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에서 성동일이 나물을 사오는 것을 보고..
저의 비슷한 경험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퇴근길에 전철을 내려 집에 오다 보면
전신주 옆에서 길거리 좌판을 펼쳐놓고 나물이나 더덕,
호박 같은 것들을 파시던 할머니가 계셨어요.
좌판이래야 박스를 뜯어서 넓게 펼쳐놓은거지만요.
그날도 마치 오늘날씨처럼 흐리고 바람도 불고
길거리에 낙엽들이 뒹굴고 있었지요.
아마 저녁 여덟시 정도 되었을 겁니다.
저처럼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길,
깜깜한 밤이었고, 전신주 가로등 불빛이 노랗고 동그랗게 비추고있었으니까요.
지나치면서 할머니 좌판을 보니
거의 다 파시고 남은 나물은 별로 없더라구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께 가서 이천원 어치만 사달라고 했습니다.
할머니께서 까만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담아주시는데,
그래도 좌판에 나물이 좀 남더군요.
그냥 갈까 하다가 삼천원을 더 드리고
그러니까... 오천원에 할머니가 파시던 나물을 다 사왔습니다.
"아이고, 다 팔았네~ 이제 집에 가야 쓰것네~
고마워요 아저씨"
할머니 말씀에 미소로 화답하고
집에와서 아내에게 나물이 든 까만 비닐봉투를 건네며 그 얘길 했더니
아내가 타박을 하더군요.
어차피 아내와 나, 두식구뿐인데 누가 다 먹는다고 그렇게 많이
야멸차게 다 받아왔냐고 하면서,
오천원을 드리긴 해도 그냥 조금만 달라고 그러지..
그래야 또 다른사람들께 파실거 아니냐고 하면서요.
근데 제 생각은 그게 아니었거든요.
봉지 안에 든 나물이 우리 두 식구가 먹기엔 많은 양이란 건 저도 알죠.
하지만 바람불고 춥고 날도 저물었는데
그 할머니가 계속 길에 앉아 계실 것 같았거든요.
가져오신 나물을 다 파실 때까지요.
돈만 드리고 오는 것도 어쩌면 할머니께 커다란 실례나
혹은 괜히 할머니 마음에 스산함을 드리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좀 그렇네요.
저는 착한 사람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세상을 살아왔다고 할 수도 없고
급하면 불법주차도 하고..
그냥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백남기 어르신께서 당하신 일에 분노하는,
그리고 그 어르신이 왜 시위에 나오실 수 밖에 없었는지 이유는 쏙 빼고
엉뚱한 것들에 촛점을 맞추는 언론의 비겁함에 열받는
주변에 흔한 기성세대 중 하나일뿐이죠.
어쨌건..
엊그제 응팔에서 성동일이 나물봉지를 들고 오는 장면을 보고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아내랑 그 얘길 나누며 막걸리도 한잔 했구요.
참 팍팍한 세상이네요.
바다 건너 어디에선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어 나가고
우리는 언제까지 일제시대부터 질기게도 우리를 괴롭히는 반역의 무리들을 봐야만 하는지
우리나라가 다시 일어설 수 있기는 한건지..
그냥 그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아.. 점심시간 끝나가네요.
다시 오후근무 준비 해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