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현장에서 이주영 전 장관은 자세를 낮췄다. “너 때문에 우리 애가 죽었다”는 애달픈 울부짖음에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고 136일 동안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진도군청 사무실 간이침대에서 새우잠을 잤고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검은색 점퍼와 하얗게 바랜 머리카락, 텁수룩한 수염은 그의 상징이었다.
이는 경제위기를 자초했음에도 정규직과 노조, 국회 무능으로 화살을 돌리는 경제수장이나 대통령과는 비교되는 모습이다. 보신주의에 빠져 책임을 외면하는 고위 공무원들 사이에서 이 전 장관의 행보는 특기할 만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치적인 쇼’라는 비판이 나왔다. 장관이 동네북을 자처했기에, 대통령은 팽목항 현장에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쇼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에서도 그를 높이 평가하곤 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자신의 SNS를 통해 “그의 낮은 자세와 묵묵한 모습을 배우고 싶다. 이런 사람이라면 유임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기억이 안 난다”는 해경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답변은 청문회를 참관하던 유가족을 절규케 했다. “배가 기우는 상황에서 선미에 있던 학생들에게 밑으로(배 밖으로) 나오라고 했는데 학생들이 철이 없었는지 내려가지 않았다”는 박상욱 경장(당시 123정 승조원)의 발언은 도마 위에 올랐다.
전직 장관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말을 되풀이했지만, 부하 직원들은 청문회에서조차 ‘책임 없음’을 강변하며 참상의 기억을 부단히 잊고자 했다.
“책임은 저에게 있다”는 그의 말을 그대로 믿기엔 찜찜하다. 이 전 장관은 ‘정치인’이다. 그것도 ‘친박’ 정치인이다. 박근혜 정부의 최대 실정으로 평가받는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현 정부‧여당은 어떠한 책임도 떠안으려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가 어떤 책임을 짊어졌는지 불분명하다.
장관직을 그만두고 그는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의원으로 복귀하자마자 친박계 대표주자로서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뛰어들었다. ‘팽목항의 영웅’이라며 보수 언론이 추켜세웠지만 지난 2월 ‘비박’ 유승민 의원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국무총리 등 정부 요직이 공석일 때마다 그는 핵심 ‘친박’ 인사로서 호명돼왔다.
이 전 장관은 내년 총선에서 5선을 노린다. 그의 지역구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지역에서는 “이주영 욕 봤다”는 동정적 정서가 흐르고 있다. 한 지역 유권자는 “정치인들 몸값 올리려고 장관 하는데 최경환 정종섭에 비하면 이주영은 양반”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