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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펌글. 어느 인문사회계열 석사생의 글

조회수 : 4,069
작성일 : 2016-04-21 12:48:20
안녕하세요 대숲. 전 인문사회계열에서 석사를 졸업한 학생이에요. 얼마전까진 조교였고 지금은 백수에요. 석사 졸업할 때만 해도 힘들게 논문을 쓴게 정말 뿌듯하고 행복했어요. 이 일을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박사할 돈이 없어(당장 생활비가 없어) 석사가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보니 정말 아무것도 없더군요. 이름 좋아 연구원이지 RA나 TA 급인 직종이 대부분이었어요.

석사는 잠시 머무르는 곳이니 그러려니 해요. 박사를 해도 국내 박사로는 대학 어느곳에도 자리잡을 수 없대요. 이미 **대를 나오면 끝났대요. SKY를 나왔어야 하고, 미국에서 학부를 마쳤어야 한 대요. 유럽 박사도 힘들고 미국에서 해야한대요. 당장 국내에서 박사할 돈도 없는데 도박보다 더 확률이 낮은 유학 준비를 해야한다는게 깜깜했어요. 유학다녀와서도 취업을 못한 강사 선배들을 마주하는데 말이에요.

공부 접기로 결심해서 기업 알아보고 있어요. 전 학부 때 경영 경제 복전한 애들보다 이미 뒤쳐졌죠. 고시 준비해서 실패한 친구보다도 뒤쳐졌어요. 그 친구들에 비해 난 내 전공을 정말 잘했고 난 이길로 가야겠다고 다짐했고 다른 길로 가는게 기뻤는데 현실은 대기업 공기업 다니는 친구들에게 밥 얻어먹는게 전부에요. 제 학위는 그냥 쓸모없어졌죠.

전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일까요? 학부 때 후배들에게 공부해라, 대학원 와라 했던게 후회돼요. 내 앞길도 제대로 못 가누는 데 누구에게 감놔라 배놔라 했는지 모르겠어요. 석사는 절대 서강대로 오지 말아라. 공부 할거면 나처럼 되지 말아라. 내가 할수 있는 말은 이거밖에 안남았네요.

안정된 직장을 갖고, 예쁜 자식을 낳고 사는 게 제 꿈인데 그걸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제일 불안하고 무서워요. 공부를 하려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무섭고 당장 제 옆의 동반자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것도 힘드네요. 내가 인문사회계열 석사급에서 일을 하면 최대 200을 벌 수 있는데 그나마 1년에 8개월 정도 일할 수 있더라고요, 간혹 1년짜리를 계속 연장할 수도 있지만 아주 소수의 직군이에요. 학예사와 같은 자격이 있거나 통계를 아주 잘하던가.

인문사회학도 여러분, 전공공부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쓸모없는 학문이에요. 내 교양과 지식을 채워주지만 그게 내 목구멍까지 채워주지 않아요. 대학원 가지 마세요. 취업하거나 창업하세요. 혹은 그냥 노세요.

대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공부라서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다면, 혹은 집에 여유가 좀 있다면 계속하세요. 포기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다면 우리가 하는 공부는 참 매력적인 공부에요. 돈 버는데는 쓸모 없어도 세상에는 쓸모있는 공부라는걸 확신해요. 난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했고, 지금도 대학원을 간걸 후회해도 내 논문을 쓴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연구하면서 제가 했던 작업이 사회에 쓰일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는 게 즐거웠어요. 다만, 내 공부는 의미 있어도 내가 의미가 없어지는 기분이지만요.

한창 시험기간에 공부 열심히 하는 후배들 보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에요. 전 취업지원팀에 취업 상담 신청을 할거고 행정학과 경영학 전공공부를 하며 공기업을 준비하겠지만 제 후배들은 부디 멋진 학자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IP : 121.131.xxx.108
1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6.4.21 12:55 PM (124.28.xxx.124)

    많이 읽고 정리한걸 기반으로 책 쓰셔서 강연 다니세요.

  • 2. ㅇㅇ
    '16.4.21 12:56 PM (39.7.xxx.69)

    사실 인문학이 공부를 위한 공부인 측면이 좀 있어서..
    쓸모없단 표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요
    돈 못 벌어 쓸모없단 얘기가 아니구요

  • 3. ㅇㅇ
    '16.4.21 12:58 PM (180.150.xxx.116)

    나이들어 보니 문이과 전공으로 전문직 아니면
    기술보유하신분들이 오래 일하시지요...

  • 4. 2것이야말로♥
    '16.4.21 1:11 PM (211.253.xxx.159)

    내 공부는 의미있어도 내가 의미가 없어지는 기분.. 이라는 구절이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ㅜ.ㅜ

  • 5. 참..
    '16.4.21 1:13 PM (218.51.xxx.229)

    씁쓸하네요.
    20년 후에 우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 6. ...
    '16.4.21 1:20 PM (14.32.xxx.52)

    요즘 평생학습 기관들에서 인문학 관련 강의 많이 하던데 본인이 열심히 하면 길은 없는 것 같지는 않던데..불안정하긴 할 것 같아요.

  • 7. ㅠㅠ
    '16.4.21 1:25 PM (66.249.xxx.218)

    슬프네요 우리를 지켜주고 지탱해 주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분들의 깊은 절망감 어떡하죠...

  • 8. dd
    '16.4.21 1:32 PM (60.29.xxx.27) - 삭제된댓글

    석사는 다 백수만있는줄아나ㅉ
    혼자 백수됐다고 남들보고 감놔라 배놔라 하는꼴
    지가 열심히안해서 취업못해놓고 참 많이많네

  • 9. ㄴㄴ
    '16.4.21 1:33 PM (60.29.xxx.27)

    석사는 다 백수만있는줄아나ㅉ


    지가 백수됐다고 남들보고 감놔라 배놔라 하는꼴


    지가 열심히안해서 취업못해놓고 참 말도 많다

  • 10. ,,,,,,
    '16.4.21 2:14 PM (39.118.xxx.111)

    인문학,,,,,

  • 11. 인문사회학도 여러분
    '16.4.21 4:22 PM (121.166.xxx.205)

    안녕하세요? 저는 오래전에 인문사회학을 전공한 사람인데요, 우리 때(86학번)도 인문사회학 전공자에 대한 인식이 원글님과 같았어요. 자조적으로 인문사회학 석사과정 남자의 신랑감 순위가 농촌총각 다음이라고ㅋㅋㅋ(박사과정 남자 신랑감 순위는 더 낮고 ㅋㅋㅋ)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국내박사과정이라고 했어요. 지금은 모 대학에 교수로 있는 선배박사과정 언니가 진지하게 '너 공부 안하면 막 아프고, 죽을 것 같니? 안그러면 박사과정 들어오지 말고 취직해'라고 했죠... 20년 전에도 똑 같았어요.

    그럼, 그 때 박사과정 한 사람들 지금 뭐하냐구요?
    박사 1, 2학기 하다가 유학 간 사람들은 지금 국내대학에서 교수 합니다.
    국내박사한 사람들은 교수한 사람들은 없지만, 국책연구원에서 연구위원들로 잘 지내고 있어요.
    저는 석사까지만 하고 회사 들어갔어요. 30대 초~ 중반까지만 해도 하염없이 박사공부 하는 친구-선배들이 불쌍했죠... 밥 사주고 술사주고. 그런데 지금은 입장이 달라졌어요. 박사 마치고 국책연구원에 들어간 사람들은 지금 40중후반인데 잘 살아요. 남들보다 10년 늦게 직업세계에 뛰어들었지만, 그 만큼 잘 살고 있어요. 앞으로도 정년까지 잘 살거에요. 슬프게도 자리 못 찾은 사람은 그럭저럭 연구교수, 강의교수 하면서 살고 있어요. 뭐...가장의 지위가 아니라면 좋아보여요.

    저는 어떻게 되었게요? 40초반이 되니까, 도저히 육아하면서 회사 못 다니겠더구만요. 힘들었어요. 회사도 밤낮없이 프로젝트 하는 회사-업종이라. 그래서 집에서 살림하고 육아해요. 일단 경력 단절되고 40후반 전업주부로 3년 살고 나니, 학벌이고 경력이고 다 부질없더군요...

    지금 당장 힘들어 보인다고 해서 포기하지 마세요. 남들보다 늦게 돈 벌고 어쩌면 평생 넉넉하지 못하게 살 수 있어도 가늘고 길게 살 수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길게 보세요. 꾸준히 한 눈 팔지 않고 한 우물을 판 사람들은 다 살게 되어 있더라구요.

  • 12. 인문사회학도 여러분
    '16.4.21 4:29 PM (121.166.xxx.205)

    인생 길어요~ 65세까지(교수) 또는 55세까지(국책연) 일할 수 있는 직장 많지 않죠...
    정규직이 아니어도 박사는 이런저런 프로젝트나 강의 하면서 근근히 살더라구요. 아직까지는요.
    (뭐... 가장이라면 고민되겠지만, 가장이 아니라면 월 150-200만원 수입 그게 어딘가요)

  • 13. ㄴㄴ 님께
    '16.4.21 6:13 PM (116.37.xxx.157)

    옛말에 세치혀 밑에 도끼가 있다 했어요

  • 14. ㅇㅇ
    '16.4.27 12:07 AM (116.34.xxx.173) - 삭제된댓글

    문과 머리로 이과가서 이공계열 대학 갔다가 적성 안 맞아 공대는 학부에서 때려치고 수능 다시보거나 편입 준비해서 인문계열 가거나 고졸로 취업 준비하는 사람 널렸어요.

  • 15. ㅇㅇ
    '16.4.27 12:07 AM (116.34.xxx.173)

    남의 떡이 커보이는 거죠. 문과 머리로 이과가서 이공계열 대학 갔다가 적성 안 맞아 공대는 학부에서 때려치고 수능 다시보거나 편입 준비해서 인문계열 가거나 고졸로 취업 준비하는 사람 널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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