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랑 싸우고 가출했어요
유치원생, 돌 안 된 아가, 그 와중에 애들은 재우고 나왔어요
둘째가 옆에 아무도 없으면 가끔 깰 때가 있는데
울면서 엄마 찾고 있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되긴 해요
집을 나설 때는 눈물이 많이 났는데
막상 나와서 돌아다니다보니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어요
화나고 억울하고 원망스럽고 미운 마음이 그냥 잘 숨겨지는 듯 해요
아이가 둘이나 있어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지만
고백하건데 결혼하지 말 걸 그랬어요
진심으로 후회해요
혼자 온전히 외로움과 맞서 살아갈 수 있을 때,
그때 결혼을 고려해 보는 거였는데,
이제야 그랬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긴긴 세월, 남편과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많이 두려워요
바람, 폭력, 주사 이런 건 아니지만
그냥 남편은 저랑 많이 안 맞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너무 다르고, 또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해요
남편의 장점은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편이고,
집안일 그럭저럭 도와줘요
단점은 자기 일이나 수입에 대해 저한테 투명하지 않고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저랑 의논하지 않아요
결정적으로 이제 절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뜬금없이 무슨 사랑타령이냐 할 수도 있지만
제가 어리석었었나봐요
저는 살면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어요
나와 남편이 서로 사랑하고 아껴준다면
결혼생활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어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서로 사랑하지 않는 우리는 앞으로 잘 살 수 있을까요?
참고 살다보면, 사랑 비슷한 감정이 생길까요?
저는 남편이 자기 고민이나 현재 상황을
저한테 가감없이 알려주고 함께 해주길 바라는데
남편은 제가 아예 모른 척 믿고 맡기길 원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남편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싶은데
남편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우린 이미 많이 멀어져 있어
이젠 그마저도 포기해야 하나 싶어요
저는 지금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남편에게 집안일이든, 육아든, 하다못해 위로나 하소연이라도,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받고 싶은데
남편은 그런 부분도 썩 이해해 주지 않아요
그 외에도 저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남편의 치명적인 단점이 몇가지 있지만,
막상 글로 쓰다보니,
주절주절 자세한 상황을 다 설명하지도 못하겠고
그냥 다 별 거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오늘도 시작은 사소한 거였는데
서로 반응이 격해져 남편이 전에 없던 막말을 했어요
남편의 밑바닥을 본 느낌이랄까요
아, 평소에 나를 그렇게 생각했구나...
이제 너는 나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구나...
견딜 수가 없어서
무작정 집을 나왔는데
갑자기 한없이 무능력하고 초라하고 볼품없는 제 모습에
결혼 생활 몇 년만에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싶어요
삶이 쉽지가 않네요
결혼으로 인한, 엄밀하게는 내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책임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요
혹시나 불안해 할 큰애를 위해서라도
아닌 척 하긴 해야 할 텐데
거짓으로라도 남편을 편안한 얼굴로 마주할 자신이 없는 게
당장 가장 큰 걱정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