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들은 말이
꿈은 넓고 크게 가져야 한다.
직업은 판검사, 의사, 외교관 같은 전문직이 좋다.
교사, 약사, 공무원은 별로인 직업이다...
왜냐하면 현실에 만족하며 안정성만 추구하는, 자기 발전이 없는 직업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이상한 세뇌(?)를 받으며 자랐어요.
(제가 대학에 갈 때는 교차 지원이 가능해서 약대, 교대 등 다 갈 수 있었고 저도 가고 싶었는데,
엄마가 무슨 일이 있어도 약대, 교대는 안 된다고 완강히 반대하셔서 결국 재수를 해서 다른 과에 들어갔었네요;;)
시간이 흘러 지금은 엄마의 바램대로 전문직 여성이 되었지만 막상 사회생활을 해 보니
엄마의 저런 극단적인 이분법적인 사고방식, 고정관념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고
교사, 약사, 공무원 등의 직업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요.
저희 엄마는
엄마가 강력히 추천하는 세 전문직 중 하나에 종사하셨는데
늘 바쁘셨기에
학교를 가고 공부를 하는 등 거의 모든 생활은 제가 스스로 했어요.
물질적인 풍요로움 속에서 생활했지만,
돌이켜 보면 내 자신을 예쁘게 가꾸는 것에 많이 서툴렀어요... 모범생 촌닭 이런 이미지였죠.
엄마가 교육에 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외모를 꾸미는 것에 대해서 많이 엄격하셨거든요.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서 주변에 조언을 구하기도 힘들어서
부모님을 통해 접하지 않으면 새로운 시도를 하기 힘들었어요.
학창시절 교복만 매일 입다 소풍날은 예쁘게 옷을 입고 싶었는데
옷을 사달라고 하면 꾸중을 들었고,
제가 피부가 많이 좋지 않아서 얼굴이 울긋불긋했는데
그 때 피부과에 가서 치료받고
사진 찍을 때 만이라도 비비크림을 발랐으면
지금처럼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펼쳐보지 못하는 그런 일은 없었을텐데 말이죠^^;;
대학생이 되어서도
혹여 제가 사고 싶은 예쁜 옷이 생겨 엄마에게 조심스레 물어보면
학생이 저런 옷 입을 필요 없다고 단호하게 얘기하셔서
그냥 수수하게, 평범하게 지냈어요.
정장이 하나도 없어서
졸업앨범 사진 찍을 때 입을 정장을 사고 싶었는데
엄마가 왜 그런 걸 일부러 사냐고 하시면서
그냥 흰 블라우스랑 검정 치마 입고 가면 되지... 하셔서
집에 있던 걸로 입고 사진 찍었던 기억이 있네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르바이트를 하던가 했어야 했는데
그 때 학과 공부로 너무 바쁘기도 했고,
엄마가 안된다고 하는 것은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미성숙한 아이여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엄마와 쇼핑도 같이하고, 화장하는 법도 배우고,
남자친구 이야기도 하는 그런 모녀지간의 모습이 가끔 부럽기도 했어요.
이제는 성인이니까
학생시절처럼 엄마의 영항에서 벗어나서
제가 번 돈으로 스스로를 예쁘게 꾸미면 되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쉽지가 않아요.
튀면 안 되고, 예쁘게 꾸민 내 모습이 어색하고,
악세서리 하는 것도 이상하고
운동을 하고 나 자신에 투자하는 것도 사치 같고....
변명같지만,
꾸미는 게 몸에 익숙하지 않고
일이 너무 많아서 일하고 잠자는 것만 해도 너무 바쁘거든요...
(물론 동료들 중에 예쁘게 잘 꾸미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냥 저랑 다른 종족이라고 생각합니다ㅠㅠ)
암튼 현재의 제 모습은 예쁘지 않고 뚱뚱하고, 늘 바쁜 일정으로 가정에 소홀히 할 것 같다는 이유로
소개팅에서 퇴짜 맞는 노처녀 입니다.
제가 결혼을 못하고 있으니
엄마가 이제는 교대, 약대 등 적당한 직업을 가지고 적당한 때에 빨리 결혼시키는게 최고다,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별로라고 하시면서
저에게 모진 말들-예쁘게 꾸미지 않고 살도 안 빼고 뭐했냐고, 피부관리도 안 받냐고, 옷은 무슨 쓰레기를 입고 있냐고
매일 퍼부으시네요...
오죽하면 일도 휴직하고 당장 다이어트 하고, 피부관리 받고 성형도 하라고 하시는지...
나는 유년기 때도 늘 이런 모습-인기없는 모범생 촌닭이었는데
내가 바뀔 수 있을까?
난 엄마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된거지?
여자도 큰 꿈을 가지고 능력을 키우며 살아가야 된다는 엄마의 모습은 어디가고,
여자의 행복은 결혼이다! 를 외치는 엄마가 남은 건지..
속상해서 그냥 써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