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뚜껑이 총칼보다 강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2주년을 맞은 광화문광장!
12시쯤 광화문광장에 들어섰습니다.
지난 2년간 매주 토요일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아파하고, 잊지 않고 기억하여 다시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재발하지 않게 건강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자는 각오를 다지는 추모문화제가 열렸었고, 오늘은 참사가 일어 난지 2주년이 되는 날이고 총선이 있고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문화제이니 각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오후 1시가 가까워오자 가끔 빗방울이 흩뿌리기도 했지만 시민들은 계속 몰려들고 있었고, 분향소에 꽃 한 송이를 바치고 분향을 하는 대열에는 계속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년간 매주 토요일 보고 느꼈던 광화문광장 주변의 분위기와는 뭐라 꼭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육감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뭔가는 이상하다 생각하며 광화문광장을 벗어나 청계광장 ~ 시청광장 ~ 대한문 앞 ~ 을지로 입구 네거리 ~ 종로2가 로터리(보신각)로 한 바퀴를 삥 돌아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서야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시내중심부의 분위기가 지난 2년간은 물론 바로 전주와 비교하여도 많이 달라진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난주까지만 하여도 집회가 아주 크게 벌어진다 싶으면 경찰의 닭장차가 광화문광장을 삥 둘러 차벽을 쳐서 그 안의 세월호문화제에 참석한 사람과 광화문광장 일대를 지나가는 시민들을 휴전선철조망이 남북한 사람 가르듯 갈라 놨었고, 집회의 규모가 좀 클 것으로 예상되면 광화문광장 양편 길 밖 양쪽으로 닭장차와 물대포를 일렬로 대기시키며 광장의 집회참가자에게 무언의 압력을 넣으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었고, 아주 소규모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어도 이순신장군 동상 옆 양편에는 닭장차 10여대를 대기시켜 놓는 것은 공식화 되어 있었고, 집회참가자나 그 시간대에 그곳을 지나는 시민들도 그것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민중총궐기 대회나 여러 시민단체가 주축이 되어 집회를 주최하는 아주 큰 집회가 아니면 시위진압을 위해 대기하는 경찰병력이 집회참가시민들보다 항상 많았었는데 오늘은 경찰병력이 거의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짐작을 해 보니 그 이유는 바로 4.13에 있었던 붓 뚜껑의 위력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누가 법이고 규정이고 지랄이고를 따지지 않고 박근혜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하려 하겠습니까?
이 상황에서 누가 새누리당의 눈치를 살피려 하겠습니까?
광화문광장일전체를 훑어보니 지난주까지는 숫자를 헤아릴 수 없었던 경찰병력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고, 광장의 요소요소에 만약에 있을 지도 모르는 시민들의 동태를 파악하는 비무장경찰이 적당한 거리마다 1명씩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경찰도 지난주까지는 아주 긴장된 표정으로 무전기를 귀에 대고 살기서린 눈초리로 시민들을 고양이가 쥐를 쳐다보듯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허리춤에 감추었는지 무전기는 보이지도 않고 시민들을 바라보는 눈이 부처님 눈이었습니다.
진즉에 그럴 것이지!
이미 빗줄기는 굵어졌지만 광장은 시민들로 꽉 들어찼고, 분향소에 꽃 한 송이 바치고 분향을 하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은 꾸불꾸불 끝을 가늠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 무한정 기다리며 줄을 선 시민들을 뭔가로 위로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스티로폼 판에 본 대로 느낀 대로 갈겨썼습니다.
“붓 뚜껑이 총칼보다도 강했습니다.
매주말 광화문 광장에 철벽을 쳤던 닭장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시위군중보다 훨씬 더 많았던 경찰병력은 눈에 띄지를 않습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께서도 모처럼 장한 일을 한 후손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시고 계십니다.” 라고 휘갈겨 써서 장시간 줄 서서 기다리고 계신 시민들에게 보여줬습니다.
친구 분들과 어울려 자주 광화문광장 주말 세월호 집회에 나오셨던 분들은 휘갈겨 쓴 글을 읽고 주변을 둘러보시고 나서 친구 분의 옆구리를 찌르며 서로가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많던 닭장차를 누가 광화문광장에서 보이지 않는 어디로 몰아냈습니까?
그 많던 경찰병력을 누가 광화문 광장에서 종로통의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몰아냈습니까?
경찰의 그 독기서린 눈초리에서 누가 독기를 쏙- 뽑아내고 부처님의 눈으로 만들었습니까?
박근혜입니까?
김무성입니까?
김종인입니까?
안철수입니까?
그도 아니면 300명 당선자입니까?
모두 다 틀리셨습니다.
바로 당신의 붓 뚜껑 힘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붓 뚜껑 힘이었습니다.
(덧붙이는 얘기 : 오후 3시쯤 종로구 당선자 정세균의원이 김종인대표와 함께 광장으로 들어와 분향하는 시민들이 늘어 선 줄 맨 뒤에 서서 앞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 두 사람도 휘갈겨 쓴 판때기를 들고 서 있는 필자를 바라보며 판때기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정세균 의원은 다소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읽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고, 김종인은 힐끈 쳐다본 다음 일별도 안 하고 눈을 내리 깔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두 사람의 사람 됨됨이과 가슴의 온도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