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은 절친이 외국에 있습니다.
제 아이들이 이제 모두 대학생들인데
애들 큰 애 초등 6학년 때 쯤 피아노를 살까, 어쩔까 했더니 제 친구가 자기 피아노 가져가라 하더군요
영창피아노 1979, 80년산이네요.
제 친구는 외국에 있고 그냥 갖다 쓰다가, 애들도 안쓰고 자기 귀국해서 필요하면 그 때 그냥
돌려주면 된다고요.
친구 어머니도 고등학생 때부터 아는 지라 전화드리고 제가 피아노를 가지러 갔지요.
사람도 다 제가 부르고 미리 전화드렸더니 돈을 좀 주면 하셨습니다. 친구한테는 말하지 말고 ㅎㅎ
떡 한 상자 맞추고 30만원 봉투에 넣어 드렸습니다. 친구한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와서 조율도 두 번 하고 한 동안 아이들도 잘 썼습니다.
피아노 열어보지도 않은 지가 어언 6, 7년 되나 보네요.
둘째 방에 두었는데 이제 안 쓸 것 같고 방도 좁으니 치우자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친구하고 의논해야 할 것 같아 국제전화도 했지요.
저희 집이 오래된 아파트라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어 반드시 사다리차를 불러야 하고 친구네도 그렇습니다.
제가 처리해 친구 집으로 보내면 될 것 같아 그렇게 하자고 했더니 친구가 엄마랑 의논해보고 그냥 팔면 어떠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랑 통화해서 처리하기로 했는데 어머니가 알아보신다고 했습니다.
전화 번호를 주시며 입금 전에 그 사람더러 당신하고 통화하라고 전하라 했습니다. 당신 계좌번호를 주신다고요.
저야 제가 운송비를 지불하고 돌려드릴 생각이었지만 왜일까요, 조금 마음 한 구석에 쌔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운송비도 안 들게 되었는데도 말이지요.
그런데 사다리 차를 써야하는 문제로 두 어 차례 성사가 되지 않았고, 어머니가 그냥 저더러 알아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근 한 달 사이의 일이네요.
오늘은 제가 오전에 반차를 내고 집안 일을 좀 보다가 검색해서 피아노를 치우게 되었습니다.
연식을 말하고 사다리 차로 내려야 한다니 오만원을 부릅니다. 그냥 수거하는 수도 있다면서요.
저는 십만원 정도는 주시라 얘기했고 상태 봐서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잘 모르는 상황이라 제가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손해를 보더라도 시간 있을 때 - 오후 늦게 오기로 해서
제가 반차를 연차로 바꾸었습니다 - 그냥 치우자는 마음이어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됐다고 어머니께 전화드리고 계좌 번호를 여쭈었습니다.
십만원은 말도 안돼니 20만원은 받으라고 하십니다.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계좌번호를 받았습니다.
오만원을 받든 십만원을 받든 20만원 맞추어서 내일 입금해 드리려고 합니다.
후 마음이 쫌 안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친구들한테도 얘기는 안할거구요.
낼 모레 팔십이신 어른이지만 최고학부 나오셨고 전문직 잘 나가는 아들 있으십니다.
혼자 지내시고 편찮으신데도 있지만 활동적이신 분이고 아파트 부녀회장도 하신 분이지요.
전문직 잘 나가는 아들도 있지만 결혼 안 하고 외국에 있는 딸 걱정 많으시고 제가 뵐 때마다
결혼 안 한 당신 딸하고 오래 오래 친구로 잘 지내라고 말씀하십니다.
돈 잘버는 아들 있어도 알뜰하게 살아오신 분이라 알뜰하게 챙기시는 거라고 좋게 좋게
생각해보려고 하는데 마음 쌔한 것은 좀 갈 것 같으네요.
그냥 용돈 삼아 드릴 수도 있고, 그냥 선물도 드릴 수 있는 관계인데요.
제 친구와 저를 아는 다른 친구나 후배들은 제가 친구한테 지나치게 잘 한다고 합니다.
직장 다니지만 친구가 20여년 동안 외국 생활하면서 일 년에 한 번씩 어쩌다 두 번씩 한국 들어올 때마다
정말 저한테 사정이 있었던 두 세번 쯤 빼고는 공항에 마중나가고 공항에 데려다주곤 했습니다. 와서 지낼때면 밥을 먹거
나 여행을 가거나 하면 제가 다 지불하고요.
흔히 여기에서 말하는 호구였지요. 호구라고 생각 안하고 제가 할 수 있으니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으니까 하지, 할 수 없으면 못하겠지 하면서요.
모든 관계의 기본은 기브 앤 테이크라고 생각합니다. 작거나 크거나 적거나 많거나 간에 시간이든 돈이든 애정이든
내가 적게 주고 많이 받을 수도 있고 많이 주고 조금 받을 수 있어도 일방적인 것은 없다고요.
제가 이제와서 이 일로 친구를 안 보는 일은 없겠지만
마음은 조금 다쳤네요.
차라리 친구 어머니한테 그냥 한 백만원 쯤 드려야 한다고 했어도 했을 겁니다. (결국은 명분? 무슨 명분?)
아우 이게 뭘까요? 아무한테도 - 남편한테도 - 말 안 할 것이라서
여기에다 임금님귀는 당나귀귀하고 갑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