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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설맞이 긴 글 - 또 사적인 이야기

쑥과 마눌 조회수 : 3,831
작성일 : 2016-01-31 14:20:39
해마다 명절이 되면
아빠 빼고 나머지 식구들 누구도 달가와 하지 않는 큰 집을 갔다.
각자 가정을 이룬 팔남매는 하나씩 도착해 자기 식구들을 풀어 놓는데,
그 면면을 보자면..허이(판소리 추임새)
형제 보증 세워 사업 말아 먹은 큰 아버지와 선산 잽혀먹은 또 다른 큰 아버지,
빌려간 돈 갚지 않는 고모부와 사고 치고 반성못하는 막내 삼촌이 
안방에 둘러 앉아 밥을 먹다가.. 밥상을 엎었다가.. 멱살을 잡아 벽에 내다 꽂았다가..
고도리 판으로 호호하하 마무리 되는 듯했다가..술상이 들어가면 그 상을 엎으면서..
다시 싸이클이 한 바퀴도는 그런 명절날 이벤트가 시작된 것이었다.

무대의 한편
부엌에서는,늘 뚱한 큰 엄마가 묵묵부답을 수행하시고,
처세의 달인 둘째 큰 엄마는 명절특수 말로만 번드르 무공을 펼치며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흥흥 처세의 우리 엄마
그리고, 늘 고생하는 막내작은 엄마가 
늦어지는 뺀질이 세째 큰 엄마의 빈자리를 마크하기 바쁘셨다.

삼세대가 모인 아랫방이라고 관계역학이 다르랴.
대학에 낙방한 나를 기어이 드잡이 해서 끌고 간 아빠를 자녀학대범이라고 부르고 싶었고,
고생해서 좋은 대학 붙은 사촌은 나때문에 면구스러워 했다.
부모들의 서로 받지 못했던 꿔간 돈과
부모들의 서로 팔아 먹지 못했던 선대의 전답들에 대한 배틀은
아직 어린 내 사촌들을 마루로 불러 내어 씨름을 시키고, 권투를 시키고,
노래를 시키고, 성적표를 까고..누군가는 눈물바람을 해야 마무리 되었다.

길었던 하룻밤이 지나고,
우야둥둥 뜨거운 떡국 한사발씩을
우야둥둥 엉덩이 걸쳐 마시듯 먹고
떡 몇점, 전쪼가리 몇점, 생선 몇마리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주면
우리 네 식구 모두 너무나 지친 표정으로
..아야..우리 차도 안 막히는 데..택시 탑시다..하며, 차에 오르고
행선지를 기사에게 알려 주면서,
우리 아빠는 늘 한마디 하셨다.
..내가..올 추석에..여기 오믄..사람새끼가 아녀..

너무도 싫었다.

그래서, 엄마가 바늘에 실을 꿰어 쓸때
실을 길게 잡으면 멀리멀리 시집간다고 한 말을 금과옥조 삼아
실 길이가 양팔을 벌려도 남을만큼 짤라 써서 
늘 중간에 헝클어지기 일쑤였다.

아빠가 결혼식장에서 니 손을 신랑손한테 넘겨 줄때까지
너는 이 집안 사람이고, 고로, 아빠 말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 지겨워서
신랑신부 동시입장을 내 결혼식에 관철시켜 버렸다.

그런데, 이제 사십 찍고 오십 땡기며 달려가니,
원한 바를 이룬 이역만리 사는 딸년.

아직도 눈 마주치면 징글징글 싸우는 노인네부부
그만 쫌 하라고..빽하고 소리도 못 지르니 답답하고,
아프면 병원도 가깝고만, 답답한 소리 쫌 그만하고,
후딱후딱 챙겨 가지..
몸뚱아리 늙어 가서 기력없건만,
대체 들기로 한 철은 왜 여적지 감감한지
물정 모르는 소리 들을때 마다
속만 터지면 좋으련만
흰 머리 가득한 부모 머리를 쓰담고 싶은 맘이 드니 미칠노릇이다.

젊어.. 마음 모질 때가 좋았다.

대차게 나는 신랑신부 입장한다고 결혼식장에서 아빠한테 일방통보했을때
딸 하나인 우리 아빠는 참 당황했더랬는데..
어리고 젊었던 마음 가득했던 스크래치들이 
아직 내 생활에 기쓰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문득문득 그때 아빠표정이 생각난다.

아..ㅅㅂ..그냥 인수인계하라고..할 걸 그랬나.
내..파트는 다 하고..상처준 거만 기억나게..
그래서, 완벽하게 악역을 맡길걸..

피해자는 이래서 꼬지다.
상처를 입기만해 도 힘들고,
그 상처를 갚아도 힘드니 말이다.
.............................................

오늘 불후의 명곡의 김광석 노래를 들으면서
따신 밥먹고 쉰소리가 전문인 동생놈의 말이 생각났다.
일년에 딱 한번씩만 쓸만한 소리를 생산하는 데.
그 중 한마디가 김광석에 관한 이야기이다.

입영열차 들으며 입대하고,
이등병의 편지 들으며 쫄병생활하고..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내 이십대를 시마이했는데..
이 노마가 이리 가버리면
내 사십즈음에는 어찌 준비하며
내 오십은 어떠할 지..
어찌 갸름하냐고..
노부부 이야기까지 갈라믄 아직 아직 멀었는데
그 사이는 누구의 노래로 채우냐고..

그러다, 오늘 불후의 명곡을 보고 알았다.
사십 찍고 오십 땡겨가니 감이 오고 만다.

노래가 없어도 되겠드라고.

키워 보니, 자식놈도 길고..짧고..
내 맘같이는 영 글른거.
늙켜 보니, 원망만 하믄 속이라도 편할 부모는
이제 기운 빠져 내 전투력에 쨉도 안되누만..

호의가 계속되어 둘리가 되어 버린 나는
예전엔 몰라 당했고,
이젠 알고도 당해 준다.

그러니,
공동경비구역JSA에 나온  송강호처럼
담배연기 참으로 맛깔스럽게 날리면서
김광석이나 듣는다.

...김광석이래..와..그리..일찍..죽었어...하믄서.

...난 아직도..그대를..이해하지 못 하기에..
...그대 마음에 ...이르는 길을..찾고 있어..하믄,
그들의 좋을 때에 헤불쩍 웃어 주고,

...여보..이제..안녕히..잘 가시오...하믄,
갈 수록 미워지는 특별한 재주를 지닌 남편놈에게
설마..하는 눈길도 보내주고..

나의 노래는 나의 삶..뿐이 아니라
나의 삶은 나의 노래..가 된다는 데,
고단했고, 고단하며, 앞으로도 고단할 일상에 
날 벼락같은 드립치지 말고,
우리는 이제 됐다고..
괜찮다고..
여적지도 살았고..
아직 남은 기운도 좀 있고..
그러니..
어찌되었든 한번 해 본다고..
그럼 된거라고..
전해라눈..
IP : 72.219.xxx.68
2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16.1.31 2:27 PM (66.249.xxx.213)

    공부하러 간다고 도서관가서
    책은 열람실에 던져두고
    수필 코너에 있던 책 읽던 기억이 납니다

  • 2. 글게요
    '16.1.31 2:31 PM (121.166.xxx.130) - 삭제된댓글

    고모는 돈 빌려가서 안 갚고 작은 엄마는 입으로만 인사치고 큰 아버지는 선산잽혀먹고..이런 일은 집집마다 다 있는 듯. 이래가지고 다들 원수되고 인연끊고.

  • 3. 와~~~
    '16.1.31 2:34 PM (122.34.xxx.218)

    어쩜 이리도 찰지게 글을 잘 쓰시나요..

    한국의 명절이란 것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이네요.

    읽다보니 저희 시댁 시조카들이 저를
    / , 늘 뚱한 큰 엄마가 묵묵부답을 수행하시고, //
    이렇게 기억할 것 같단 생각이...

    인간말 0 시짜들에 지쳐서 아예 입 닫은 거 뿐인데... ㅋㅋ

  • 4. ...
    '16.1.31 2:42 PM (175.223.xxx.224)

    저도 심히 공감하면서...
    얼씨구! 잘헌다~~매겨 봅니다.
    거두절미...등단하세요!!!

  • 5. 우리 시댁에는
    '16.1.31 2:42 PM (211.245.xxx.178) - 삭제된댓글

    자궁은 갖고 있는 며느리들이 한명도 없어요.
    시어머니부터 세 며느리 전부다 자궁 들어냈어요.
    유전도 아니고, 성도 다르고 나이도 다 다른데, 왜 하나같이 다 들어냈을까.....
    친정쪽에서 고모에 사촌에 엄마에 언니에 단 한명도 없는데..
    참 기묘하지요.

  • 6. ==
    '16.1.31 2:43 PM (114.204.xxx.75)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해요.

  • 7. 정말 글 잘쓰세요
    '16.1.31 2:44 PM (1.231.xxx.214)

    정말 실 길게 끊으면 시댁이랑 멀리서나요? 저 첨 들어봐요 ^^

  • 8. ㅡㅡ
    '16.1.31 2:52 PM (58.65.xxx.32)

    고맙습니다. ^^

  • 9. TV
    '16.1.31 2:53 PM (122.34.xxx.138)

    드라마에 나오는 명절풍경과 현실은 많이 다르죠.
    술 마시는 아들들을 흐믓하게 바라보며,
    며느리들 앞에서 대장노릇하는 시어머니는 행복한 듯 보이네요.
    바쁘게 전을 뒤집으면서
    여자들끼리 오고가는 말이 많으면 많은데로
    침묵이 흐르면 그 나름대로
    숨막히는 긴장감.
    동갑내기 아이들 키는 왜 서로 재보라는 건지,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죄인, 못하는 아이도 죄인.

    일이 힘든게 아니라 그 이상야릇한 분위기에 기가 빨려
    일 끝나고 목욕탕도 같이가고, 하룻밤 자고 가라는 걸
    기어코 뿌리치고 잠은 반드시 집에와서 잡니다.

  • 10. MandY
    '16.1.31 2:57 PM (121.166.xxx.103)

    젊어 마음 모질때가 좋았다...

  • 11. 음미하게
    '16.1.31 2:59 PM (112.169.xxx.141)

    글을 쓰시는군요.
    자주 글 올려주세요.
    넘 좋습니다.

  • 12. 지나가다
    '16.1.31 3:00 PM (116.40.xxx.17)

    글빨이 매우 훌륭하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등단하셔요~

  • 13. 블루
    '16.1.31 3:35 PM (223.62.xxx.125)

    수필한권 읽은 기분이네요^^

  • 14. 디스플러스
    '16.1.31 3:37 PM (119.207.xxx.217)

    자식넘도 키워보니 굵고 짧고....
    그러네요
    자식넘들은 손까락 맞네요
    굵고짧고... 깨물어 안아픈손가락은 있는데 덜아픈손가락은 있네요
    정말 글을 맛갈지게 잘 쓰시네요
    우리는 어릴적 막둥삼촌이 속썩이다 결국 이혼 하시고
    아이들 데리고 큰집 전전하며 서로 고생 하다가 암으로 세상 떠나셨어요
    나머지 형제들은 명절인든 생신이든 만나면 반갑고 좋아 어쩔줄 몰라 하며
    좁은집에서 남여 따로긴 했지만 뒤엉켜 잠자던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자라 어른이 된 우리는 지금... 50~80대들이 되엇답니다..

  • 15. ...
    '16.1.31 3:46 PM (114.204.xxx.212)

    글이 참 좋네요
    우리 시가나 친정도 다 비슷
    그러면서도 끊어내지 못하고 속 끓이는거 보면 참 ...

  • 16. 인생이 그렇지요...
    '16.1.31 3:54 PM (39.7.xxx.60)

    남편 이발한다고 미용실 따라 왔다가 기다리면서 읽은 원글님 글에... 김광석 노래 생각나며 나도모르게 눈물이 흐르네요. 에궁ㅋ... 미용실인데...

  • 17.
    '16.1.31 4:29 PM (124.49.xxx.92)

    신랑신부 동시 입장하겠단 말 뒤에 이어질
    타박도 싫어
    전통혼례 해버린 저도 있네요...

  • 18. ..
    '16.1.31 5:05 PM (125.130.xxx.10)

    요즘 많이 생각하던 것이 원글님 글 한줄로 요약되네요.
    젊어 ... 마음 모질 때가 좋았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19. 글빨 참.
    '16.2.1 12:41 AM (95.90.xxx.246)

    약빨고 쓴 거죠!!
    .난 아직도..그대를..이해하지 못 하기에.....찾을 수 있을까 언제나 멀리있는 그대...기다려줘...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들고 있음.

  • 20. 글 좋아요!!!!
    '16.2.1 3:15 AM (59.13.xxx.115)

    혹시 돌아가신 고모님 글 쓰셨던 분 아닌가요^^
    저 님 블로그 즐겨찾기 해두고 수시로 읽어요.
    글 정말 잘 쓰세요 부러워욧!!!
    중고딩때 읽던 현대문학? 개화기소설? 청포도뭐시기 그런 소설같은 느낌이에요~

  • 21. 싸이클
    '16.2.1 4:15 PM (124.56.xxx.134) - 삭제된댓글

    며칠 후부터 시작되겠네요.;;

  • 22. 싸이클
    '16.2.1 4:16 PM (124.56.xxx.134) - 삭제된댓글

    -안방에 둘러 앉아 밥을 먹다가.. 밥상을 엎었다가.. 멱살을 잡아 벽에 내다 꽂았다가..
    고도리 판으로 호호하하 마무리 되는 듯했다가..술상이 들어가면 그 상을 엎으면서..
    다시 싸이클이 한 바퀴도는 그런 명절날 이벤트가 시작된 것이었다.-
    며칠 후에 우리에게도 이런 이벤트가 시작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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