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용 ㅋㅋ
이탈리아에서 헤매고 사는 처자입니닷.
저는 아일랜드에 와 있어요. 더블린 아니고, 다른 도시 아니고, 깡깡깡시골에 ㅎㅎㅎㅎ
예전에 영어 공부한다고 영국 런던 근처에 머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영국이나 아일랜드나 그게 그거 아니냐 이러면서 여기 왔는데
제 일천한 경험 안에서는 둘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네용.
하긴 런던 근처 대도시와 깡시골을 비교하는 것부터가 무리;;;
저번에 여기 독일의 첫인상에 대해 썼었는데
독일에 대해 잘 알거나 오래 살고 계시는 언니 이모들이 댓글을 많이 달아주셔서
더 풍성한 대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좋았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그냥 생각나는대로 적어보려고 해요.
인터넷이 좀 느리네요 근데. 잘 올라가려나...
날씨가 변덕스럽고 추우니 옷을 잘 챙기라는 (82의) 조언에 따라
후리스, 운동화, 바람막이, 후드티, 목도리 등등
이탈리아에서는 10월 중순이나 되어야 꺼낼까 말까 한 옷들을 가져왔는데
진짜 너무 추워요ㅠㅠ
더블린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무거운 회색 하늘, 강한 바람에 섞인 빗발 때문에
이미 춥긴 추웠어요.
과연;;;
사흘이 지나도록 해를 딱 30분 본 것 같아요.
새벽 4시에 벌써 날은 희끄무레하게 밝아오고 저녁에도 10시가 넘어가야 어둠이 깔리는데
하루종일 회색 구름이 평원과 구릉지대에 깔려있고
가랑비, 보슬비, 센 비바람이 번갈아 가며 와요.
습기찬 공기에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밤이면 친구가 제 방에 히터를 틀어주는 중이에요 하하하하 이럴 줄이야 ㅎㅎㅎ
더블린 공항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 주변에서 내려 한 번 갈아타야 했어요.
터미널이라기보다는 그냥 정거장 같은데 진짜 표파는 기계도 매표소도 아무 것도 없고
유리로 바람막이를 한 벤치들만 덩그렇게;;
거기 고속버스 짐칸에 캐리어를 실어주는 아저씨 한 분이 외롭게 왔다갔다 하고 있었어요.
버스들은 시간표보다 20분 정도씩 늦게 도착하더군요.
버스표는 버스를 탈 때 운전사에게서 직접 구입하는 시스템이었어요.
아무튼 버스가 20분 후에 왔는데… 왔는데… 자리가 없었어요.
다음 버스가 30분 후에 오니까 다음 버스 타라면서;;
제 앞에 너댓 명이 엄청 큰 캐리어를 이미 그 버스 짐칸에 넣어놓은 상태였는데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 소리 없이 자기들 캐리어 다시 끌어내리고
버스가 떠나자 다시 유리칸막이 한 벤치로 돌아가 얌전히 기다리네요.
이탈리아였다면 벌써 왁작왁작 끝도 없이 난리가 났을텐데 ㅋㅋㅋ
낭패다 싶어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더니 쿨하게
오케이, 그럼 다음 버스에도 자리가 없을지 모르니, 아무튼 버스 타는 것 성공하면(…)
버스 속에서 몇 시에 출발한 버스 탔는지 알려달라고 하네요.
이탈리아에서 곧바로 도착했기 때문에 옷은 얇은 거 입고 있었거든요.
이때부터 본격 추위를 느껴서 캐리어를 열어 일단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신발도 샌들에서 운동화로 갈아신었어요.
버스정거장 벤치 앞 유리칸막이는 옆은 뚫려있어서
비바람이 옆구리로 들이치자 속수무책;;;
한 15분이 지나니 본격 몸이 얼기 시작;;;;
다행히 다음 버스에는 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탈 수 있었어요.
제 친구가 깡시골 정거장에 차 몰고 나와 그림자같이 우두커니 서서 보슬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더란;;; 차 안에서 기다리지 그랬어;;
남서부 아일랜드 깡시골의 첫인상은 광활하고 황량하고 고독해요.
이곳은 끝없는 낮은 언덕과 평평한 구릉이 계속되는 지형이에요.
척박해 보이고, 드문드문 숲과 나무들이 박혀 있어요.
이 시골은 고요하고 적막해요. 오래된 돌담들이 이어져 있고
나무로 만든 기와들이 얹힌 회색 벽의 오래된 집들을 볼 수 있어요.
습기가 많은 숲속엔 울창한 아름드리 나무들을 덩굴식물들이 철철 휘감고 있고
제 키만한 고사리들이 넓게 잎사귀를 펴고 빽빽하게 자라요.
바위들에도 여러가지 이끼가 끼어 물기를 머금고 있고
들이마시는 공기는 비 냄새, 흙 냄새, 나무 냄새, 이끼 냄새를 뿜어요.
구릉에는 소들이, 말들이 풀을 뜯고 있고요.
경작지는 잘 볼 수 없어요.
가끔 보이는 건 틀림없이 과일나무 같은데
달린 것들은 탁구공보다 작고 찌그러진 시퍼런 열매들;;;
정체를 밝힐 수 없는 열매에요. 이게 사과인지 배인지 뭔지.
가로등도 없는 좁은 아스팔트 길이 이곳의 도로 대부분이기 때문에
밤에는 야광조끼를 입는 것이 권장돼요.
사람들의 첫인상 역시 제가 친구(남자)에게서 느낀 인상과 비슷해요.
묵묵하고 순박하고 속정 많고.
친해지면 같이 맥주 마시고 싶어하고 ㅋㅋㅋㅋ
밖에서도 굉장히 쉽게 인사를 건네와요. 아저씨나 아주머니나.
저녁에 나가서 산책하는데 산책하는 분들에게 인사를 많이 받았어요.
이 친구가 이탈리아에서 살 때 날씨가 추운 초겨울이 되면
머리를 이틀에 한 번씩 감는지 어떨 땐 빳빳한 빨간 머리로 까치집을 짓는데
(이 친구는 빨간머리에 회색 눈. 눈썹까지 빨간색 ㅎㅎㅎㅎㅎㅎ)
여기 시골 사람들은 까치집까지는 아니더라도 머리를 잘 안감는 것 같아요 ㅎㅎㅎ
남자고 여자고 바지에 운동화에, 약간은 때가 묻은 바람막이를 하나씩 걸치고
우산도 없이 다녀요.
하긴 비가 오면 강풍을 동반한 비바람이 불기 때문에 우산이 소용없어요.
저는 신발이 젖으면 추우니까 비에 젖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제 친구는 발이 젖거나 말거나, 발 뿐 아니라 비에 온 몸이 쫄딱 젖어도 그게 별 상관이 없나봐요.
이 추위에 반팔 차림으로 비를 흠뻑 맞으며 정원에서 땅을 파내고 뭔가 하고 있던
친구 아버님을 보면서
여기서는 정말 비를 맞는 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실감했어요.
사람들이 바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이건 아일랜드 깡시골의 특징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나라의 시골의 특징일수도 있겠죠?
친구 어머님이 요리를 해주시는데
그저께 아침에는 빵에 버터, 잼, 사과, 홍차나 커피, 우유 등등에다가 포리지라는 걸 먹었어요.
뜨끈하게 큰 냄비에 끓인 포리지를 먹으니 추운 아침에 기분이 좋아져요.
점심에는 돼지고기 삶은 것 크고 두꺼운 조각에 그레이비 소스 끼얹은 것, 감자 버터 구이, 당근 삶아 볶은 것을 먹었고
후식으로 애플파이에 생크림을 산더미처럼 얹어서 먹었어요.
저녁에는 토마토소스가 자작자작하고 베이컨 조각이 씹히는 아일랜드식 스파게티,
아침에 먹은 것과 같은 빵 (잘 부스러지는 곡물빵 썰은 것)에 버터를 발라 먹고 홍차에 우유를 타 마셨어요.
솔직히 홍차와 우유 조합은 아무리 해도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맛이라는;;;
아침에는 홍차와 우유를 머그컵에 마시는데
저녁에는 커다란 세라믹 사발에 홍차를 가득 따라주더군요;;; 말 그대로 사발이에요 ㅋㅋㅋㅋ
두 손으로 받쳐 들어야 들 수 있는 ㅋㅋㅋㅋ 쇼킹 ㅋㅋㅋㅋ
어제 아침은 그저께와 같았고
점심에는 닭다리 구운 것, 완두콩 삶은 것, 감자 퓌레를 먹었고
후식으로 손바닥만한 쿠키 두 개를 누텔라를 발라 붙인 걸 먹었어요.
저녁에는 감자에 치즈를 얹어서 구운 것과 소시지, 버터 바른 빵, 우유 탄 홍차를 먹었어요.
오늘 아침은 어제와 그저께와 같고요. 바나나를 한 개 더 먹었어요.
제게는 풀때기와 과일이 부족한 식단이네요.
풀때기와 과일이 비싼가봐요.
저는 루꼴라나 양파를 많이 첨가한 각종 인살라타(샐러드)와 모짜렐라, 아보카도, 토마토, 과일로
여름을 보내는 인간인데 여기서 변비 걸릴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ㅎ
영국에서의 경험이 있어서 둘코락스를 가져오긴 했지만 ㅎ
집은 조그마한 2층 주택이고 집 뒤는 평원이에요.
집 마당은 들꽃들과 관목들로 꾸몄어요.
집안의 바닥은 잿빛 카펫트이고 흰 벽에는 여러가지 액자들이 잔뜩 걸려 있어요.
벽난로도 있고, 십자가도 걸려 있고 마리아상도 있어요.
집의 가구들은 오래된 짙은 색 나무로 되어 있어서 고풍스런 시골집 분위기 그대로이고
욕실과 주방은 초현대식이에요.
아침 식탁에 올라오는 포트, 접시, 물병, 설탕과 소금통, 머그, 기타 다른 그릇과 접시들은
제 친구 어머님 취향인지 다 손으로 그린 세라믹이고 아주 오래되어 보여요. 투박하고.
이빨 빠진 그릇들도 있어요.
제가 지내는 손님방의 침대 덮개는 꽤 오래된 것 같은 털실 손뜨개 덮개에요.
담요는 흰색과 회색을 섞어서 짠 두툼한 담요인데 약간 까슬까슬해서
그냥은 잘 못 덮겠어요.
제가 추위를 많이 타지만 이미 오리털 이불이 있기 때문에 담요까지 사용할 만큼은 안돼요 ㅎㅎㅎ
창문에는 이탈리아와 같은 나무 덧문은 없고 대신 아주 두껍고 무거운 커튼이 쳐져 있어요.
교통표지판에는
맨 먼저 게일어가 큰 글씨로 씌여져 있고
그 밑에 영어로 씌어져 있어요.
게일어 지명과 영어 지명이 서로 달라요.
비슷한 발음인 것 같을 때도 있고 띄어쓰기부터 발음까지 완전히 다를 때도 있고.
제 친구는 게일어를 배웠다는데 읽을 줄만 알지 말하지는 못해요.
제가 보면 어떻게 발음하는지조차 애매할 정도로 철자구조가 특이했어요.
나중에 한 번 배워봐야지 ㅎㅎㅎ
영국으로부터 받은 오랜 지배와 수난, 감자 기근, 미국으로의 이민사, 기근 때 줄은 인구가
아직도 회복되지 못하고 유럽 변방의 조그만 나라로 살아남은 나라,
그러면서도 오스카와일드, 버나드쇼, 예이츠 등등 대문호들을 배출한 나라,
자신들의 언어를 잃어버린 나라, 억눌렸던 슬픔,
날씨와 분위기 모든 것이 제게는 아일랜드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켜요.
조용한 깡시골의 아침을 느지막히 이렇게 보내면서 창 밖으로 흐린 하늘을 내다 보고 있으니
아직은 이 아련함이 가시지를 않네요.
음… 어떻게 끝내지? 하여간 이랬어요 ㅎㅎㅎㅎㅎ
내일은 친구의 친구들과 무슨 유명한 해안 절벽을 보러가기로 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나가야지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