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여- 우리 <버스44>의 승객이 되지는 맙시다!
우리가 왜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쟁취한 독립운동사는 피눈물을 흘리지 않고서는 읽을 수가 없는 역사이지만, 광복이 된 뒤의 헌정사 역시 피눈물로 범벅이 된 역사이다.
박정희가 군사반란을 일으켜 두 번 대통령을 역임할 때 까지는 피눈물도, 절망도, 기쁨도, 환희도 3천만 겨레가 함께 했었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굶주려도 함께 굶주렸었다.
그런데 박정희가 제2의 쿠데타인 3선 개헌을 하고나서 부터는 박정희의 행적 중 <친일매국>이나 <남로당 가입>을 능가하는 가장 못된 짓거리를 하였으니 그게 바로 영/호남 인구비가 3:1 이상인 것을 간파하고 호남출신인 김대중을 꺾기 위한 <지역감정>의 창조다.
단언컨대 그(1971년 7대 대선)이전에는 <고향사랑>은 있었어도 정치판에서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 뒤로 국토의 한편에서는 “지화자”를 부르며 기뻐하면, 반드시 한편에서는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는 국민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역차별과는 별개로 국민전체가 아닌 가진 자를 위한 경제정책을 펼쳐 한편에서는 돈이 썩고 배가 터지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입에 풀칠을 하기도 버거운 국민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게 다 박정희의 3선~유신시절 이후로 생겨난 지역감정과 부의 편중이 빚어낸 망국병이다.
그 망국병을 전두환-노태우가 물과 거름을 주고 키워 오늘날 불치병인 망국병이 되었다.
영남 분들이여!
특히 대구경북 분들이여!
솔직히 당신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시절 누릴 만큼 누리고 모을 만큼 모으지 않았는가?
물론 이명박-박근혜 8년간 경제가 죽을 쑤다보니 전국이 다 극심한 불황을 겪고는 있지만 그래도 당신들은 낫지 않은가?
당신들이 콧노래 부르고 터질 것 같은 배를 두드리며 지화자를 부른 박정희-전두환-노태우 30년간 호남에서는 생목숨이 끊기고, 피눈물을 흘리고, 하늘과 이 나라를 원망하며 사는 국민들이 있음을 왜 모르는 척 하는가?
투표는 당신들의 권리이니 어느 당 누구를 찍으라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당신들에게도 사람 보는 눈은 있지 않은가?
진박이 되었건 쪽박이 되었건 깨진바가지가 되었건 사람다운 사람을 국회로 들여보내기 바랍니다.
솔직히 대구경북에서 19대 국회에 들여보낸 면면들 중 시중잡배만도 못한 면면이 한둘인가?
그런 면면들, 정치가 아니라 국회에서 인간말종과 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음을 당신들도 똑똑히 보지 않았습니까?
제발이지 그런 면면들 이번에는 오리 알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박근혜와 가깝고 멀고를 따지지 말고, 합리적이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인가를 판단하여 그런 인간적인 사람을 여의도로 올려 보내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곁다리 이야기 하나 덧붙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의 문을 활짝 열고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남의 비극을 모른 체 하면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버스 44>
중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팩트)을 영화화한 초 단편(10분) 영화이고, 필자가 그 영화를 본 것이 아니고, 한 1년 전쯤 경향신문에 그 영화 내용을 소재로 한 칼럼을 읽은 것입니다.
중국의 산간 촌락을 운행하는 시외버스가 있었습니다.
그 버스의 운전기사는 미모의 젊은 여성이고 운전기사를 포함 41명을 태우고 운행하다 어느 산간에서 손을 드는 남성승객 1명을 태우고 얼마만큼 가다 다시 손을 드는 남자승객 3명을 태워 버스 안에는 45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만큼 가서 으슥한 골짜기에 접어들자 맨 마지막으로 탔던 남성승객 3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으로 무슨 신호를 주고받더니 버스를 강세로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미모의 버스운전기사를 막무가내로 끌어내려 숲속으로 끌고 들어가 3명이 교대로 성폭행을 자행했습니다.
그때 버스 안의 40명 승객은 내 일이 아니니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었으나, 성폭행 범 3명에 앞서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 탔던 남성 1명이 숲속으로 달려가서 운전기사를 구출하려 했으나 역부족으로 오히려 그들 3명에게 폭행을 당하여 중상을 입어 위급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버스안의 승객 40명 중 5~10명 정도만 한마음 한 뜻으로 힘을 모았으면 성폭행도 막고 그들 3명을 끈으로 묶든가 포대자루에 담아서라도 공안당국에 인계를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성1명을 제외한 40명의 승객은 내 일이 아니니 강 건너 불 보듯 하며 <먼 산 바라보기>였습니다.
폭행범 3명이 더러운 야욕을 채우고 침을 흘리며 버스에 다시 탔고,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는 여성운전기사와 절룩거리는 남성 1명이 다시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천만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성 운전기사가 자신을 도우려다 중상을 입어 치료가 시급한 남성을 내리라고 하며 그 남성이 안 내리면 버스를 운행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버스에서 먼 산 바라보기를 하고 있던 40명의 승객이 빨리 가고 싶은 생각으로 하나 같이 중상을 입은 남성승객을 빨리 내리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여성 1명이 인생을 포기할 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서는 모르쇠 하던 승객 40명이 버스시간 조금 지체되는 것에는 하나 같이 힘과 뜻을 함께한 것입니다.
중상당한 남성 1명이 내리자 버스는 출발하였고 한참 뒤에 온 다음 버스를 타고 중상당한 남성이 목적지이자 종점인 도시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헌데 종점의 버스회사가 발칵 뒤집혀 있었습니다.
앞선 버스가 산간 절벽에서 밑으로 굴러 떨어져 운전기사를 포함 승객 44명이 몰살을 당하여 구조대를 편성하느라 버스회사가 발칵 뒤집혀 있었습니다.
<영화와 얘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우리 더불어 살려고 하지 않고 내 잇속만 차리려다가는 저런 버스의 승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45명을 태우고 산간벽지로 들어가는 버스는 아닌지?
내일 여러분들의 귀중한 한 표를 중상당한 남성을 사지에 내버려 두고 버스가 출발하는 데로 표를 모으지 말고, 막무가내로 여성운전기사를 잡아끄는 성폭행 범 3명을 범행에 앞서 손발을 묶는 데로 모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유권자 여러분이 표를 모아 주시는 데 따라 버스가 절벽으로 구를 수도 있고, 여성운전기사도 보호하고 모든 승객도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고, 흉악범 3명을 미수에 체포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하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