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 1967년 6.8선거는 1960년 3.15선거와 더불어 아주 잘못된 선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3.15선거 때는 투표 당일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방방곡곡에서 일어났다. 6.8선거 투표일에는 어땠나.
서중석 : 6월 8일 투표에서도 갖가지 사태가 일어났다. 여수, 벌교에서는 유권자들이 단체로 공화당 운동원이나 공무원들에게 여당 후보를 찍은 투표용지를 보여준 다음 투표함에 넣다가 발각됐다. 공개 투표를 하다가 걸린 것이다. 괴한이 투표소에 난입해 야당 참관인을 강제로 밀어낸 다음, 미리 기표해둔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무더기로 쏟아 넣는 일도 일어났다. 야당 참관인들이 항의하다가 공화당원들한테 손찌검을 당하고 쫓겨나는 일도 벌어졌다. 상황이 이랬기 때문에 화순·곡성, 아산, 문경, 영등포갑 등 여러 선거구에서는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야당 측에서 선거를 포기하고 참관인이 철수했다.
개표에서도 문제가 심각했다. 동대문갑 구, 그리고 장준하가 옥중 출마한 동대문을 구에서는 공화당원들이 개표소에 난입해 선관위원과 야당 참관인들이 곤욕을 치렀고, 야당 참관인이 없는 가운데 개표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인천을 구에서는 개표가 공포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선관위원이 전원 사표를 내고 퇴장했다. 이와 같은 폭력과 개표 중단 사태가 곳곳에서 야기됐다.
자유당이 1958년 5.2선거에서 했던 악명 높은 개표 부정, 그게 또 나타났다. 야당 후보를 찍은 투표용지를 무효표로 만드는 피아노 표, 빈대 표가 무더기로 나왔다. (피아노 표는 이미 기표가 된 투표지에 손가락으로 주르륵 인주를 묻혀 손도장을 1개 추가하는 것을 말한다. 빈대 표는 개표 종사자가 야당 표에 인주를 묻혀 무효표로 만든 것으로, 빈대 잡기 표로도 불렸다. <편집자>) 전북 무주·진안·장수 지구에서는 개표 결과 투표자가 유권자보다 674명이나 많아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투표 다음 날인 9일 아침 김수한 신민당 부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정부·여당의 투·개표 부정을 견디다 못해 14개 지역구에서 신민당 후보들이 선거를 사실상 포기하고 개표 참관인을 철수시켰으며 6개 지역에선 부정 선거 규탄 데모가 벌어졌다고 밝혔다.
개표에서도 문제가 심각했다. 동대문갑 구, 그리고 장준하가 옥중 출마한 동대문을 구에서는 공화당원들이 개표소에 난입해 선관위원과 야당 참관인들이 곤욕을 치렀고, 야당 참관인이 없는 가운데 개표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인천을 구에서는 개표가 공포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선관위원이 전원 사표를 내고 퇴장했다. 이와 같은 폭력과 개표 중단 사태가 곳곳에서 야기됐다.
자유당이 1958년 5.2선거에서 했던 악명 높은 개표 부정, 그게 또 나타났다. 야당 후보를 찍은 투표용지를 무효표로 만드는 피아노 표, 빈대 표가 무더기로 나왔다. (피아노 표는 이미 기표가 된 투표지에 손가락으로 주르륵 인주를 묻혀 손도장을 1개 추가하는 것을 말한다. 빈대 표는 개표 종사자가 야당 표에 인주를 묻혀 무효표로 만든 것으로, 빈대 잡기 표로도 불렸다. <편집자>) 전북 무주·진안·장수 지구에서는 개표 결과 투표자가 유권자보다 674명이나 많아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투표 다음 날인 9일 아침 김수한 신민당 부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정부·여당의 투·개표 부정을 견디다 못해 14개 지역구에서 신민당 후보들이 선거를 사실상 포기하고 개표 참관인을 철수시켰으며 6개 지역에선 부정 선거 규탄 데모가 벌어졌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