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응팔에서 성동일이 나물을 사오는 것을 보고..

비닐봉지 조회수 : 2,657
작성일 : 2015-11-19 12:46:33


응팔에서 성동일이 나물을 사오는 것을 보고..

저의 비슷한 경험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퇴근길에 전철을 내려 집에 오다 보면

전신주 옆에서 길거리 좌판을 펼쳐놓고 나물이나 더덕,

호박 같은 것들을 파시던 할머니가 계셨어요.

좌판이래야 박스를 뜯어서 넓게 펼쳐놓은거지만요.

 

그날도 마치 오늘날씨처럼 흐리고 바람도 불고

길거리에 낙엽들이 뒹굴고 있었지요.


아마 저녁 여덟시 정도 되었을 겁니다.

저처럼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길,

깜깜한 밤이었고, 전신주 가로등 불빛이 노랗고 동그랗게 비추고있었으니까요.

 

지나치면서 할머니 좌판을 보니

거의 다 파시고 남은 나물은 별로 없더라구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께 가서 이천원 어치만 사달라고 했습니다.


할머니께서 까만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담아주시는데,

그래도 좌판에 나물이 좀 남더군요.

 

그냥 갈까 하다가 삼천원을 더 드리고

그러니까... 오천원에 할머니가 파시던 나물을 다 사왔습니다.


"아이고, 다 팔았네~ 이제 집에 가야 쓰것네~

 고마워요 아저씨"

 

할머니 말씀에 미소로 화답하고

집에와서 아내에게 나물이 든 까만 비닐봉투를 건네며 그 얘길 했더니

아내가 타박을 하더군요.

어차피 아내와 나, 두식구뿐인데 누가 다 먹는다고 그렇게 많이

야멸차게 다 받아왔냐고 하면서,

오천원을 드리긴 해도 그냥 조금만 달라고 그러지..

그래야 또 다른사람들께 파실거 아니냐고 하면서요.

 

근데 제 생각은 그게 아니었거든요.

봉지 안에 든 나물이 우리 두 식구가 먹기엔 많은 양이란 건 저도 알죠.

하지만 바람불고 춥고 날도 저물었는데

그 할머니가 계속 길에 앉아 계실 것 같았거든요.

가져오신 나물을 다 파실 때까지요.


돈만 드리고 오는 것도 어쩌면 할머니께 커다란 실례나

혹은 괜히 할머니 마음에 스산함을 드리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좀 그렇네요.

저는 착한 사람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세상을 살아왔다고 할 수도 없고

급하면 불법주차도 하고..

그냥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백남기 어르신께서 당하신 일에 분노하는,

그리고 그 어르신이 왜 시위에 나오실 수 밖에 없었는지 이유는 쏙 빼고

엉뚱한 것들에 촛점을 맞추는 언론의 비겁함에 열받는

주변에 흔한 기성세대 중 하나일뿐이죠.

 

어쨌건..

엊그제 응팔에서 성동일이 나물봉지를 들고 오는 장면을 보고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아내랑 그 얘길 나누며 막걸리도 한잔 했구요.

 

참 팍팍한 세상이네요.

바다 건너 어디에선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어 나가고

우리는 언제까지 일제시대부터 질기게도 우리를 괴롭히는 반역의 무리들을 봐야만 하는지

우리나라가 다시 일어설 수 있기는 한건지..


그냥 그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아.. 점심시간 끝나가네요.

다시 오후근무 준비 해야죠 ^^


IP : 222.238.xxx.114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훈훈
    '15.11.19 1:13 PM (210.105.xxx.253)

    좋은 글에 답글이 없어 첫댓글 다는 영광을 가져 봅니다 ^^

    두 내외분 선하게 행복하게 오래 오래 잘 사실 거 같아요~

  • 2. ...
    '15.11.19 2:10 PM (120.142.xxx.32)

    공동체란 이런 맘으로 굴러가야 하는데... 참, 요즘은 어디에 사나 싶습니다. ㅜ.ㅜ

  • 3. 또마띠또
    '15.11.19 3:19 PM (112.151.xxx.71)

    ㅎㅎ 울언니가 시장가면 항상 난전에서 상추 천원 이렇게 파시는 나이드신 할머니한테서만 샀어요. 버젓이 가게 차리고 하는 젊은 채소가게보다 안쓰러운 마음에 항상 난전 할머니들한테요. 어느날 다시마 환 만드려고 환 가게 들어가서 그 얘길 했더니 환집 아줌마 왈 저 할머니 하루에 얼마버는지 알아? 삼십만원이야. 원가는 얼만줄 알아? 자기 집에서 할아버지가 농사짓고(대량 아니고 그냥 텃밭수준) 할머니가 파는데 다들 그렇게 불쌍해 하면서 잘 사준다고, 가게 세도 안내고 완전 잘 벌지? 그러셨음. 무려 10년전 이야기임

  • 4. ...
    '15.11.19 4:32 PM (70.68.xxx.190)

    동감입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502135 청주에 있는 에른스트**대안학교 아시는분 7 고민 2015/11/20 2,940
502134 박정희 대 정의의 싸움..유승민 박해는 정권 재창출용 1 언플용각본 2015/11/20 838
502133 기독교인들이 동성애를 두려워하는 이유 33 학습효과 2015/11/20 4,755
502132 안철수가 절대 문,안,박 사기극에 동참하면 안되는 이유. 12 기상청 2015/11/20 1,455
502131 큰사이즈 한복대여 5 한복 2015/11/20 1,093
502130 이마트에 피코크 팝콘 맛있더라구요 2 .. 2015/11/20 1,288
502129 저... 일 계속 해야겠지요? 25 집순이 2015/11/20 5,100
502128 나이가들면 왜 혼잣말을 중얼중얼 하게 되는걸까요? 9 저도 이제 2015/11/20 3,990
502127 롯데호텔, 택시기사가 낸 사고 4억원 대신 배상해준다더니 8 그럼그렇지 2015/11/20 2,981
502126 남편 3 아내 2015/11/20 1,232
502125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버전이 더 유명하지만... 4 ... 2015/11/20 1,355
502124 방배동 교통편리하고 4 jjjjj 2015/11/20 1,538
502123 팟빵 오늘순위가 이상하네요 1 ? 2015/11/20 1,061
502122 보복운전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죠? 7 국정화반대 2015/11/20 829
502121 채널 cgv 마담 뺑덕해요 5 .. 2015/11/20 2,072
502120 박근혜는 뭘 그렇게 읽기만 할까요.... 25 모르겠네 2015/11/20 3,067
502119 선물할만한 화장품추천요.. 중국20후반.. 2015/11/20 760
502118 물대포 직사 사건은 대한민국의 태생적 본성 3 발현 2015/11/20 666
502117 술집출신들은 결혼해도 그끼를 못버리나봐요 49 인생막장들임.. 2015/11/20 27,350
502116 계약직 1 zzz 2015/11/20 757
502115 이마트 원두커피 추천 좀 부탁드려요 4 와글와글 2015/11/20 2,696
502114 고등아이 EBS동영상듣기에 아이패드2 5 삼산댁 2015/11/20 1,197
502113 폐휴대폰 5개나 있네요 7 궁금 2015/11/20 1,951
502112 찌그러진 병뚜껑, 어떻게 열까요? 5 nature.. 2015/11/20 736
502111 커피타먹는 3 가루로된우유.. 2015/11/20 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