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로 의심받는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용역업체 그린미디어와 국정원 출신의 김흥기 전 카이스트 겸직교수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을까.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온·오프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한 그린미디어와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활동한 김 전 교수의 공식 인연은 2014년 초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교수는 그해 1월부터 그린미디어에서 발행하는 글로벌이코노믹에 각종 칼럼과 인터뷰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그해 12월 글로벌이코노믹 공식 회장으로 취임한다.
그와 새누리당 중진들의 두터운 인연은 2012년 대선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강미발 초대장에 자신을 18대 대선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교육복지특별대책위 상임위원장으로 소개했다. 그는 또한 2011년 27개 단체가 모여서 결성한 대한민국 과학기술대연합(대과연)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새누리당 대선캠프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대선을 열흘 정도 앞둔 2012년 12월 7일에는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을 초청한 가운데 열린 과학기술간담회에 참석했다. 박근혜 대통령 후보와 대과연이 메니페스토 협약을 맺을 때 대과연 공동대표로 참석한 협약식 사진에서도 그의 모습이 발견된다. 그가 대선과정에서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한 흔적은 한두 가지가 아닌 셈이다. 특히 김 전 교수가 대선 때 맺은 인연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새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김 전 교수가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에서 모종의 역할을 한 것은 확인되지만 정확히 당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강미발 초대장에는 그가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교육복지특별대책위 상임위원장을 맡은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 선대위 명단에서 그의 이름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대선 때 공동선대위 위원장을 맡았던 재벌가 출신의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김 전 교수가 주도한 글로벌창업정책포럼의 공동의장으로 등장한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김 총재는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여성 유권자의 표심을 노리고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전격 발탁했으나 온갖 설화를 일으키며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도 2014년 9월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전격 발탁돼 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보은인사’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런 김 총재가 김 전 교수가 상임의장을 맡고 있는 포럼의 공동의장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선거과정에서 김 전 교수의 역할과 위상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을 사석에서 ‘누님’으로 호칭한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대표적인 ‘친박인사’로 분류되는 한선교 의원도 포럼의 고문으로 참여했다.
그가 선거에 관여했다면 뭔가 다른 방식으로 후보를 지원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과연 그는 무슨 역할을 했을까.
시기적으로 볼 때 그가 강미발을 조직한 시기와 빅데이터 전문기관인 중국과학원 가상경제센터와 모종의 계약을 체결한 시기는 2013년 8월로 거의 일치한다. 또한 그가 강미발을 조직한 시기는 그린미디어가 KTL과 함께 SNS 등 빅데이터들을 가공 처리하는 짐스(GIMS) 프로그램에 대한 개발에 착수한 것과 거의 일치한다. 즉 시기적으로만 보면 빅데이터 전문기관인 중국과학원 가상경제센터와 계약, 짐스 프로그램 구축, 강미발 조직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추진됐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컴퓨터 보안 전문가들에 따르면 새누리당 쪽에서 빅데이터를 선거에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기도 대략 이 무렵부터다. 강미발 사무총장인 한모씨는 “강미발 조직을 처음 논의한 시가는 2013년 8월이나 9월쯤으로, 김 전 교수는 굉장히 급하게 조직을 꾸리려 했다”고 말했다. 강미발이 빅데이터를 이용한 모종의 시스템 구축과 관련해서 더욱 의심을 받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그가 그린미디어에서 발행하는 글로벌이코노믹 회장에 취임한 후 한 달 만인 2015년 1월 그린미디어가 KTL에 용역보고서를 제출했다.
18대 대선을 12일 남겨둔 2012년 12월 7일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을 초청한 과학기술정책 간담회에 김흥기 전 교수(오른쪽 끝)의 모습이 보인다.새누리당 출신 후보들 공개적 지지이 보고서에서 그린미디어는 국정원, 민주평통, 자유총연맹을 정보수집, 분석, 배포를 위한 광범위한 정보협력 파트너로 제안했다. 실시간으로 타깃 정보를 종합적으로 원격제어할 수 있는 K룸 설치도 제안했다. 또한 시험구축 단계에 있던 짐스 프로그램을 이미 검증된 시스템으로 제시했다. 이미 짐스가 실전에서 가동됐다는 얘기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진실을 가둬둘 수는 없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과정에서 김 전 교수의 역할과 KTL 별관에서 온갖 특혜를 받으며 수상한 용역을 진행한 ‘KTL 댓글부대’ 의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