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로 수장당해 죽은 국민들도 304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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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도연맹 및 불순분자를 일제히 구속하라"는 내무부 치안국장의 지시에 따라, 1950년 6월 30일과 7월 8일 이틀간 충북 청원군 오창면과 진천군 진천면의 보도연맹원 400여 명이 오창양곡창고와 오창지서, 진천경찰서 사석출장소 등지에 강제 구금됐다.
당시 오창지서와 오창양곡창고 구금자 가운데 주동자로 분류된 주민 등 최소 6명 이상은 7월 10일 오창지서 창고·오창양곡창고에서 수도사단 헌병대와 진천지역에 투입된 국군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헌병과 경찰은 창고 안 구금자들도 전원 사살하려 했으나, 마을 유지들의 만류로 창고를 잠근 채 후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오창양곡창고에 구금된 최소 304명 이상의 보도연맹원들은 이튿날인 7월 11일 새벽 창고 앞을 지나가던 제6사단 헌병대와 후퇴하던 군인에 의해 사살 당했다. 군인들은 창고 자물쇠를 부순 뒤 구금자들의 신분이 보도연맹원임이 밝혀지자, 기관총과 M1소총 등으로 총격을 가하고 수류탄을 투척했다. 몇 시간이 지난 오전 8시 30분쯤에는 미군 전투기에 의해 창고 인근이 폭격을 당해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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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오창지서와 오창양곡창고 구금자 가운데 주동자로 분류된 주민 등 최소 6명 이상은 7월 10일 오창지서 창고·오창양곡창고에서 수도사단 헌병대와 진천지역에 투입된 국군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헌병과 경찰은 창고 안 구금자들도 전원 사살하려 했으나, 마을 유지들의 만류로 창고를 잠근 채 후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오창양곡창고에 구금된 최소 304명 이상의 보도연맹원들은 이튿날인 7월 11일 새벽 창고 앞을 지나가던 제6사단 헌병대와 후퇴하던 군인에 의해 사살 당했다. 군인들은 창고 자물쇠를 부순 뒤 구금자들의 신분이 보도연맹원임이 밝혀지자, 기관총과 M1소총 등으로 총격을 가하고 수류탄을 투척했다. 몇 시간이 지난 오전 8시 30분쯤에는 미군 전투기에 의해 창고 인근이 폭격을 당해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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