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에, 부모님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려고 한다고 글 남겼었어요.
어렸을 때 오빠에게 추행을 당한 안 좋은 기억이 남아있어서(대충 짐작 가시죠...)
최대한 부딪히지 않고 조용히 살아왔고 시집 간 후에도 최대한 조용히 살려고 하는데
부모님께서 왜 친하게 지내지 않는거냐, 친해지지 않으면 연을 끊겠다 뭐 이렇게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그 때 많은 분들이 댓글로 사과고 뭐고 일단 얘기해라, 얘기해야 니 속이 풀린다 라고 하셨는데
얘기 했어요. 근데 결과가 사이다가 아니라서... 후기 남기지 못했네요.
엄마만 따로 만나 얘기를 했구요. 역시나 예상대로 저는 엄마의 막말에 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 사건을 제가 엄마에게 얘기 했다고 해요.
그러면서 그 때 제가 했던 말을 꺼내며 애써 지웠던 저의 기억을 생생하게 긁어내기 시작하시는데...
그만 얘기하시라고 해도 계속 계속 설명하는데 정말...
하, 고문이 이런거구나 싶더라구요. 말로 때리는 기분이 뭔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그 이후로도
그게 언제적 얘기인데 아직까지 그러고 있다니 너 정말 이상한 애다.
이유도 모르는 채로 너한테 계속 미움 받는 오빠가 불쌍하지도 않느냐.
내가 잘못 살았다. 내가 죽어야겠다.
너 진짜 이상한 애다. 정신과에 가봐라.
...
'그 동안 혼자서 마음고생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니 하면서 꼬옥 안아주실지도 몰라요...'
라는 댓글이 머릿속에서 와장창창 깨지면서 아 이제 꿈도 희망도 없구나. ㅎㅎㅎ
정말 부정적인 댓글들만 기가막히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부모의 사랑과 동생의 존경마저 온전히 아들에게 주고 싶은거라는 댓글,
니가 이상한거다. 정신과 운운하며 환자 취급할거라는 댓글, 모두모두 정답.
내가 죽어야겠다고 하는 협박은 늘 듣던거라 이젠 협박으로 들리지도 않지만
이유도 모르는 채 미움받는 오빠는 무슨 죄냐는 질문에는 정말...
그 다음부터는 뭐 털레털레 개털되서 집에 왔죠. 그나마 다행인 건, 저는 어쨌든 마음이 가벼워졌고
다시는 연을 끊겠다. 뭐 이런 얘기는 더이상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비록 이후 몇 번의 가족 모임에는 아무일도 없었던 척 참석했지만요. 늦게나마 간략 후기네요.
그런데, 오빠가 곧 결혼을 합니다.
부모님은 새 언니 될 사람을 저희 집으로 초대해서 밥을 먹이라고 하세요.
일단은 웃으면서 시누이는 최소로 마주치는게 미덕이랍디다... 하고 넘어갔는데
오빠에게도 연락이 옵니다. 정식으로 인사하게 밥을 같이 먹자고.
평생 연락 없다가 본인 결혼한다고 체면치레하려는 메세지에 소름이 끼치네요.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어요. 우리집에 모셔놓고 밥 국 찌개 차려주고 싶지 않아요.
이번 한 번만 어떻게든 넘어가면, 이후로 괜찮은거겠죠?
결혼했는데, 어떻게 초대 한 번을 안하냐 참 싸가지 없는 동생이다라고 흉 잡히는건 전혀 두렵지 않아요.
다만, 결혼하면 부모님 생신이나 어버이날 같은 공식적인 모임 외에는 볼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제와 '오빠' 코스프레하려는 모습에 등골까지 싸늘해지네요.
이러다 조만간 본인에게 얘기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잠깐 그 생각도 했어요. 차라리 그 때 엄마에게 얘기하지 말고 당사자에게 얘기할 걸 그랬나.
이러이러해서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으니 알아서 서로 잘 피했으면 좋겠다. 이미 늦었지만 말이죠.
다시 본인에게 얘기하는 날이 온다면, 위에 적힌 저... 괴물같은 또 하나의 기억을 더 갖게 되겠죠.
결혼하면 100% 멀어집니다. 확고하게 말해주실 분? ㅎㅎ
실날같은 희망이라도 좀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