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안흔한 서울대생 이야기

우와 조회수 : 3,908
작성일 : 2016-02-19 18:20:04
출처 :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https://www.facebook.com/SNUBamboo/posts/993050337453265?fref=nf

동기들끼리 술을 마시다가 말이 나왔다.
"야, 근데 너는 군대 안 가냐?"
"군대? 가야지."
나는 그리고 서둘러 잔을 들었다.
"야, 잔 비었다 잔."

나는 군대를 안 간다.
못 간다고 쓸 수도 있는데, 그렇게 쓰기에는 군대를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나는 가장이다. 엄마아빠는 둘 다 고아라고 했다. 보육원에서 같이 자라고 결혼했다고.
그리고 내가 열두 살 때, 두 분은 버스사고로 돌아가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었을까, 일곱 살짜리 동생과 두 살짜리 동생을 위해서.

공부를 하고, 새벽엔 배달을 하고, 다섯 평짜리 방에서 셋이 잤다.
학교에서는 장학금도 줬다. 수급자비도 정부에서 줬다.
분유, 기저귀, 대부분 그런 걸 사는데 썼다. 물론 그 때는 지금보다는 쌌다.
그래도 꼬박꼬박 저축도 했다. 한 달에 오만 원, 많은 돈은 아니었다.
사실 그것도 주인집 아줌마 명의였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아줌마가 나를 앉혀두고 말했다.
"너, 대학 갈 거니?"
"아, 일하려고요."
"아니야, 잘 들어.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 그래서 과외를 하렴."
어린 나이에 몸이 상하면 나중에 더 먹고 살기 힘들다고 했다.
몸도 커서 다섯 평에서 자기도 힘들 텐데, 돈 많이 벌어서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라고.
세상에 착한 사람이 있다는 걸 나는 이 아줌마 덕에 믿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믿기 어렵게도 이 대학에 붙었다. 물론 기회균등 전형이었지만.
과외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다. 한 달만에 내 손에 60만원이라는 돈이 들어왔다.
학교에서는 생활비 장학금을 줬다. 정부에서도 아직 지원을 끊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아줌마한테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
그리고 동생들과 며칠 전에 아줌마를 찾아갔다.
뭘 사갈까 고민하다가 고구마케이크랑 음료 세트를 양 손에 들고 갔다.
아줌마는 고생했다고 우리 등을 다독여주셨다.
큰동생은 이제 고삼이다. 작은동생은 이제 중학생이 된다.
그렇게 계산하더니 아줌마는 정말 빠르게 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괜히 눈물이 났다. 결국 우리 넷은 울었다.

이 자리를 빌어,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아줌마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
저는 이제 졸업을 합니다 아줌마. 다 아줌마 덕분입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사랑합니다.

IP : 210.91.xxx.225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하....
    '16.2.19 6:24 PM (183.100.xxx.240)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지만
    잘 커서 다행이고 아줌마께 감사하고
    서로서로 도울 수 있슴 돕고 살아야죠.

  • 2. ...
    '16.2.19 6:29 PM (211.252.xxx.11)

    착한 주인 아주머니 만나서 다행이고 젊은 청년이 동생들과 반듯하게 자라줘서 고마움에 눈물이 왈칵나네요

  • 3. ..
    '16.2.19 6:31 PM (183.98.xxx.95)

    정말 대단한 학생입니다
    장합니다
    그리고 아줌마도 너무 훌륭하신 분입니다

  • 4. ㅇㅇ
    '16.2.19 6:43 PM (125.146.xxx.25)

    잘 컸네요
    어린 두 동생도 보살펴가며 지금까지 이뤄낸 학생 정말 대단하고
    앞날도 잘 풀리길 응원드려요

  • 5. 기쁨양
    '16.2.19 6:58 PM (223.62.xxx.97)

    와... 대단하네요ㅜ 이게 되나요ㅜ

  • 6. 하루하
    '16.2.19 7:20 PM (180.66.xxx.238)

    아.. 온몸에 전율이..
    정말 좋은아줌마와 학생이네요.

  • 7. 뉴스라든가
    '16.2.19 7:36 PM (211.245.xxx.178)

    뭐가 됐든 이런 소식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저도 더 착하게 살거 같거든요.
    맨날 나쁜사람들이 잘먹고 잘사는 얘기만 들리니 착하게 살면 손해보는거같잖아요.ㅠ
    저런 아줌마가 더 많아지는 사회면 더 좋을텐데요.

  • 8. 홍이
    '16.2.19 9:19 PM (124.49.xxx.69)

    오랜만에 좋은글입니다
    다들 복받으실거에요

  • 9. 힘내자!
    '16.2.19 11:04 PM (115.143.xxx.223)

    울컥합니나. 저 학생가족과 아주머니에게 꽃길만 있기를…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이야기가 많아지기를… 눈물나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573370 오늘 같은 날 인터넷 장 보고 배달시키시나요? 2 빗소리 2016/07/05 1,018
573369 이유없이 불안할때 있으신가요? 5 갱년기? 2016/07/05 1,665
573368 연애)고백타이밍인가요... 10 샤르맹 2016/07/05 3,173
573367 황태채로도 육수가 잘 우러나나요? 7 황태채 2016/07/05 1,757
573366 지금 세탁기 돌리는데요 ㅜㅜ 5 .. 2016/07/05 2,149
573365 이혼하면요 18 2016/07/05 5,268
573364 페루 폭포에서 우리나라 관광객 사진찍다 떨어졌다네요 3 ,, 2016/07/05 4,037
573363 단체 이메일 보내고 누가 안 읽었는지를 어떻게 아나요? 1 주런 2016/07/05 495
573362 혹시 러시아 영양제중 cigapan 이라고 써있는 약 1 000 2016/07/05 2,189
573361 냉장고 새로 사면 청소하고 써야 하나요? 3 ..냉장고 .. 2016/07/05 1,761
573360 빈자리에 옆사람 옷자락 늘어져 있는 거,, 왜 잘 안치워주는거에.. 8 지하철 2016/07/05 1,742
573359 새 옷장이 오늘 오는데 원목이라서요. 받는거 미룰까요? 6 하맆 2016/07/05 1,758
573358 아침에 흐뭇한 광경 1 몰겐도퍼 2016/07/05 1,218
573357 오늘 부암동 가고 싶네요 8 장마네 2016/07/05 3,179
573356 시험기간에 영양있는 음식 어떻게 신경쓰시나요 49 중2 2016/07/05 1,641
573355 인테리어공사2 달째 2 답답 2016/07/05 2,360
573354 2016년 7월 5일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만평 1 세우실 2016/07/05 527
573353 뭐든지 맘데로 하는 엄마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3 아아 2016/07/05 1,594
573352 남편 월급 260만원으로 사는 우리집 가계부 121 월 천은 어.. 2016/07/05 34,000
573351 독서습관 잡아주기.. 책이 너무 없는데 괜찮을까요? 9 엄마 2016/07/05 1,440
573350 우째 이런 실수를! 꺾은붓 2016/07/05 1,123
573349 새벽에 일어나서 보일러 틀었어요 1 ... 2016/07/05 1,598
573348 [사이언스 토크] 할머니 가설 2 춘양목 2016/07/05 929
573347 꿀잠을 잡시다 2 꿀잠 2016/07/05 1,711
573346 개 뭣같은 상사 2 2016/07/05 1,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