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밑그림 수준의 콘셉트를 잡았다면 그 실현을 타인에게 위임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없다. 그게 문제라면 3D렌더링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컴퓨터 그래픽을 만드는 사람들도 다 문제가 될 것이다. 위임의 정당성은 분야마다 다르고 ‘하청’의 정도마다 다르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재판관 이름으로 나가지만 재판관들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아도 문제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트윗을 나는 거의 오바마 아닌 다른 사람이 썼을거라고 믿는다. 반면 25년전 밀리 바닐리같이 타인의 목소리를 빌려 음반녹음을 했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또 '장군의 아들'에 나온 당시 무명배우 황정민의 목소리가 너무 안 좋아서 성우로 더빙을 했던 건 문제가 없다.
디자이너는 재봉질을 거의 하지 않지만 패션쇼는 온전히 디자이너 한사람의 행사이다. 셰프도 칼질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요리라고 주장함에 있어 아무도 문제를 삼지 않는다. 물방울 연작으로 유명한 김창열씨가 처음 물방울 구현법을 터득한 후 물방울 구현은 모두 조수에게 맡기고 그이후로는 컨셉만 잡았다고 해도 물방울 연작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붓질, 칼질, 재봉질의 위임이 넓게 허용되는 것은 무언가 더 단순한 차원의 노동으로 환원될 수 있기 때문인가?
그런 단순화된 위임이 불가능한 문학 분야는 어떨까? 사실전달이 주목적인 자서전 같은 경우 대필을 해줬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많이 돌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상당히 있다. 번역, 시, 소설처럼 표현 하나하나가 문학적 가치가 있는 경우에는 대필은 절대로 용납되진 않는다. 중간정도인 사회과학 서적의 경우 출판사의 편집자가 아무리 깊이 개입해도 편집자의 이름을 적지는 않는다.
조영남의 그림을 산 사람들 자체도 많지 않고 사기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없다. ‘아트테이너’라는 독특한 분야에 대한 낮은 기대감 때문일 수도 있다. 조영남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건 논문 ‘자기표절’ 정도의 문제로 다뤄주면 될 일이다. 검찰과 일간신문 1면이 관심을 기울일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