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복면을 하지도, 두건을 쓰지도 않았다. ‘임마누엘’이라는 천주교 영세명을 가졌으니 아이에스(IS)일 리도 없다. 그런 그가 11월14일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벌써 보름 넘게 의식이 없다.
30년 경력의 농부인 그는 80년대 중반 소를 키웠다. 귀농 초기 금리 15~20%의 축산자금을 빌려다 소를 입식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공급과잉으로 소값이 ‘똥값’이 되면서 1억여원의 빚을 졌다. 아직도 그는 이 빚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농지를 담보로 잡히고 이율이 낮은 자금으로 갈아탔을 뿐이다. 그는 아들(32)에게 농사일을 물려주기로 하고, 함께 쌀·밀·콩 농사를 짓는다. 농촌의 현실과 농업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그는 농민들과 거리를 행진하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약을 지키라고 했다. 대통령은 80㎏ 쌀값을 21만원대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013년 17만원 하던 쌀값은 15만원으로 곤두박질쳤다.
30년 경력의 농부인 그는 80년대 중반 소를 키웠다. 귀농 초기 금리 15~20%의 축산자금을 빌려다 소를 입식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공급과잉으로 소값이 ‘똥값’이 되면서 1억여원의 빚을 졌다. 아직도 그는 이 빚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농지를 담보로 잡히고 이율이 낮은 자금으로 갈아탔을 뿐이다. 그는 아들(32)에게 농사일을 물려주기로 하고, 함께 쌀·밀·콩 농사를 짓는다. 농촌의 현실과 농업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그는 농민들과 거리를 행진하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약을 지키라고 했다. 대통령은 80㎏ 쌀값을 21만원대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013년 17만원 하던 쌀값은 15만원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날 그는 이런 말을 하러 서울로 갔다. 하지만 ‘농민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물대포가 돌아왔다. 정부는 아무 소리도 듣지 않으려는 듯 5일 집회마저 틀어막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