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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

흐르는 조회수 : 690
작성일 : 2016-05-26 10:49:00
나는 결혼을 하고나서야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을 알았다.
아니, 한참 잊고 있었던 그 느낌을 찾았다.

나에게 그 느낌을 다시 일깨워준 남편은 자고 일어나서 남편이 있는 곳에 찾아가면 얼굴에 뺨, 이마, 턱, 돌려가며 뽀뽀를 해주고 마지막에 입술에 움~~~퐈! 하며 마지막 뽀뽀를 힘차게 해주고 궁둥이를 톡톡 쳐주며 어여 준비하라고 다정한 말을 건넨다.
다른 일 하고 있는 남편을 부르면, 돌아다보는 그 얼굴에 웃음이 늘 머물러있다. 와? 하고 묻는 그의 얼굴에서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어디에선가 만나기로 하고 그 근처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저기에서 오는 남편을 발견하면 우리 둘 얼굴에 웃음이 함빡 머물러있다. 남편 얼굴에도 웃음이 머물러있고 마찬가지로 내 얼굴에도 나도 모르게 어느새 웃음이 가득한 것을 느낄 수 있다.

결혼하기 전에 독립하기 전까지, 같이 살았던, 나의 주 양육을 담당했던 엄마는 내가 부르면 우선 뒤돌아보지 않았다. 못 들은 듯이, 붙박혀 자기 할 일을 하는 그 뒷모습에서 나는 그 쌀쌀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모든 행동에서 너는 어찌 그리 더디니, 너는 어찌 그리 욕심이 없니, 그렇게 지고 살아도 분하지도 않니. 나는 네가 너무 한심하다 라는 그 마음을 나는 읽을 수 있었다. 반대로 한살 위, 공부를 잘해, 기숙사 학교에서 지냈던 오빠가 주말에 오면 엄마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오빠가 부르기도 전에 먼저 반응했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서 기다렸다. 나도 같이 먹을 수 있었지만 내가 숟갈을 들기부터 다 먹을 때까지 나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부족하지 않아? 더 줄까? 더 있어. 모든 다정한 말과 행동은 내 몫이 아니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방어하던 엄마의 그 진심은 내가 대학생 때 드디어 밖으로 터졌다.
누구는 서울대 갔다. 누구는 연세대 갔다. 너는 대체 뭐야, 뭐가 부족해서, 내가 너에게 뭘 못해줘서 그 모양이야 나는 니가 창피하다.
나는 울면서 항변했다. 내가 정말 창피해? 사람은 다 다른거야 어떻게 모든 사람이 잘해. 
돌아온 대답은 벽처럼 단단했다. 니 생각이 그 모양이니 니가 그 모양이지.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뒤에 나에게 남겨진 경멸은 길었다.

우리 모녀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어렸을 때 자주 아팠고 내가 가장 많이 기억나는 것은 엄마의 등과 엄마의 머리카락이 시작되는 뒷목라인이었다. 늘 엄마가 입고 있던 옷과 귀 뒤 약간 튀어나온 점을 만지며 놀았다. 이모와 할머니는 늘 너네 엄마가 널 살렸다. 다 너 죽는다고 가만히 방에 밀어놨다가 죽으면 잘 보내주라고 했는데 엄마가 그렇게 못한다고 울면서 날 주물러서 내가 살았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유치원 정도의 나이일 때, 내가 자고 있으면 가만히 다가와서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주고 햇빛이 방해할까봐 이불로 가만히 산을 만들어서 빛을 차단해주던 엄마의 다정한 손길을 나는 분명 기억한다. 

내가 그저 그런 정도로만 성적표를 가져오면서 우리 사이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반대로 오빠는 점점 성적이 오르더니 학교에서 특별관리하는 대상 학생으로까지 되었고, 대학도 본인이 가고싶은 곳도 지원하고, 학교를 위해 무조건 수석할 수 있으니 특정대학에도 지원해달라는 학교의 부탁을 받는 정도까지 되었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갈등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오빠도 나도 결혼했다. 오빠는 대학원까지 진학하고 대학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보였지만 과감하게 인생의 항로를 변경하여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자금이 얽히면서 머리가 커진 오빠와 자금줄을 쥐고 있으니 말을 들으라는 부모 사이 갈등이 새롭게 나타났다. 다른 지역에 사는 나는 알고 싶지 않아도 명절때마다, 우리집에 오실 때마다, 화를 내며 오빠와 통화하는 아빠의 모습에서 그 갈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자랑스러웠던 오빠의 학벌이 이제는 세상 천지 지 혼자 잘난줄 알고 날뛴다는 험담으로 변했다.

그리고 이제는 힘이 빠져 종이 호랑이가 된 엄마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너는 무슨 일 하는거니, 엄마 친구들이 묻는데 엄마가 잘 몰라 대답을 할 수가 없어. 나는 늘 설명해준다. 이런이런 일이야. 나는 성인답게, 대인배답게 엄마에게 우리 사이에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살갑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데 엄마 이야기가 조금만 길어지면 나도 모르게 내 표정이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 무표정으로 변해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래도 널 낳아서 키워준건 너네 엄마야. 어찌되었건 널 학교에 보내고 배우게 한 건 너네 엄마야.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좋은 거, 맛난 걸 보면 엄마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냥 이렇게 살다가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시면 그때서야 가슴을 치고, 내가 왜 다정하게 못 대해드렸을까 라고 후회할까봐 두렵다. 
IP : 210.122.xxx.6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ㅣㅣ
    '16.5.26 11:00 AM (122.40.xxx.105)

    그냥 님의 감정에 충실하시고
    남편분과의 행복함도 충분이 느끼세요.
    결핍이 충족되고 가슴속에서 안정감이 넘칠 때
    그때 다시 주변을 살펴보세요.

  • 2. 군자란
    '16.5.26 12:03 PM (76.183.xxx.179)

    진솔한 글을 만나는 기쁨과 함께,
    자극적인 글제를 따라 우르르 쏠려가버리는 작금의 82 의 분위기에 대하여
    아쉬움이 드는 요즘입니다.

    조금 나이 들은 입장에서, 저의 소회를 전해 드리자면....

    원글님 마음 속에 남아있는 아픈 기억들도....
    과거와 다르게 변해가는 부모들도....
    그런 이유로, 상흔과 용서 속에서 고민하는 원글님도....
    모두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우리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저 원글님 마음의 흐름을 따라 흘러 가시라는.

    나중에 후회로 가슴을 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현재의 인위적인 판단으로 자신을 어느 쪽으로든 몰고가실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미움이 일어나면 잠시 밀쳐 두셨다가,
    측은한 생각이 들면 따뜻하게 대해 드리면 되지 않겠어요?

    짐작컨데.... 좋은 반려자를 통하여 진실한 사랑을 받는 중이시니
    그 사랑에 흠뻑 젖을 때 쯤이면, 진정한 용서의 여유가 자리잡으리라 믿습니다.

    어느 순간 문득, 오빠와 원글님을 차별하던 엄마의 마음이 이해되실 날이 올겁니다.
    모든 인간이 원래 그렇고,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공평무사(公平無私)하지 않거든요.

  • 3. 흐르는
    '16.5.26 3:40 PM (110.70.xxx.76)

    두분 따뜻한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글로만 보면 저 이제 결혼한지 얼마안된 것처럼 보이시겠지만(제가 그리 썼네요) 저 중년입니다. 저희에겐 아이가 찾아와주지 않았고 둘이 잘 살자 마음 먹었습니다. 이 나이 되도록 미움과 원망이 불쑥불쑥 밀려옵니다. 남편은 한결같이 저에게 사랑을 줍니다. 저는 그 용서가 이해가 저에게 너무 늦게 찾아올까봐 두렵습니다.

    이미 떠나시고도 마음이 안풀리는 건 아닐까, 나는 평생 이리 못나게 부여잡고 살까.....

    하늘의 구름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무심히 흐르고 싶지만 이렇게도 저렇게도 되지 않아 괴롭습니다.

  • 4. 군자란
    '16.5.26 11:08 PM (76.183.xxx.179)

    진정한 화해와 용서는 인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아실 것도 같은데요.

    그리고 후회는 언제나 있는 법입니다.
    잘 했다고 생각한 일도 후회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세월이 흐르면....

    그러니 마음을 내려 놓으시고, 사랑 안에서 행복하세요.
    그 대상이 누구이든...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괴로움이 있을 때에는 바로 내려 놓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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