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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전국에서 올라온 농민들이 칼바람을 맞으면서 미국이 요구하는 쌀개방 국회비준 반대 집회를 갖고 있었습니다.
농촌의 현실을 반영하듯 참석자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 등 고령의 농민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참석자들은 맨바닥에 앉은 상태에서 집회를 갖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찰들이 밀고 들어와 방패로 찍고 곤봉으로 두들겨 패고, 무자비한 폭력만행을 자행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집회를 갖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에서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오르지 도망치는 수밖에.
대부분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인데 20대 경찰들의 힘을 당해낼 수도, 도망치는 것도 여의치 못했습니다.
당시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만행으로 인해 무려 600여 명의 농민들이 부상을 당했고, 2명의 농민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농민들 중, 광주 5.18민주항쟁을 몸소 경험했던 분들에 의하면 총만 안든 광주학살 그것이었다고 했답니다.
그렇다면 노무현정부는 왜 이토록 무자비한 만행을 자행했던 것일까요?
얼마 뒤에 부산에서 에이팩 회의가 있었고, 여기에 미국 대통령 부시가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이 원하는 '쌀개방'이라는 선물을 부시에게 바치기 위해서, 부시정부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노무현정부는 그토록 무자비한 만행을 자행했던 것이죠.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이 자행되던 그 시간, 국회 안에서는 비준안이 통과되었고,
비준안이 통과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노무현은 '비준안이 통과되어서 기쁘다는 말을 언론을 통해 밝혔습니다.
비준안이 통과되어 기쁘다는 그 시간, 농민들은 여의도에서 피흘리고 신음하면서 언론을 통해 그 소식을 전해 들었죠.
이후, 노무현정부의 폭력과 살농정책에 항거하여 여러 농민들이 자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