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따뜻한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

행복은 조회수 : 1,022
작성일 : 2016-03-20 22:45:35

일요일인데.. 세남자들 모두 밖에 나가 있고... 혼자 느긋하게 놀고 있는 저녁이네요..

간단히 저녁을 먹고 주방정리를 하다 냄비 수납장 한구석에 있는 녀석과 눈이 마주치니

웃음이 베어나옵니다...

지름 10센티남짓되는 빨간색 범랑냄비....

예쁘긴 하지만 너무 작아서 어디다 딱히 써볼데가 없는 그런 냄비입니다..

이 작은 냄비가 제 주방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게된지 벌써 십오륙년은 훌쩍 넘었네요...

음전하고 조용했던 큰아들과 달리 부산하고 활동적이었던 작은아들놈이 네 다섯살쯤 무렵에..

아이와 같이 수입잡화점-그때는 여기 가서 구경하는 게 참 재미졌답니다.  외벌이 월급쟁이 가계라 넉넉치 않아

늘 구경만 했다는..

하여튼 시장갔다가 방앗간 못지나가는 참새모양 한번씩 들러서 구경을 했거든요..

근데 그날 우리 아들놈이 그 예쁜냄비를 건드려 떨어뜨렸답니다..

그래서 빨간 범랑손잡이에 콕하고 상처가 생겨버렸어요...

울며 겨자먹기로 정말 쓸모없을 것 같은 그 냄비를 사가지고 왔더랍니다.

쓸모도 없을 것 같은데... 가격은 왜이리 비싼지...

데려오고 몇년은 마음이 쓰려서 쳐박아두고 쳐다도 안봤답니다.

그때 울 작은 아들놈의 어쩔줄 몰라하던 표정...과

고개를 푹 숙이고 절임배추마냥 기가 죽어버린 꼬맹이가 이젠 군대도 다녀오고 엄마 설거지도 도와주는 늠름한

아들이 되었네요...


요즘엔 저 냄비와 눈이 마주치면... 그 날들이 떠오르네요...

종이장같은 체력에 아들 두놈과 씨름하고... 참으로 유별난 시댁식구들과의 화합(?) 시달리며 살아냈던 그 날들이요..

남편은 새벽에 나가면 열시이전에 들어오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이고...

경기도에 조성된 신도시에 만삭으로 입주해서.. 다섯살 큰놈 손잡고 전입신고하러 한겨울 칼바람속을 40분 걸어갔던..

그시절말입니다....

 우리 남편은 그 때 왜 휴가라도 써서 그런일을 해결할 생각을 안했었는지 말이죠...

그때 춥다고 힘들다고 투정 한마디 안하고 제손을 붙잡고 걸어주었던 우리 큰아들한테도

고마움이 솟구치네요. ㅎ ㅎ

그랬던 아들이 이제 삼년만 있으면 그시절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가고 있답니다...

반백년 넘겨보니 인생이... 참 별게 없네요..

그리고 행복은 이렇게 떠오르는 추억들의 집합인 것 같습니다..


집앞 나무끝에 물이 올라 마치 보석인듯 반짝입니다..

다시 봄이 왔네요...




IP : 124.50.xxx.18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
    '16.3.20 10:53 PM (39.113.xxx.52)

    어린 시절하면 늘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꼭 따뜻했다고 하긴 그렇지만 친구들하고 놀거나 혹은 만화방에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만화보다가 갑자기 어둑해진걸 깨닫고 집에 가는길. . .
    엄마한테 혼날까봐 급한 마음에 집에 가는길엔 어느집에선가 석쇠에 생선굽는 냄새, 된장찌개냄새같은게 났었죠.
    그리고 평범한 식탁이었지만 저는 시래국에 갈치구이를 참 좋아해서 난 이렇게 먹는게 제일 좋아~ 하면 엄마가
    아이고~ 그놈의 입맛은. . .하면서 웃으시던 기억요.

  • 2. ...
    '16.3.20 11:25 PM (220.116.xxx.159)

    원글님 글 잘 쓰시네요

    수필 같은 거 써 보셔요^^

    글에서 반질반질 윤이 납니다.

    덕분에 행복한 일요일 밤이에요.

  • 3. 글쎄요
    '16.3.20 11:46 PM (223.62.xxx.8)

    아들이 사람인지 냄비가 사람인지 헷갈리네요.

    뭔가 따뜻한 글이여야 한다는 듯..의인화가 넘 심해서...

  • 4. 돼지귀엽다
    '16.3.21 12:36 AM (211.208.xxx.204)

    잘 읽었습니다.

    그런 추억들이 하나하나 모여
    삶이 완성되네요.

  • 5. ㅎㅎㅎ
    '16.3.21 8:16 AM (211.208.xxx.144) - 삭제된댓글

    그래서 나이든 사람이 물건을 못 버리나봐요.
    물건에 추억이 깃들여 있으니...
    행복한 글입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540261 정말맛나는케잌 2 케잌 2016/03/22 1,507
540260 선거철이지 말입니다.ㅠ 4 힘내라주진우.. 2016/03/22 562
540259 자다가 자꾸 팔이나 손이 움찔거려서 깨요... 1 자다가 2016/03/22 1,547
540258 초등 수학 쎈이 수준 어느정도 인가오? 8 하니 2016/03/22 2,424
540257 대입결과도 그렇고 치과 어렵다 어렵다 하더니 진짜 어렵나보네요 1 김장 2016/03/22 1,677
540256 마지막 김장 담았네요. 13 봄김장 2016/03/22 3,050
540255 후쿠오카여행에서 ㅇㅇㅇ 2016/03/22 1,100
540254 타지생활 .. 외로워요 . 6 .. 2016/03/22 2,353
540253 많이 비싸지 않은데 맛있는 거 있나요?? 55 심심 2016/03/22 17,075
540252 치아가 빠져서 임플란트 해야한다는데 9 힘들어요? .. 2016/03/22 3,569
540251 베이비시터 석류‥누가 했음 좋았을까요? 21 드라마 2016/03/22 4,284
540250 등산다니면서 아닌척 불륜하는 사람들 많네요 14 ㅇㅇ 2016/03/22 10,078
540249 웃을때 애플존이 업되면서 볼륨감있는거 무슨 시술한건가요? 6 ... 2016/03/22 2,372
540248 4대보험 알려주세요 5 답딥 2016/03/22 808
540247 구경하는 집 인테리어들은 왜;;; 2 ;; 2016/03/22 3,159
540246 일요일에 면접을 보고 토요일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기로했는데 2 dd 2016/03/22 987
540245 총체적으로 여기저기 아프신분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7 ........ 2016/03/22 1,326
540244 저 초등학생때 꿈은 판사였는데 현실은... 7 .... 2016/03/22 2,092
540243 키커보이는 운동화 고르는법좀 알려주세요 20 플리즈 2016/03/22 4,875
540242 메르비 쓰시는 분, 메르비 매일 써도 되나요? 7 ㅇㅇ 2016/03/22 6,478
540241 입이 나왔는데 얼굴이 예쁜분 보셨나요? 50 이뻐지고싶어.. 2016/03/22 31,303
540240 살림살이 참견하는 남편에게 정이 떨어져요 6 ㅇㅇㅇ 2016/03/22 2,646
540239 날씨 일교차 넘 심하네요ㅠ 4 3월 2016/03/22 1,298
540238 중학교 남학생들 사이 사소한 싸움 5 중1엄마 2016/03/22 1,176
540237 유기농 마테차 ...맛이 있고 건강에 유익한가요? 궁금 2016/03/22 1,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