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기지국가로 만들어버린 한국전쟁
프레시안 : 6.25전쟁 66주년을 앞두고 <기지국가의 탄생 : 일본이 치른 한국전쟁>이라는 책을 펴내셨다. 한국전쟁과 일본의 상관관계에 대해 널리 알려진 사항은 막대한 전쟁 특수로 일본이 단숨에 경제 부흥을 이룰 수 있었다는 점이다. 2차 대전 패전으로 폐허가 된 일본 경제가 단숨에 일어나는 결정적 계기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 보니 6.25가 일본에 미친 영향은 단순히 경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상 일본은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 미국에 이은 제2의 전쟁 당사국이었던 것이다. 책에 따르면 6.25 막바지인 1953년 1월 현재 일본 내 미군기지가 무려 733개에 이르렀다. 이들 주일 미군 기지는 전쟁을 위한 출격기점으로서의 전진기지, 병사 및 물자 수송의 중계기지, 물자 보급과 훈련, 병사 휴양을 위한 후방기지 역할을 했다. 즉 주일 기지는 미국의 전쟁 수행을 위한 핵심 거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 보니 6.25가 일본에 미친 영향은 단순히 경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상 일본은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 미국에 이은 제2의 전쟁 당사국이었던 것이다. 책에 따르면 6.25 막바지인 1953년 1월 현재 일본 내 미군기지가 무려 733개에 이르렀다. 이들 주일 미군 기지는 전쟁을 위한 출격기점으로서의 전진기지, 병사 및 물자 수송의 중계기지, 물자 보급과 훈련, 병사 휴양을 위한 후방기지 역할을 했다. 즉 주일 기지는 미국의 전쟁 수행을 위한 핵심 거점이었다.
전쟁 기간 동안 주일 미군 기지로부터 한반도로의 출격은 약 1백만회, 투하된 폭탄은 70만톤에 이르렀다. 또한 원산 상륙을 위한 기뢰 제거(掃海) 및 미군 수송에 약 8천명의 일본인이 동원됐다. 사실상 전쟁 수행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이는 6.25에 참전한 미국 등 16개 국가 중 6위에 해당되는 규모였다. 이 때문에 초대 주일 미 대사였던 로버트 머피는 "일본이 없었다면 미국은 한국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 책은 소개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일본은 평화헌법을 내세워 스스로를 '평화국가'라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이 책 <기지국가의 탄생>은 1945년 이후 일본의 실체를 '기지국가'라고 규정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눈에 띄었는데, 우선 기지국가라는 개념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주신다면?
2차 대전 이후 일본은 평화헌법을 내세워 스스로를 '평화국가'라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이 책 <기지국가의 탄생>은 1945년 이후 일본의 실체를 '기지국가'라고 규정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눈에 띄었는데, 우선 기지국가라는 개념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주신다면?
이러한 선택은 한국전쟁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은 여전히 휴전의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주민들이 고통을 감내하는 구조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휴전체제 속에 편입돼있다는 현재의 구조를 깨지 못하는 한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턱대고 미군 기지는 일본을 떠나라고만 이야기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1953년 이후 60여 년간 동북아를 규정하고 있는 휴전 체제를 깨지 않는 한 일본의 기지국가 탈피도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