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잠깐 써 봅니다.
이십대 초반, 지방에서 전문대 졸업하고 아주 작은 회사에서 일했어요.
사무실 청소하고 아침에 커피타고, 종일 혼자서 전화받는게 임무...
작은 사무실 한켠에 딸린 더 작은 베란다에 신문지 쌓아놓은 박스가 있었는데
거기 앉으면 시를 가로지르는 강이 보여요.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나는 이 작은 도시에서 평생 이러고 살다 죽겠구나 싶었죠.
그러다 그러고 싶지 않다고 자꾸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다시 공부했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밤차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고시원에 살다가 반지하에 살다가 옥탑에 살다가...
이십대에 고생하면서
어쨌든 공부하고 살아남아서
고등학교 시절 막연히 꿈꾸던 직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직업이라고 쉬운건 아니고 생각했던것 만큼 늘 재미나고 행복한 것도 아니지만
가끔 생각하면 제가 대견해요.
미스누구라고 불리었는데 지금은 좀 더 근사한 직함이 뒤에 붙고
팔뚝 안쪽살을 교묘히 꼬집던 눈빛 음탕한 과장 같은 남자도 그 뒤로 만난적 없고.
치열하게 연애하다
마음 따뜻한 좋은 사람 만났고
행복한 결혼생활도 제법 오래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어느날 꽝, 문이 닫혔어요.
돈도 잃고 가정도 깨어지고
정신차려보니 경기도 외곽의 작은 월세집에 밀려나와서 혼자 울고 있더군요.
차라리 그냥 그 사무실에 남을 걸 그랬다고, 처음으로 후회도 해 봤습니다.
차곡차곡 쌓이는게 인생인지 알았는데
한방에 손 털기를 할수도 있구나, 첨으로 알았네요.
사실 오만했었거든요. 일도 지겨웠고 내가 누리고 있는 안락한 가정도,
괜찮게 꾸민 집도, 다 지겨웠어요.
이렇게 쉽게 잃을 수 있는건지 몰랐던 탓이겠죠.
그래도 고난을 극복해 본 경험, 나를 조금 넘어서본 경험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서게 되더군요.
어느새 또 몇년이 지났고,
경제적으로 많이 좋아진건 아니지만 심정적으로 많이 좋아졌어요.
일을 다시 시작하고 그 전보다 조금 더 열심히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남자한테 너무 호되게 배신당해서
평생 아무도 좋아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얼마전에 누구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4년만의 일이었어요.
너무 좋아서 이 사람과 정말 잘될줄 알았는데
얼마 안 가 정리가 되어 버렸네요.
근데 예전처럼 다시 절망의 자리로 돌아가지지는 않습니다.
이제 알거든요. 모퉁이 너머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돌고 또 돌아보면 됩니다.
절망했다가 일어서고 다시 절망하고를 반복하겠죠.
사람이 괴로운 건 나는 아프면 안돼, 힘들면 안돼, 이대로 영원히 평안해야 해, 라고
자꾸 주입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아프면 아프겠다고 힘들면 힘들겠다고
고통을 한번 통과해 보겠다고 결심하면, 세상 두려울 게 없죠.
저도 오늘은 집에 가면 꼭 목을 맬거라고 다짐하며
그렇게 돌아오던 수없이 많은 길들이 있어요.
하지만 죽지않고 살아남아서
한번 더 걸어가보겠다고 결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답니다.
한번 가 보세요. 설사 좋은게 금방 나타나지 않아도, 걸어온 그 힘으로 더 가게 되어있답니다.
그게 인생인것 같아요.
날이 덥네요. 점심시간이 끝나서...모두 좋은 오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