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텅- 비우니 세상이 이렇게 좋은 것을!
“극락”이라는 것이 있는지? “천당”이라는 것이 있는지?, 그도 아니면 “화염지옥”이라는 것이 있어 이 더러운 몸뚱이의 살점이 토막토막 저며져 고추장이나 소금에 버무려져 시뻘겋게 달은 불판위에 올려지는 “화염지옥”에 가 려는 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간 지나온 70년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 보건대 “천당”이나 “극락세계”와는 거리가 먼 인생임을 스스로는 잘 알고 있다.
죽어서는 지옥에 갈 각오를 진즉부터 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4.19혁명(1948년생) → 5.16군사반란 → 10월 유신 자작쿠데타 → 1979. 10. 26김재규의 혈혈단신 혁명 → 80. 5. 16 전두환의 피의 광란 → 노태우~김영삼을 거쳐 → 드디어 이 땅에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뤄 김대중~노무현의 집권을 직접보고 겪은 세대로서, 이명박~박근혜 8년을 거치면서 왜 우리가 평화통일을 해야 하는지, 왜 민주주의를 꼭 해야 하는지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그래서 이명박의 해괴망측한 독재에 줄기차게 저항하다 잠간동안이기는 하지만 평생처음 “유치장”이라는 곳도 가 보았고, 재판정에 서서 판검사와 입씨름도 해 보았고, “벌금”이라는 강탈도 당해 보았고, “콩밥”이라는 것도 목구멍으로 넘겨보았다.
그렇게 걱정했던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었다.
어쩌면 막을 수도 있었는데 뭔가 보여줄 것 같던 야당은 스스로 백기를 들고 테러방지법 통과에 일조를 했다.
일부 야당의원들의 눈물 나는 필리버스터를 보며 어쩌면 테러방지법을 막거나 독소조항을 고쳐서 통과가 될 것도 같다는 희망을 가졌었다.
하지만 야당은 앞으로 닥쳐올 민주주의의 무참한 죽음 보다는 당장 20대 총선에서 다시 금배지 다는 것이 급했던 모양이다.
3월 10일까지는 끌 수 있었던 필리버스터를 하필이면 2천만 겨레가 왜구의 압제에 목숨을 걸고 떨쳐 일어났던 3.1절에 이의 중단을 결정하고 다음날 한밤중에 이를 중단한단 말인가?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필리버스터를 시작이나 하지 말 것이지, 의정단상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발언을 한 의원들의 절규와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국민들의 여망을 저버리고 이렇게 허무하게 두 손을 든단 말인가?
여당이라는 것은 말할 가치도 없고, 미우나 고우나 새끼라고 못난 야당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었다.
그런데 그 야당마저 눈앞의 금배지에 급급해 민주주의와 나라를 버렸다.
국민이 버린 나라는 하늘도 버린다.
앞으로 이 나라 어찌되는지 보자!
이제 “유신시절”과 “전두환의 군홧발 통치”시절이 태평성대였다는 탄식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겠다.
못나 디 못난 나도 조국을 버리기로 했다.
조국을 버린다고 해서 어쭙잖은 인생이 어디 이민을 갈 주제도 못 되고 목숨 다 할 때까지 이 땅에 죽쳐 살기는 하되 머리를 “텅”비우기로 했다.
영혼이 없는 인간이 되기로 했다.
쉽게 얘기해서 “골빈 인간”이 되기로 했다.
머리를 텅 비우는 순간 세상걱정 말끔히 사라지고 당장 배부르고 등 따스우니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이 바로 “천당”이다.
청개구리 복 한 벌 사서 걸치고 길거리에 흔해빠진 알루미늄 깡통 오려서 훈장 만들어 가슴에 주렁주렁 달고 내일부터는 뭔 연합에나 가입해 앞에서 떠드는 사람이 태극기 흔들라면 팔이 빠지도록 흔들고, “종북좌파 척결”하면 목이 터져라 복창을 하고 정해진 시간 끝나면 뒷골목으로 가서 나눠주는 봉투나 챙겨야겠다.
머리를 텅- 비우니 세상이 이렇게 즐거운 것을!
왜 내가 진즉에 그런 오묘한 진리를 몰랐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