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 진짜 대단하던데 근황을 알 수 없네요
혹시 어떻게 지내는지 아시는분...??
부산에서 중학교 다녔다고 하더라구요..
MIT 조기졸업. 영 옥스퍼드서 박사학위 받는 백은실씨
얼음골 '산골 소녀'서 세계적 천재로
동양인에 대한 편견.차별, 실력으로 극복 ... '한국서 두뇌과학 연구하고 싶어'
백씨는 당초 컴퓨터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 MIT에 입학했지만, 인간의 지적능력을 참구하는 두뇌과학에 매료돼 전공을 바꿨다. 그녀는 MIT 두뇌과학부를 졸업하면서 석사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장 영국 옥스퍼드대 두뇌과학부 박사과정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백씨는 영국 옥스퍼드대 유학 2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그녀가 박사학위를 받을 것으로 알려지자, 미국 하버드대와 MIT는 그녀를 초빙하려고 적극 노력하고 있다. 올해로 겨우 25세, 하지만 이미 세계 관련 학계에서 그녀는 '작은 거인'으로 통한다.
내 이름은 '은실 백'이 아닌 '백은실'
10년 전만 해도 그녀는 '어린 동양 소녀'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90년 부산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15세 어린 나이로 미국 보스턴(웨스턴고등학교)으로 유학 간 백씨는 공부 잘하는 여학생이었지만 항상 주위의 칭찬과 주목을 받으며 생활한 것은 아니다.
백씨는 '내 유학생활은 인종적 편견으로 인해 순탄치만은 않았다. 미국인이나 영국인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적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첫 유학길에 나선 웨스턴고등학교에서 동양인인 제가
백인학생들보다 유별나게 공부를 잘하자 가끔 시기와 질투로 학점을 깎는 교사들도 있었다.'고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조금의 허점도 보이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웨스턴고를 올(all) A학점으로 졸업, MIT에 입학했다.
MIT 두뇌과학부 시절, 그녀는 계속 올 A학점을 받고 있었는데, 한번은 한 과목에 B학점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B학점을 받을 만큼 성적이 나쁘지 않아 다른 사람들과 성적을 비교해 본 결과 담당 교수가 의도적으로 B학점을 준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담당 교수에게 찾아가 '왜 제가 B학점인지 설명해달라'고 요청했고, 교수는 그녀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래서 그녀가 찾아간 곳이 MIT총장실. 그때서야 담당 교수는 학점을 다시 A학점으로 수정해 주었다.
지난 2월초 런던에서 만난 백씨는 스스로를 '민족주의자'라고 했다.
키 1m 50cm를 겨우 넘기고, 자그마한 얼굴에 왜소한 체구.
'앳된 소녀'라는 이미지를 풍겼지만 여러차례 만날수록 강인하고 다부진 집념의 소유자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외국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은실 백'이 아닌 '백은실'이라고 소개한다.
그녀는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서양인들에게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도 않는다고 했다.
'11년에 걸친 유학생활동안 외국사람들로부터 수재소녀 작은거인이라는 별칭을 들었지만 '동양인에 대한 편견과 견제'를 극복하기 위해 더 큰 고통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지만 우리 말로 대화할 때에는 부산 사투리와 억양이 진하게 남아 있다.
백씨의 유별난 영특함은 어디서 생겼을까. 우선 가족들의 학력을 보면 다소 이해가 간다. 그녀의 아버지는 연세대 법정대 국제법 교수를 역임했던 법철학자 백도광(白道光. 78) 박사이고, 어머니는 한때 하버드대 국제이사였던 성현숙박사이다. 그녀의 오빠와 언니들도 모두 미국 하버드 법대와 옥스퍼드대를 거쳤다.
아버지 백 박사는 '자녀들 중 은실이가 가장 똑똑하다'고 했다.
하지만 백은실씨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산골소녀'로 자랐다.
법철학자였던 백 박사가 학문을 접고, 낙향하여 정착한 곳이 경남 울주군과 밀양군 사이에 걸쳐 있는 천황산 목장.
백 박사는 캐나다에서 젖소를 들여와 대규모 목장을 운영했고, 그때 태어난 백씨는 얼음골로 유명한 이곳에서 젖소들과 지냈다. 그러니 유치원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백 박사는 '은실이가 외국인들의 견제 속에서도 유학생활을 잘 견뎌낸 것은 천황산에서 자랄 때 형성된 강인함과, 은
실이 할아버지인 한국 총공회 창설자 백영희 목사의 신앙을 이어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유학생활 중 특히 수학과 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또 언어에도 관심이 많아 라틴어와 한자(漢子)에 재미를 느꼈다. 특히 한자에 흥미가 많아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한자교육을 위한 컴퓨터 교재 '펀 한자(FUN HANJA)'를 개발하기도 했다.
물론 취미활동에도 관심이 많았다. 특히 태권도에 열심이었다. 고교시절 하키선수로도 활약했고 합창단원도 했다. 94년 여름 보스턴에서 개최된 맥월드 엑스포 세계 대회에서는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도 만났다.
고등학교 땐 하키부. 합창단 활동
그녀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염두에 둔 전공은 컴퓨터 공학.
하지만 대학입학 전에 인간 지적능력을 탐구하는 두뇌공학에 매료됐다. 그녀는 '인간이 어떻게 지적 능력을 갖게 되고, 습득하고, 학습하고, 놀라운 지능을 갖게 되는지 궁금해서 두뇌과학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MIT 두뇌과학부로 진로를 수정했다.
이처럼 뛰어난 백씨도 서양 사회에서 '동양인'이란 핸디캡을 겪어야 했다. 그녀는 MIT만점 졸업후 로즈. 마샬. 풀브라이트 장학금 등 각종 장학금재단에 신청서를 제출하면, 당연히 장학금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 장학금은 모두 자국민(미국인)에 제한 된 것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녀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국적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며 '끝까지 한국 국적을 고집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실력에 맞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공부하기 위해 그녀가 98년 초 찾아간 곳은 서울 광화문의 영국문화원.
백씨가 어머니 성 박사와 함께 영국문화원을 찾아갔을 때는 이미 장학금 신청기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영국문화원 측은 백씨의 뛰어난 실력에 탄복, 전액 장학금을 수여하면서 영국 옥스퍼드대로 진학할 수 있게 도와줬다.
당시 옥스퍼드대학측은 백씨가 다른 대학에 지원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녀는 요즘 고민거리가 생겼다.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의 진로를 아직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국에서 연구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국내 연구소들을 찾았지만 흔쾌히 그녀를 맞아주려는 곳이 아직은 없다.
심지어 과학기술부의 고위 관계자가 '당신처럼 똑똑한 과학자가 한국에 들어오면 오히려 왕따를 당할 염려가 많다'며 '그냥 외국에서 연구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백씨는 '생명과학의 시대가 꽃을 피우고 있고, 과학자들은 이제 두뇌과학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며 '인간의 두뇌에 관한 최근의 연구내용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인간의 지적 능력 취득과정을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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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8년 미국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를 7학기만에 만점(5.0)으로 조기에 졸업, 미국을 깜짝 놀라게 했던 백은실(白恩實.25)씨가 이번에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석사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장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이어서 영국인을 감탄시키고 있다. 백씨의 박사학위 논문은 이미 지난 1월 통과됐고, 오는 4월쯤 학위 수여식이 예정되어 있다.
백씨의 논문은 자기공명 영상진단 장치(MRI)의 일종인 fMRE(functional MRI)를 이용한 인간의 전두엽의 기능을 밝히는 연구. 전두엽은 두뇌의 앞 부분에 해당하는 곳으로 지적능력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도 그 기능이 밝혀진 적이 거의없다. 백씨는 '옥스퍼드대학에 입학한 후 전두엽의 기능을 밝힐 연구를 수행할 실험기자재가 없어 상당수를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천재 교육이다
미국 MIT 전과목 만점 백은실씨 어머니
과외 공부 1백번보다 조기 유학에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하버드, MIT등에서 우수 성적으로 졸업한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그녀는 MIT 전무후무할 기록을 남겼다. 하버드대 국제이사인 어머니 성현숙 박사에게 들어본 특별한 교육기.
5.0만점 MIT 졸업, 깨지기 힘든 전무후무한 기록
지난 6월 5일,미국 보스턴에 있는 과학교육의 총 본산인 MIT 졸업식에서 한 특별한 여학생의 놀라운 이야기가 캠퍼스를 휩쓸었다. 그녀의 이름은 백은실. 이제 22살밖에 되지 않은 한국의 여학생이다. MIT 두뇌과학 졸업생으로 평점 5.0만점에 5.0을 딴, 게다가 한 학기를 일찍 마쳐 7학기 만에 졸업하는 백은실씨.
그녀는 이 대학 두뇌과학부 행정관인 프리실라 코브씨가 '매우 비범한 학생이다. 내가 15년전 이 학교에 온 이후로 이처럼 높은 점수는 처음이다'라고 극찬했듯이, 역대 최고 점수로,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운 기록을 세웠다.
한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15세에 미국 유학을 떠난 지 8년 만에 이룬 승리요 쾌거였다. 본토박이에 뒤지는 영어와, 치열한 경쟁속에서 특히 유태인들의 경쟁 박해를 극복하고, 한국 두뇌의 우수성과 지구력을 보여준 일이었다.
학교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그녀의 능력과 성적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도 전격적으로 받아들였다. MIT의 추천으로 석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영국 옥스퍼드 두뇌과학부 박사과정으로 진학하게 된 것이다. 영국 정부의 전액 장학금까지 주는 등 파격적인 입학을 허락한 옥스퍼드 대학측은 단지 '은실양이 다른 대학에 지원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세웠을 뿐이다. MIT 3학년 때 조기 입학한 은실양은 현재 이미 한 학기 준비 학습을 끝냈다고 한다.
미국과 영국의 석학들을 깜짝 놀래키는 그녀의 천재성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 그래서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의 어머니 성현숙 박사(경영학 박사. 하버드대 국제이사)와 자녀교육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공부 잘하라고 욕심스럽게 졸라대는 것보다 아이들로 하여금 자연을 접촉하고 자연을 배우며 깨닫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대자연은 가장 훌륭하고 완벽한 공부감입니다. 인간은 자연과 더블어 살아가며 창조 원리와 창조주의 근본 규범을 배우게 됩니다.
나는 창조 원리에 순천하면 흉하고 역천하면 망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인성과 심성을 바르게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만 갖추면 공부는 절로 잘되어 갑니다."
막내딸인 은실씨뿐 아니라 은실씨의 두 언니와 오빠 역시 하버드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한 수재이고 보면, 성현숙 박사의 독특한 교육법은 더욱 궁금하기만 했다.
'영남의 알프스' 천황산에서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키웠다.
"그 애는 완전히 산가시내로 컸어요. 그런 애가 그렇게 두각을 나타낸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별나요. 산골에서 자랐는데도 절대 음감을 가지고 있고요."
어머니 성현숙 박사조차 딸 은실씨에 대해서는 적잖은 감탄으로 말문을 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은실씨는 경남 울주군과 밀양군의 접경에 있는 '영남의 알프스'라고 알려진 천황산에서 백도광 박사(전 연세대 법정대 국제법 교수)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등산객들에겐 널리 알려져 있는 천황산은 '얼음골'로 유명한 계곡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백 박사가 부인 성현숙 박사와 함께 낙향하여 젖소 목장을 하던 시절이었다. 백박사는 당시를 고난의 한 때였다고 회고했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연세대에서 국제법 교수로 재직하던 중 백박사는 통일의 방법에 대한 연구와 발표를 많이 했다. 그것이 이유가 되어 적잖은 괴로움을 당하게 되자 백박사는 대학을 등지고 천황산으로 들어가 캐나다에서 젖소 3백두를 입식하여 6백두까지 먹이던 큰 낙농업을 벌였다.
부모의 이런 괴로움과 달리 은실씨는 해발600m, '하늘 아래 첫동네'인 천황산의 풀밭을 뛰어다니며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자랐다.
취학 전까지는 문명세계의 어린이 교육을 구경도 못한 채 젖소떼를 몰고, 곧잘 땔감 나무도 해왔었다. 교수인 엄마 아빠를 통해 저 산 너머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가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고, 천자문 등 가장 초보적인 세상 학문을 전수받은 것이 고작이었다.
자연 속에서 자란 은실씨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따라 변하는 천황산을 체험한 것은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어머니 성현숙 박사는 말한다.
"이른 겨울 기울어진 그믐달 밑에 산사슴이 울어대면 어린 가슴이라도 적잖은 감상을 느낄 수 있었겠지요. 겨울에 눈꽃은 또 얼마나 황홀한가요. 토끼도 잡으러 다니고. 은실이는 지금도 주저함이 없이 천황산이 우리의 보금자리요, 파라다이스였다고 해요. 물론 에덴동산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어요. 때로는 폭풍우가 몰아쳤고, 눈보라에 뒤덮여 영하 25도의 혹한을 견뎌야 하기도 했어요. 또 송아지를 채가는 거대한 산독수리와 싸우기도 했지요. 그 아이의 강인함이나 담대함, 무서움을 모르는 대망의 투지는 모두 이 태산에서 싹튼 것이지요."
담대함. 강인함. 투지, 그것은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난 은실씨에게 꼭 필요했던 정신력이었다. 총명할 뿐 아니라 발랄하고 구김살 없는 은실씨는 정말 억척스럽게 공부를 했다고 한다. 토종 한국인으로 한국의 정신을 지키려는 은실씨는, 미국 사회에 동화되지 않는 이방인이었다. 그 이방인에 대한 미국 학계의 견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때문에 한순간의 해이함도 용납하지 않고 8년의 세월을 견뎌냈고, 방학 때에도 거의 놀지를 않았다. 한 마디로 '죽을 힘을 다했다'고
고교시절 전과목 A, 호킹 박사와의 교류로 MIT 진학 고려
부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90년 5월 지구를 반 바퀴 돌아서 은실씨가 정착한 곳은 미국 보스톤이었다. 그곳 웨스턴 고교에 들어간 그녀는 고교에서부터 전과목 A학점을 받았다. 특히 과학 과목에선 조교를 맡을 정도로 이공분야에 재능을 발휘했다. 외국인으로 영어 장애도 곧 극복했고. 라틴어 도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고전어에선 전교 일인자였다. 고 3학생이 되어서는 한자 교육을 위한 컴퓨터 교재 '즐거운 한자(FUN HANJA)'를 개발하여 고등학생으로 유일하게 '보스톤 컴퓨터 학회'의 정식 멤버가 되기도 했다.
공부뿐만 아니라 미술과 요리 에어로빅 태권도 등 취미활동도 열심히 했다. 고등학교 시절 하키선수로 활동했고 합창단원도 했다.
94년 여름에는 보스톤에서 개최된 맥월드 엑스포 세계 대회의 임원이 되었고, 이 자리에서 천체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와 친분을 쌓게 되었다. 호킹 박사는 은실씨만 보면 신체 장애로 인한 고통이나 침울함도 가지고, 파안 대소하면서 작은 고교생이 신기한 듯 칭찬해주었다고 한다. 이 호킹 박사와의 만남이 인연이 되어 MIT진학을 생각해본 계기가 되었다.
두뇌과학(Brain Science)이란 쉽게 뇌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지과학과 신경과학으로 나누어진 연구의 영역을 종합하고 확대한 것이다. 21세기를 앞두고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각국이 예외없이 큰 예산을 세워 연구비를 쏟아붓고 있는 분야. 우리나라도 서울대학교 등 8개 대학 1백 32명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KIST와 합동으로 뇌연구팀을 구성하고 있다.
강인한 의지뿐 아니라 은실씨의 유학생활을 견디게 했던 것은,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 창설자이자 부산서부교회 설립자인 할아버지 백영희 목사의 설교 테이프. 룩색에 잔뜩 넣어가지고 다니며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듣고 또 들으면서 힘을 얻었다고.
김치에 밥을 해먹고,
잠깐 한국에 들어올 때면 재래식 야외 변소의 인분도 치우는 등 은실씨는 막노동하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돈들여 공부를 시키고 아이를 영악하게 키우기보다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 커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 아니겠느냐고.이런 교육 철학은 은실씨의 오빠 은석씨를 하버드대와 옥스퍼드대학에서 수학케 했다. 또 위로 언니들도 현재 옥스퍼드대에 재학 중이다.
"졸업을 하고 캠퍼스를 떠나는 은실이에게 교직원들은 '앞으로 노벨상을 받아라'라고 그랬어요. 본인도 그러기 위해서 아주 애를 씁니다. 한국인의 놀라운 두뇌력을 세계에 널리 알리려는 것이지요. 한 산골 아이. 토종 한국인의 놀라운 두뇌력을 세계에 널리 알리려는 것이지요. 한 산골 아이. 토종 한국인 여자아이의 작은 승리가 우리 세대의 불가능을 극복하는 데 적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