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연구 일로 일 년간 외국에 나가게 되었고
영어 때문은 아니고
아이가 아픈 곳이 있는데
치료환경이 이 곳이 조금 더 나은 것 같다는 판단하에
부부 합의하에,
또 아이가 간절히 원해서 한시적인 (1년여간) 기러기를 하게 되었어요.
저는 합법적인 체류를 하기 위해 J2(방문학자 동반 비자)에서 F1 (학생비자)로 갈아타고
학교를 다니며 두 아이를 돌보고 있네요.
두 아이가 아직 어리고 특히나 둘째는 아직 유아네요.
두 아이가 각자 다른 학교와 스케쥴을 가지고 있어서
저 학교 다니고 숙제 하랴, 아이들 실어 나르고 각종 집안 일과 대소사 치루랴..
정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릅니다.
바쁘고 해야할 일은 많으니 정서적 마진이 남아있지 않아
쉽게 화내고 채근하게 되는 것이 참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이들도 엄마가 화내면 아빠한테 갈 여지가 있어야 하는데
엄마 하나밖에 없으니 완충지대가 하나 줄어든 거 같아요.
도서관에 있는 한국어 책들이 수준이 많이 떨어져서
한국어 습득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거 같아요.
가끔 아이들이 한국어 단어가 생각이 안난다는 이야기를 해요.벌써.
저는 외국어는 필요하면 어떻게든 하게 되어있다고 생각하는 바
사실 영어에는 목숨을 건 적도 없고 아이들도 그렇게 키워왔어요.
아이들은 이 곳에서 서서히 영어를 받아들이는 중이고 온 지 1년이 넘었지만
그냥 저냥 하는 수준이에요. 잘 틀려요. 단어도 딸리고요.
6개월되면 네이티브 처럼 한다는 대체 어디서 나온지 모르겠어요.
물론, 백인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고, 임원으로도 뽑혔으며, 독서클럽 대회에도 나가니
일상적인 의사소통은 문제없어요.
그러나 제가 옆에서 듣기에는 아직 멀었어요.
하지만 나머지는 자기 스스로 한국에서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조바심은 나지 않아요
그런데 남편 없이 사는건 정말 힘들어요.
혼자 지내는 것도 적적하고, 밤길 빗길 운전도 가끔 해야해서 무섭고요.
아이가 아프니 이것저것 의논할 일이 있는데 화상통화니 전화니 다 한계가 있어서
말안하고 넘어가는 게 많고,
힘들고 지칠 때 말해봐야 불평이나 되지 뭔 소용있나 싶어 그냥 전화하기도 싫어지더군요.
점점 소홀해 지고요.
이렇게 힘든 시간 나만 혼자 옹박쓰고 있는거 같아 억울한 맘도 들고요.
또 혼자 있는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미안하고 고맙고 그래요..
복잡한 마음이에요.
이번에 남편과 4개월 만에 다시 만나 두 달여를 같이 지내게 되었는데요
집에 남편이 있으니 정말 활기가 넘치더군요
아빠가 가정적이기도 하지만, 저도 너무 기쁘고 고맙고 애잔하고 그래요.
아이들이 밥량이 확 늘었어요.
많이 웃고,
1층에는 잘 내려오지도 않고 2층에서 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우리 아이들과 제가
더 1층에 자주 내려와서 거실에서 함께 웃고 떠들고 춤추고 놀아요.
아이가 아프다는 이야기도 확 줄었고요.
저도 이야기할 한국인 어른 상대가 있고 힘들었다가도 남편과 함꼐 누우서 이야기하고
서로 안아주다 보면 맘도 풀리고 희망도 생겨요.
이렇게 한시적으로는 여러가지 잇점이 있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기러기는 정말 반대입니다.
주위에 기러기 가정이 몇 가정 되는데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너무 피폐해져요.
다 각자 사정이 있겠지만요..
(남들 보기에는 우리도 영어때문에 남는 줄 알겠죠)
그리고, 한인 교포 아이들, 기러기 가정의 아이들 우울해 보이는 애들이 많아요.
백인들 사이에서 십대를 보내며
외모(왜소하고 미의 기준이나 분위기도 다르고)나 운동 능력이나 의사소통 면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들..
부모와 주언어가 점점 달라지는 아이들..
특히 교민 어른들은 사고방식이 이민오던 그 때로 고정되어 있는 분들도 많고
계속 한인 교회나 작은 한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사회생활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서
사고의 확장이나 업그레이드도 별로 안이루어지고
아이들이랑은 점점 더 소통이 안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더라고요.
돈도 너무나 많이 들고요.
영어습득 하나만 보고 오기에는 마이너스가 참 많아요.
물론 생활환경은 좋고 공기도 참 좋습니다만 공기만 마시고 살것도 아니고요.
어디 사느냐 보다는 어떻게 누구랑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앞으로 몇 텀이 더 남았습니다만,
막막하기도 하고 겁도 나지만 이 시간 잘 보내고 돌아가고 싶어요.
해본 사람으로서, 또 주위의 많은 기러기 가정을 접해본 사람으로서
정말 기러기 왠만하면 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