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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어릴때 기억이 생생해요

손녀딸 조회수 : 934
작성일 : 2016-02-14 09:16:18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멀리 산단 핑계로 장례식에는 가보지도 못하고(남미삽니다) 자려고 누우니 할머니랑 지냈던 시간이 생생하네요.


어릴 때 아빠가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해서 오래계셨었어요.

그 때 기억은 가족모두에게 아픈 상처여서 제가 얼마나 할머니 집에 있었는지 뭐 그런건 물어본 적이 없어요.

기억을 더듬어보면,

올림픽 때여서 낮에도 티비에서 운동선수가 나왔던것..

할머니따라 시장 갈 때 가로수에서 아주 커다란 이파리가 떨어졌던 것..

뭐 그래서 88년 여름~가을 정도에 외할머니댁에서 지냈던 것 같아요.


할머니 댁은 마당에 수도 시설이 되어있었는데도 펌프가 있고 화장실도 밖에 있었어요

화장실 옆에 커다란 개장에는 저보다 더 큰 개가 항상 묶여 있었는데

화장실 갈 때마다 커다란소리로 짖어대서

큰 일 아니면 할머니몰래 마당수돗가에다가 했던기억이 나요

마당 수도에는 제가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큰 빨간 고무 물통이 있었고

동그랗고 주둥이가 있는.. 한 가운데 판박이스티커 같은게 너덜너덜하던 바가지가 항상 물위를 떠다녔지요

할머니가 오전에 낮잠 주무시면 마당을 어슬렁 거리면서

한참을 그 바가지가 바다를 떠다니는 배 인듯 쳐다보고, 대문 바로 옆에 있는 계단을 올라 옥상에서 놀았어요.

그 땐 제가 너무 작아서였는지 옥상에서 내려다 보면 사람들 머리위가 보이는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냥 2층 높이 였는데 말이죠

애국가가 나오면 사람들이 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던기억

옥상위의 장독들이 반질반질 빛나던 것, 그 옆에만가도 나던 장냄새들

파란색 네모난 플라스틱 화분에 심어졌던 상추같은 채소들..

베베꼬인나일롱 빨랫줄 플라스틱 빨래집게..

그런게 다 기억나네요


마당이 훤히 보이던 외할머니외할아버지의 조그만방

딱딱하고 둥그런 원통형 베개, 실크같은 베갯닢

거울이 달린 미닫이 문의 장농

그 안에 한상자 가득있던 판피린, 까스활명수 ㅋㅋㅋ

밤마다 이불 걷어찬다며 할머니가 얇은 담요를 배에 둘둘 감아 옷핀으로 고정해주셨던 것

가끔 배앓이를 하면 "할머니 손은 약속 00배는 똥배" 노래 불러주셨던 것

할머니 옆에 누우면 나는 할머니 심장 뛰는 소리...

길고 마르고 딱딱하고 굽은것같은 할머니 손가락 따뜻한 손..

그 손으로 바삐 김을 구어 기름을 발라 소금을 뿌려 김통 가득 채워놓으시던것

할머니가 하면 유난히 맛있는 멸치볶음

막내외삼촌이 좋아한다고 빼먹지 않고 하시던 깨랑 설탕 소 넣은 송편

이제 다시는 못 먹겠지요?


부엌 한 구석에 놓여진 컵에는 할머니 틀니가 ㅋㅋㅋㅋㅋㅋ

할머니면서도 맨날 흰머리 뽑아달라고 하셨던거

나랑 할머니랑 화투쳤던 것 (할머니정말 심심하셨었나봐요)


커다란 가위로 작은 조각까지 다 잘라주셨던 종이인형놀이.. 내복 두상자 모았는데요..

두자리수 더하기 두자리수도 외할머니가 가르쳐주셨고요

매일 숙제를 공책에 내 주셨는데 채점은 잘 안해주셨었어요

(할머니가 만든 문제이니 채점을 하려면 할머니가 다 풀어보셔야 해서 힘드셔서??)


아...

왜 이렇게 기억이 생생할까요


이렇게 할머니를 기억하면 할머니의 할머니로서의 삶이 대단해지는 것도 아닐텐데

아직 기억이 날 때 이렇게 어딘가에 남겨두고 싶어요


엄마가 자식 중에 할머니한테서 제일 멀리 산다고 속상해하셨는데

제가 젓가락질 할 때 마다 멀리도 잡는다고 혼내시기도 했는데

어찌 저는 또 이렇게 지구반대편에 살고 있을까요..

IP : 179.190.xxx.31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6.2.14 9:50 AM (221.141.xxx.20)

    저도 그래요.
    외할머니에 대한 따뜻한 기억들,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요.
    가끔 꺼내 보세요.
    되새기면 기억이 오래오래 갑니다.

  • 2. 원글
    '16.2.15 1:43 PM (179.190.xxx.31)

    윗님..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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