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응팔에서 성동일이 나물을 사오는 것을 보고..

비닐봉지 조회수 : 2,770
작성일 : 2015-11-19 12:46:33


응팔에서 성동일이 나물을 사오는 것을 보고..

저의 비슷한 경험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퇴근길에 전철을 내려 집에 오다 보면

전신주 옆에서 길거리 좌판을 펼쳐놓고 나물이나 더덕,

호박 같은 것들을 파시던 할머니가 계셨어요.

좌판이래야 박스를 뜯어서 넓게 펼쳐놓은거지만요.

 

그날도 마치 오늘날씨처럼 흐리고 바람도 불고

길거리에 낙엽들이 뒹굴고 있었지요.


아마 저녁 여덟시 정도 되었을 겁니다.

저처럼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길,

깜깜한 밤이었고, 전신주 가로등 불빛이 노랗고 동그랗게 비추고있었으니까요.

 

지나치면서 할머니 좌판을 보니

거의 다 파시고 남은 나물은 별로 없더라구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께 가서 이천원 어치만 사달라고 했습니다.


할머니께서 까만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담아주시는데,

그래도 좌판에 나물이 좀 남더군요.

 

그냥 갈까 하다가 삼천원을 더 드리고

그러니까... 오천원에 할머니가 파시던 나물을 다 사왔습니다.


"아이고, 다 팔았네~ 이제 집에 가야 쓰것네~

 고마워요 아저씨"

 

할머니 말씀에 미소로 화답하고

집에와서 아내에게 나물이 든 까만 비닐봉투를 건네며 그 얘길 했더니

아내가 타박을 하더군요.

어차피 아내와 나, 두식구뿐인데 누가 다 먹는다고 그렇게 많이

야멸차게 다 받아왔냐고 하면서,

오천원을 드리긴 해도 그냥 조금만 달라고 그러지..

그래야 또 다른사람들께 파실거 아니냐고 하면서요.

 

근데 제 생각은 그게 아니었거든요.

봉지 안에 든 나물이 우리 두 식구가 먹기엔 많은 양이란 건 저도 알죠.

하지만 바람불고 춥고 날도 저물었는데

그 할머니가 계속 길에 앉아 계실 것 같았거든요.

가져오신 나물을 다 파실 때까지요.


돈만 드리고 오는 것도 어쩌면 할머니께 커다란 실례나

혹은 괜히 할머니 마음에 스산함을 드리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좀 그렇네요.

저는 착한 사람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세상을 살아왔다고 할 수도 없고

급하면 불법주차도 하고..

그냥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백남기 어르신께서 당하신 일에 분노하는,

그리고 그 어르신이 왜 시위에 나오실 수 밖에 없었는지 이유는 쏙 빼고

엉뚱한 것들에 촛점을 맞추는 언론의 비겁함에 열받는

주변에 흔한 기성세대 중 하나일뿐이죠.

 

어쨌건..

엊그제 응팔에서 성동일이 나물봉지를 들고 오는 장면을 보고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아내랑 그 얘길 나누며 막걸리도 한잔 했구요.

 

참 팍팍한 세상이네요.

바다 건너 어디에선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어 나가고

우리는 언제까지 일제시대부터 질기게도 우리를 괴롭히는 반역의 무리들을 봐야만 하는지

우리나라가 다시 일어설 수 있기는 한건지..


그냥 그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아.. 점심시간 끝나가네요.

다시 오후근무 준비 해야죠 ^^


IP : 222.238.xxx.114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훈훈
    '15.11.19 1:13 PM (210.105.xxx.253)

    좋은 글에 답글이 없어 첫댓글 다는 영광을 가져 봅니다 ^^

    두 내외분 선하게 행복하게 오래 오래 잘 사실 거 같아요~

  • 2. ...
    '15.11.19 2:10 PM (120.142.xxx.32)

    공동체란 이런 맘으로 굴러가야 하는데... 참, 요즘은 어디에 사나 싶습니다. ㅜ.ㅜ

  • 3. 또마띠또
    '15.11.19 3:19 PM (112.151.xxx.71)

    ㅎㅎ 울언니가 시장가면 항상 난전에서 상추 천원 이렇게 파시는 나이드신 할머니한테서만 샀어요. 버젓이 가게 차리고 하는 젊은 채소가게보다 안쓰러운 마음에 항상 난전 할머니들한테요. 어느날 다시마 환 만드려고 환 가게 들어가서 그 얘길 했더니 환집 아줌마 왈 저 할머니 하루에 얼마버는지 알아? 삼십만원이야. 원가는 얼만줄 알아? 자기 집에서 할아버지가 농사짓고(대량 아니고 그냥 텃밭수준) 할머니가 파는데 다들 그렇게 불쌍해 하면서 잘 사준다고, 가게 세도 안내고 완전 잘 벌지? 그러셨음. 무려 10년전 이야기임

  • 4. ...
    '15.11.19 4:32 PM (70.68.xxx.190)

    동감입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517204 안 새는 보온병 어디 없을까요?? 23 .. 2016/01/11 3,848
517203 고전문학 중에서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는 게 뭘까요... 8 궁금 2016/01/11 1,328
517202 펌)미국월간지 이게 사과라면 한국은 국가기능 상실 ㅇㅇ 2016/01/11 405
517201 동남아여행사 어디서들 알아보시나요. 2 . 2016/01/11 837
517200 세월호636일) 아홉분외 미수습자님들이 가족 품에 안기길 기다립.. 11 bluebe.. 2016/01/11 400
517199 친정에 정서적인 짐을 느껴요 13 팬지 2016/01/11 3,836
517198 청소 좀 한다는 분, 도와주세요 1 sos 2016/01/11 907
517197 미국 폭격기 ‘B-52’ 한반도 상공 120분간비행 긴장조성 2016/01/11 550
517196 금연 중 두통인데 1 금연 2016/01/11 1,325
517195 안철수 지지자인데 녹색당 멋지네요. 엄지척 10 .. 2016/01/11 1,455
517194 삼겹살로 구워먹는것 말고 수육만들어도 되나요? 2 2016/01/11 1,041
517193 집에 돈 많으면 자식 공부걱정 안하나요? 20 궁금 2016/01/11 5,259
517192 손석희 뉴스에 인터뷰 보는데... 6 메추리알 2016/01/11 1,758
517191 어제 남자심리 적었는데요. 연락이 왔네요. 어떡하죠? 11 ..... 2016/01/11 3,784
517190 저는 식사를하면 식도부터 꽉 막혀서 2 999 2016/01/11 894
517189 저녁 안먹으면 살좀 빠질까요 6 mm 2016/01/11 2,775
517188 JTBC 소녀상 보도 보셨어요? 5 소녀상 2016/01/11 1,497
517187 애 학원 가 있는데 맥주 마시고 싶어요ㅠㅠ 16 참을까 말까.. 2016/01/11 2,827
517186 제주도 대가족 머물기 좋은 숙소는 어디일까요? 7 ㅈㅈㄷ 2016/01/11 2,989
517185 대학생 용돈의 빈부 20 ㅅㅅ 2016/01/11 8,759
517184 임신 증상을 빨리 느끼는 분. 3 아웅 2016/01/11 2,185
517183 박영선의원 탈당 하겠죠? 14 ㅇㅇ 2016/01/11 2,283
517182 지인에게 인테리어 맡기면 어떨까요? 22 .. 2016/01/11 3,592
517181 1월에 넘 장사안돼요 2 바나 2016/01/11 1,980
517180 부산대 교수들 일냈다 예산 삭감에 "120만원 갹출&q.. 6 샬랄라 2016/01/11 1,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