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과 미국’의 진실 ‘체로키 파일’, 광주에 기증하는 팀 셔록
“미국 대통령, 광주와 제주에 와서 사과해야 한다”
1980년 광주 5.18과 1948년 제주 4.3에는 공통점이 있다. 수많은 민간인들이 항쟁 과정에서 군대에 의해 죽음을 당했으며 미국이 그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광주에서는 미국이 광주 시민을 상대로 한 신군부의 ‘무력 진압’을 묵인, 방조, 승인했다. 제주에서는 미군정이 직접 진압 작전을 지원하고 통제했다. 32년의 간극이 있지만 1948년에도, 1980년에도 한국군 작전통제권은 미국이 가지고 있었다. 2016년인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셔록은 현재진행형인 제주 강정 해군기지 문제 역시 미국이 무관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관리들이나 미 해군 관계자들은 강정 해군기지를 이용하고 싶다고 수차례 얘기해 왔다”며 “한미동맹이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강정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면서 강정 해군기지 건설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국 군부와 한국 군부가 예전부터 친밀하고 긴밀한 관계였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것이 강정마을의 핵심 문제”라고 덧붙였다.
셔록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미국 시민들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미국이 해외에 700곳이 넘는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고 그 수는 더 늘어나고 있다”며 “그들은 환경을 파괴하고 주민들의 생활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뒤 지미 카터 당시 미 대통령은 한국 동향을 주시하기 위해 비상대책반을 구성하고 워싱턴과 서울 사이의 특별 대화 채널을 가동한다. 암호명 ‘체로키’이다. 여기에는 미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CIA(중앙정보국), 합동참모본부, NSC(국가안전보장회의)와 서울 주한 미대사관의 최고위급 관계자들이 섭렵돼 있었다.
1980년 5월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워싱턴에 보낸 비밀전문 등을 보면 미국이 한국군 공수부대 이동 및 배치 현황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군부대 투입을 용인하는 대목도 나온다. 특히 1980년 5월 22일 백악관에서 열린 ‘정책검토회의’에서는 ‘필요한 최소한의 무력 사용’을 결론으로 내린다. 광주항쟁에 대한 무력 진압 과정에 미국이 개입돼 있다는 정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셔록은 ‘체로키 파일’을 포함한 비밀문건들을 기증하는 일은 5.18 광주의 역사를 복원하고 완성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광주에는 이미 당시를 겪어낸 사람들이 있고, 광주는 그 자체로 역사적 현장이다. 여기에 ‘미국의 시각’이 담긴 기록을 더했을 때 비로소 5.18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 셔록의 생각이다.
그는 “문건들은 단순히 5.18 광주뿐만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되기 전부터 시작해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미국의 역할과 정책을 다루고 있는 문서들”이라며 “미국의 시각이 담긴 문서들이 없으면 광주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셔록에 따르면 ‘체로키 파일’은 방대한 양의 비밀문건 들 중 극히 일부라고 한다. 나머지 문건들 중에는 주한 미 대사관에서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등에 보내는 각종 전문들이 포함돼 있어 당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인식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고 셔록은 설명했다. 야당 인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YH 사건과 같은 노동운동에 대한 기록도 담겨 있다고 한다.
셔록은 5.18 광주를 다룬 최초의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 1985, 이하 ‘넘어 넘어’)의 유일한 공식 영문판으로 1999년 출간된 ‘광주일지’(Kwangju Diary:Beyond Death, Beyond the Darkness of the Age)에 저자로 참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워싱턴의 시각’(The View from Washington)이라는 글을 통해 ‘체로키 파일’이 담고 있는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5.18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기록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 책은 지난 2005년부터 절판된 상태이다.
셔록은 “광주항쟁 과정에서 하루하루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물인데 재출간이 안 되고 있어 안타깝다. 광주에 대해선 영어로 된 출판물이 많지 않은 현실에서 (‘넘어 넘어’는) 미국이나 해외 영어권 시민들에게도 가치있는 자료들”이라며 “하루 속히 영문판이 미국에서 재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는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판권을 사서 재출간이 될 경우 추가로 비밀해제 된 내용들을 포함시켜 ‘워싱턴의 시각’ 챕터를 수정·보강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