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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모퉁이 너머에 뭐가 있을까요?(부제-오늘 우울하신 분들께)

저녁바람 조회수 : 2,692
작성일 : 2016-05-20 13:03:42

점심시간에 잠깐 써 봅니다.

 

이십대 초반, 지방에서 전문대 졸업하고 아주 작은 회사에서 일했어요.

사무실 청소하고 아침에 커피타고, 종일 혼자서 전화받는게 임무...

작은 사무실 한켠에 딸린 더 작은 베란다에 신문지 쌓아놓은 박스가 있었는데

거기 앉으면 시를 가로지르는 강이 보여요.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나는 이 작은 도시에서 평생 이러고 살다 죽겠구나 싶었죠.

그러다 그러고 싶지 않다고 자꾸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다시 공부했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밤차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고시원에 살다가 반지하에 살다가 옥탑에 살다가...

이십대에 고생하면서

어쨌든 공부하고 살아남아서  

고등학교 시절 막연히 꿈꾸던 직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직업이라고 쉬운건 아니고 생각했던것 만큼 늘 재미나고 행복한 것도 아니지만

가끔 생각하면 제가 대견해요.

미스누구라고 불리었는데 지금은 좀 더 근사한 직함이 뒤에 붙고  

팔뚝 안쪽살을 교묘히 꼬집던 눈빛 음탕한 과장 같은 남자도 그 뒤로 만난적 없고.

 

치열하게 연애하다

마음 따뜻한 좋은 사람 만났고

행복한 결혼생활도 제법 오래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어느날 꽝, 문이 닫혔어요.

돈도 잃고 가정도 깨어지고

정신차려보니 경기도 외곽의 작은 월세집에 밀려나와서 혼자 울고 있더군요.

차라리 그냥 그 사무실에 남을 걸 그랬다고, 처음으로 후회도 해 봤습니다.

차곡차곡 쌓이는게 인생인지 알았는데

한방에 손 털기를 할수도 있구나, 첨으로 알았네요.

 

사실 오만했었거든요. 일도 지겨웠고 내가 누리고 있는 안락한 가정도,

괜찮게 꾸민 집도, 다 지겨웠어요.

이렇게 쉽게 잃을 수 있는건지 몰랐던 탓이겠죠.  

 

그래도 고난을 극복해 본 경험, 나를 조금 넘어서본 경험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서게 되더군요.

어느새 또 몇년이 지났고,

경제적으로 많이 좋아진건 아니지만 심정적으로 많이 좋아졌어요.

일을 다시 시작하고 그 전보다 조금 더 열심히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남자한테 너무 호되게 배신당해서

평생 아무도 좋아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얼마전에 누구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4년만의 일이었어요.

너무 좋아서 이 사람과 정말 잘될줄 알았는데

얼마 안 가 정리가 되어 버렸네요.

근데 예전처럼 다시 절망의 자리로 돌아가지지는 않습니다.

이제 알거든요. 모퉁이 너머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돌고 또 돌아보면 됩니다.

절망했다가 일어서고 다시 절망하고를 반복하겠죠.

사람이 괴로운 건 나는 아프면 안돼, 힘들면 안돼, 이대로 영원히 평안해야 해, 라고

자꾸 주입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아프면 아프겠다고 힘들면 힘들겠다고

고통을 한번 통과해 보겠다고 결심하면, 세상 두려울 게 없죠.

 

저도 오늘은 집에 가면 꼭 목을 맬거라고 다짐하며

그렇게 돌아오던 수없이 많은 길들이 있어요.

하지만 죽지않고 살아남아서

한번 더 걸어가보겠다고 결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답니다.

한번 가 보세요. 설사 좋은게 금방 나타나지 않아도, 걸어온 그 힘으로 더 가게 되어있답니다.

그게 인생인것 같아요.

 

날이 덥네요. 점심시간이 끝나서...모두 좋은 오후 되세요.  

 

 

IP : 121.131.xxx.61
3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라플란드
    '16.5.20 1:10 PM (183.108.xxx.205)

    40대가 되고보니.....인생이 차곡차곡 쌓이는게 아님을 알게되었습니다.
    좋다가 나쁘다가 좋다가 나쁘다가....참 힘들지요
    그래도 원글님 말씀처럼 경험이 쌓이니 예전보단 덜 힘들어요...실수도 덜하게 되구요
    한치앞도 모르는게 인생이다...라는 어른들말씀을 실감하며 살고있습니다.
    나에게 고난을 주었던 인간들도...나중에 그 죄갚을 받겠지 싶어 조금은 힘든맘을 위로도 해보구요

    심란했던 오늘 .........원글님 글 읽고...위로 받고 갑니다.

  • 2. 길가메시
    '16.5.20 1:11 PM (1.216.xxx.154)

    아... 님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쌓여 있을거 같아요.

  • 3. 멋지십니다!
    '16.5.20 1:20 PM (58.140.xxx.232)

    저도 이런글 적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름 굴곡진 인생이었지만 헤쳐나오는건 저 보다 주윗분들 도움이었기에 인생에 자신감이 없네요.

  • 4. 82
    '16.5.20 1:24 PM (183.98.xxx.95)

    여기는 진정 훌륭하신 분들이 많아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5. --
    '16.5.20 1:32 PM (203.237.xxx.73)

    지금 힘든,,많은 젊은 사람들이 읽고 위로 받길 바래요.
    저나, 원글님은,,수많은 모퉁이를 돌아봤지만,
    그런 경험이 많지않은 젊은 사람들에게,
    요즘 너무 힘든시절이네요.
    좋은 글,,감사합니다. 50바라보는 저도,,위로가 됩니다.

  • 6. 아 .........
    '16.5.20 1:33 PM (110.70.xxx.167) - 삭제된댓글

    어릴때부터 생존을위해 살았어요.

    다른이들이 태어날때부터 당연히 가지고 있는것들을 얻기위해 난 치열하게 살아야 했어요

    젊었을때는 그러다보면 시간이 지나면 내가 노력한만큼 내것이 되어 있을꺼라 생각했고

    어느정도 남들만큼 가지게 된적도 있었는데
    지금 50대중반 난 다 잃고 이젠 어떻게 하까 질문하고 있는 내모습을 매일 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다지 절망치 않는 이유가 나도 사실 궁금했었는데 이글과 댓글을 읽고 알게 되었네요

    지금껏 그랬듯 난 다시 묵묵히 걸어갈것이고 그 걸어온 힘이 나를 다시 일으켜 줄것임을 알아서 인듯하네요

    글 잘 읽었어요

  • 7. 끝나지 않는 것
    '16.5.20 1:40 PM (211.228.xxx.24) - 삭제된댓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이 절절한 우리들이 삶 입니다.

    내용은 다르지만
    님은 훌륭합니다!!

  • 8. 끝나지 않는 것
    '16.5.20 1:41 PM (211.228.xxx.24) - 삭제된댓글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훌륭한 삶을 지켜 낸 님은 위대합니다.

  • 9. ...
    '16.5.20 1:49 PM (116.39.xxx.29)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이래서 제가 82를 못 떠나요.
    온라인에서 만나는 익명의 스승님이시군요.

  • 10. ...
    '16.5.20 2:08 PM (222.110.xxx.76)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하루하루 소중히 살겠습니다.

  • 11. 위로 받고 갑니다
    '16.5.20 2:12 PM (211.214.xxx.103)

    지금까지 잘 살아오신 그 힘으로 앞으로도 멋진 인생살아가실거라 생각됩니다. 저도 간간히 견딜수 없어 주저앉고 싶은데 좋은 에너지 받아갑니다.모퉁이 너머 펼쳐질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보렵니다!!

  • 12. 우분트
    '16.5.20 2:12 PM (118.221.xxx.104) - 삭제된댓글

    한번 가 보세요. 설사 좋은게 금방 나타나지 않아도, 걸어온 그 힘으로 더 가게 되어있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지금 많이 힘든 지인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모퉁이 너머에 행복이 가득할 겁니다.

  • 13. 금요일
    '16.5.20 2:14 PM (202.140.xxx.101)

    감사합니다! 저 오늘 우울했는데 제 마음의 위로가 되네요.

  • 14. 제목부터
    '16.5.20 2:15 PM (119.149.xxx.212)

    철학적...^^ 모퉁이라는 표현이
    미소짓게 하네요
    힘내세요
    원글님 덕분에 힘내고 갑니다

  • 15. ..
    '16.5.20 2:35 PM (211.210.xxx.21)

    소중한글 감사합니다...

  • 16.
    '16.5.20 2:36 PM (180.189.xxx.215)

    감사합니다

  • 17. ditto
    '16.5.20 2:42 PM (39.121.xxx.69)

    잔잔한 수필 읽은 느낌이예요
    빨간머리 앤에서 앤과 길버트가 성인이 되어 나눈 대화... 저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대목이 떠올라요..

  • 18. ㄹㄹㄹㄹ
    '16.5.20 2:45 PM (115.164.xxx.124)

    저도 그래요
    살면 살수록 점점 나아지는것만 있는줄 알았던 ....
    인생은 살아내는 거라 하더이다
    그러니 타인에 비교하지 말고 내가 존정으로 원하는 삶을 쫓아 한발한발 살아내자구요
    그것이 온전한 나의 인생일거예요
    아이도 남편도 내 인생의 부제이지 주체는 나여야한다 생각해요

  • 19. 하하
    '16.5.20 2:49 PM (119.195.xxx.213) - 삭제된댓글

    대인 기피증, 갈등 기피증(?) 이 있는 소심한 나이든 싱글입니다
    아파트 층간 문제를 겪으면서 내가 왜 내 집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기도 힘든지
    내편도 없이 홀로 견뎌가는 삶에 딴 사람들은 겪지 않을 수도 있는
    소모적인 사건이 왜 일어나는지, 잠도 쉬이 못자고 허공을 보며 원망했습니다
    공식 루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막무가내인 사람들도 힘들고, 외로움이 더 커지더군요
    어쩌면 님처럼 다양한 삶의 궤적이었다면 드라마 퀸이라도 된것처럼 추억할텐데
    그래도 지루한 드라마도 끝이 있듯이 이제 저도 곧 이번 모퉁이를 돌아서 나가겠지요!?
    많이 위로됩니다. 가슴에 돌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고맙습니다!!

  • 20. 저도
    '16.5.20 2:51 PM (119.194.xxx.182)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222222

  • 21. ...
    '16.5.20 2:52 PM (59.12.xxx.242)

    와 대단해요! 열심히 사셨으니 앞으로 행복만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랍니다!

  • 22. 와--
    '16.5.20 3:41 PM (118.47.xxx.16) - 삭제된댓글

    글을 정말 잘 쓰시네요
    그리 길지 않은데 한 권의 책을 읽은 느낌입니다
    저장했다 가끔 다시 읽어야겠어요
    제게 말한다 생각하려구요

  • 23. ...
    '16.5.20 3:52 PM (222.239.xxx.231)

    인생의 모퉁이..좋은글 감사합니다

  • 24. ㅇㅇ
    '16.5.20 4:02 PM (59.23.xxx.131)

    글 넘 잘 쓰시네요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 25. ^^
    '16.5.20 4:07 PM (218.235.xxx.154)

    좋은글 감사합니다.

  • 26. 중1맘
    '16.5.20 5:11 PM (220.92.xxx.23)

    5학년 3반인데요... 님글 잘 읽었습니다. 축복을 기원합니다

  • 27. 자연
    '16.5.20 5:18 PM (183.96.xxx.35)

    모퉁이 너머에~~

  • 28. 안녕물고기
    '16.5.20 6:28 PM (222.117.xxx.144)

    신일숙 아르미안의 네 딸들 생각나네요..미래는 알 수 없는 것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

  • 29. 릴리안
    '16.5.20 10:08 PM (218.38.xxx.32)

    모퉁이 너머

  • 30. 감사합니다.
    '16.5.20 10:13 PM (222.97.xxx.77) - 삭제된댓글

    나를 되돌아보게 하네요.

  • 31. 와~~~
    '16.5.20 10:22 PM (109.12.xxx.171)

    원글님 글솜씨도 마인드도 너무너무 훌륭하세요!
    감탄하고 갑니다.

  • 32. 아로니아
    '16.5.21 2:02 AM (125.186.xxx.133) - 삭제된댓글

    좋은글입니다. 마음이 복잡해 어쩔줄 모르겠는 상태였는데 님글읽고 위로받고 정화된 느낌이예요.감사해요~ 님도 이맘잊지말고 힘내세요^^

  • 33. 추운날
    '16.5.21 5:39 AM (70.208.xxx.157)

    소중한글
    너무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글들 때문에 82가 좋습니다.
    푹 쉬시고 더 힘차게 견뎌봅시다.

  • 34. 일요일
    '16.5.21 10:02 AM (116.123.xxx.98)

    모퉁이 너머.. 좋은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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