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각엔 살림도.. 공부 잘하고 노래 잘하고 운동 잘하는 것 처럼 다 따로 타고 나는 재능중에 하나인것 같아요.
여기에서 살림이란.. 집안 정리정돈, 빨래, 청소, 요리, 매달 규모있는 지출을 계획 세워서 잘 해내는것.. 뭐 그런것을 총칭하는 의미로 씁니다.
그리고 전 살림에 정~~말~~~로 재능이 없어요. 이제 40대인데 아직도 살림을 이리도 못하는걸 보니.. 정말 구제 불능인듯 합니다. 아마 공부로 치자면 반에서 꼴등정도 하는 정도 아닐까 싶을 정도요..
일단 성격이 정리 정돈이 잘 안되는 성격입니다. 타고나기를 게으르고 에너지 없고 몸은 자주 아프고요.. 정신 차리고 정리정돈 잘 해놔도 깜빡 하면 반나절 사이에 집안이 다시 엉망이 되어요.
손재주가 없어서 부엌일을 하면서 뭔가를 엎어 버리고 부엌에 있으면 뭔가를 떨어뜨린다거나 냄비를 놓친다거나.. 이런일이 너무 비일비재하고요. 어제는 냄비채 있던 국을 하나가득 다 엎어버리고 나도 이런 내가 싫고 혐오스러워서 한동안 망연자실 했었어요..
생각해보면 어릴때부터 뭔가 살림과는 안맞는 인간형이라는걸 스스로도 알았던것 같아요. 교과목중 가정/가사 점수가 제일 낮았구요. 밥짓는 시간 뜸들이는 시간.. 이런걸 외워야 한다는게.. 학문도 아닌데 이런걸로 시험본다는게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더라구요. 뭔가 제 사고 체계로는 이런일들이 가치 있는 일들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것 같아요.
그런 주제에.. 친정엄마는 언제나 살림을 반딱반딱 윤이나게 하시는 분이라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어서 집안이 제대로 윤이 나고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혼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형입니다. 그러니 한마디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행위에는 소질도 없고 노력도 안하고 큰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 주제에, 제대로 된 쾌적한 살림살이는 누리고 싶고 누려야 하는 이율배반적이고 아주 이기적이고 게을러 빠지고.. 뭐 어디 한군데에도 쓰잘데기가 없는 인간이 아닌가.싶어요. 제가.. ㅠㅠ
부모가 집안일을 안시켜서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 정반대였습니다. 저희 엄마는 저희 남매를 항상 집안일을 시키셨었어요. 그리고 제 남동생이 저보다 백배는 더 잘해서 칭찬도 많이 받고 그랬었던것 같아요.
이런 제가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은 잘 다니고, 정리정돈을 칼같이 하고 제대로 체계화 해서 일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잘 해내고 있습니다.. 제 정리정돈 스킬을 아는 남편이 네가 네 일을 잘 하는게 불가사의라고.. 한숨을 쉬어요.
제 생각에는 제가 워낙 타고난 성향과 다른 직업을 가지고 오랫동안 일하다보니.. 그 직업에 남들이 쓰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고 (제 본능과 거스르는 일을 함에 있어서).. 그러니 집에 와서 더더욱 늘어지는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모든 살림을 도우미 도움을 받고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냥 한평생 돈을 열심히 벌어서 내가 타고 나지 못한 재능을 그 돈으로 메꾸는 느낌..? 이랄까요. 그리고 작년부터 오시는 도우미 아줌마가 특별히 살림을 잘하시는 분이다 보니.. 그분을 보면서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아 이분은 정말 살림살이를 잘하는 재능을 타고 났구나.. 나는 참말로 따라 갈수 없는 재능이구나.. 하고요.
한편으로는.. 제가 지금 세상에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다.. 싶습니다. 여자의 모든 덕목이 살림을 잘하는 그 딱 하나로만 정해져 있었던 시기에 태어났다면.. 나 같은 여자는 어디 똥막대기 취급 받고 소박받고 참 비참한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도 궁금해요.. 저같은 여자.. 이 넓은 세상에 어디 한두명 정도는 더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