 시리즈에서나 나올 법한 황당한 장면들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서의 현실감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영화 내내 개연성이 떨어지는 연결과 치밀하지 못한 전개에 고개만 갸웃거리다 엔딩 크래딧을 본 것 같았습니다.
X-ray 작전의 대장 장학수(이정재 분)나 대원들이 이번 작전에 지원하는 이유들을 너무 단순하게 처리하는 바람에 관객들이 감정이입하기 쉽지 않았고, 한채선(진세연 분)의 전향하는 계기나 그 후의 장학수와의 관계도 어정쩡했습니다.
이재한 감독이 한 편의 영화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하다가 아무 것도 전달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차라리 장학수가 공산주의 이념에 갈등하고 회의하는 모습을 더 담고, 한채선도 비슷한 과정을 겪으면서 동병상련에 이성적 감정을 얹으면서 작전을 수행하는 것을 플롯으로 삼아 영화를 만들었다면 더 나았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재한 감독이 반공과 인민군의 잔인함, 맥아더의 위대함을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노골적 의도가 너무 드러나 오히려 실제 인천상륙작전의 의미나 그 작전에 투입된 유엔군이나 국군의 희생의 진정성이 반감되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 당시 X-ray 작전을 수행한 17인의 부대원들의 처절함이나 작전의 긴박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보구요.
장학수가 최인훈의 '광장'의 이명준, 이문열의 ‘영웅시대’에 나오는 이동영(실제 이문열 아버지가 모델)이나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김범우 만큼 이념적 갈등을 하는 인물로 묘사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이 전향하여 첩보부대장으로 나서게 된 과정을 말이 아닌 리얼한 장면으로 나타내지 못한 것은 감독의 실수라고 보여집니다. 이것을 장학수의 입이 아닌 화면으로 약 5분 정도 보여주었더라면 관객들은 초입부터 장학수에 감정이입되었을 것입니다.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유치하고 억지스러워 부자연스러웠습니다. 맥아더가 참호 속에 살아남은 소년병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 탄약과 총을 달라고 하는 말과 장학수가 조국을 위해 작전에 지원했다는 말에 감동을 먹고 그들의 조국을 지켜주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한다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작전 이유를 말하는 것은 초등학생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1백수십억을 쏟아부은 영화에서 나올 대사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니암니슨(맥아더 분)도 이 말을 하면서 연기할 때 좀 낯이 간지러웠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군인(무장)이 저런 식이면 군인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군인은 비인간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군인(무장)은 군인으로서의 길이 있으며, 특히 전쟁이나 전투를 수행하는 리더(장군)는 냉철해야 하며, 이기기 위한 전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영화 ‘명량’보다 무장으로서의 한 인간을 냉철하게 그린 김훈의 ‘칼의 노래’를 훨씬 높이 사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실제 맥아더가 저런 이유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했던 것도 아니고, 맥아더 역시 저런 이유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다고 하면 별로 좋아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영화의 장면 중에는 실제와 다른 것을 넘어 너무 비현실적인 것도 많은데다 개연성이 너무 떨어져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기뢰 위치를 아는 인민군 장교를 납치하는 과정이야 억지 이해라도 할 수 있지만, 그 장교를 유엔군에게 넘기는 장면에는 아연실색했습니다. 그냥 야밤에 배편으로 호송하면 될 것을 야산에 줄을 걸어 날아가는 수송기가 낚아채게 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감독이 그 순간은 ‘어벤젼스’를 찍는 줄 착각한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저건 그냥 만화에서 나올 법한 장면인데 실화를 소재로 그 동안 리얼리티를 살려 전개한 것에 비해 갑자기 너무 생뚱맞는 장면이라 순간 어안이벙벙했습니다.
장학수 차량을 쫓는 인민군이 장갑차 위에서 바주카 포를 쏘는 장면, 장학수가 탱크(장갑차?)를 탈취하여 혼자서 포를 쏘는 것이나, 한 채선이 유엔군과 함께 인천에 상륙하여 죽은 장학수를 보듬고 맥아더가 장학수 죽음에 경례하는 장면, 장학수가 림계진(인천방어사령관)과 마지막 일대일로 싸우는 장면은 아무리 영화라고 하지만 실제와는 너무 차이가 나 관객들이 몰입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현실성이 떨어지면 관객들은 오히려 실제 X-ray 작전이 6.25 당시에 있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영화를 위해 가공하여 삽입한 것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유엔군으로부터 림계진을 포섭하라는 지령을 받은 장학수가 고작 한다는 것이 평양의 수뇌부 작전회의에서 맥아더가 인천으로 공격해 올 것이라는 림계진의 말에 동의해 주는 정도였습니다. 그 효과는 전혀 나타내지도 못하면서 왜 그런 지시를 내리는 장면을 쓸데없이 넣었는지 모르겠더군요. 차라리 그 시간을 인천상륙작전을 CG로 더 만들어 내보내는 게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정재와 이범수의 연기가 너무 멋있다고 영화감상평을 썼지만(사실 저도 이 감상평에 혹해 영화를 보기로 결정한 측면도 있습니다), 저는 이 두 배우에게서 혼이 담긴 연기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설정된 부대원 남기성으로 나오는 박철민도 다른 영화에서처럼 감초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배우들이 살아있는 연기를 하지 못한 것은 배우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대본의 어설픔과 감독의 연출에 있었다고 본다면 아마츄어인 제 눈이 잘못된 것일까요?
박철민은 80년대 운동권 출신으로 영화계에서 진보적인 배우로 알려져 있는데, ‘인천상륙작전’ 영화에 출연하게 된 이유도 궁금해지고, 좌파 진영으로부터 ‘인천상륙작전’에 출연했다고 다구리 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네요.
씨네 21의 영화평론가들이 단순히 자신의 이념적 편향 때문에 별 하나만 준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고, 이동진마저 왜 별 하나 밖에 줄 수 없었는지 알겠더군요. 영화관을 나서면서 얻은 것이라곤 ‘Douglas MacArthur'를 원어민은 ’맥아더‘가 아닌 ’매카더‘에 더 가깝게 발음한다는 것을 알게 된 정도네요.
공연이나 영화, 전시회 관람 등 문화예술 행사에 제가 추천하여 간 것으로는 마눌님의 구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짜장면 밖에 사주지 않는 마눌님에게 아무 소리도 못했습니다. ^*^
* 7/31 현재(개봉 6일째) 누적관객 260만명을 넘어서고 예매율 1위를 달라고 있네요. 제 취향이 특이한 것인지, 그저 제 눈에는 저 기록이 신기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