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45 Years 라는 영국영화를 봤어요.
은퇴하고 안정적으로, 어찌보면 평화롭게 살아가는 노부부가
결혼 45주년 기념파티를 앞두고 1주일간 일어나는 일상을 하루씩 진행하는 영화예요.
할리우드 영화 좋아하시는 분은 뭐 이딴 심심한 영화가 있나 할거고
유럽풍 영화 취향인 분은 괜찬다 싶으실것 같아요.
우리가 오랜 세월동안 그럴 것이러고 믿고 있던 것도 어느 날 우연히 감추어진 것을 마주하게 되면
전혀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뼈아픈 진실.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어디부터 의심을 해야하는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주인공들의 앞으로의 삶도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공허함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영화더라구요.
잔잔하다고 볼 수 있지면 내면적으로는 절망적인 슬픔이 자리한 영화예요.
이제 완숙기에 들어선 관계도 얼마든지 쉽게 흔들릴 수 있는거
그리고 그 관계 자체가 보이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거.
단 일주일 사이에도 신뢰가 의심으로 소용돌이 치면서
미처 말해지지 않은 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느지,
해결되지 않은 과거가 우리의 현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지..
혹시 시간이 나면 유투브에서 찾아서 보세요.
45주년 기념파티에서 남편이 스피치를 하면서 부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서 잠깐 울고
이어서 주인공 둘이서 60년대 풍의 음악을 배경으로 댄스를 하는데
그때 가사가 제 기억에 대강 이랬습니다.
When the flame has gone, smoke gets in your eyes..
주인공의 허망한 마음이 가사로 잘 나타나더라구요.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 연기만 남는거죠.
Geoff 가 Kate 를 사랑한다고,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해도
Kate 에게는 그 말이 아픔입니다.
Geoff 는 Katya 를 사랑한 것처럼 Kate 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
앞으로도 Kate 는 Geoff 를 볼 때 Katya 가 언제나 함께 한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
그야말로 연기만 남은 걸 Kate 가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여주인공의 풍부한 내면 연기가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중년/노년기의 여성에게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