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Banner

예약없이 혼자 떠난 제주도 1박2일-5

pipi 조회수 : 2,809
작성일 : 2015-11-11 23:08:08

정말 너무너무 늦었지만 완결을 향해 달려봅니다.

변명을 해보자면
초여름 그렇게 충동적으로 제주도에 다녀오고 나서도
저는 더욱 더욱 더 디프레스 상태로 가을을 맞았다고만 말씀드립니다.
저의 경우 제주도 여행이 전혀 재충전의 시간은 아니었어요..
그냥 머릿속에 또 하나 낯선 그림 하나 그려진 정도입니다.

_____

다음 날 아침,
일곱 시 쯤 눈을 뜬 것 같아요.
완전 게으르게 움직였어요.
하지만 그래도 대충 차리고 나온 건 여덟 시.
밥 할 필요도 청소할 필요도 없는 코딱지만 한 방에서
차마 아침 티비 프로그램은 못보겠더군요.
짐을 챙겨 나왔습니다.
숙소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었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배차 시간도 꽤나 긴 것 같았고요.
저는 그냥 아침 식사나 하고 공항으로 가서 
다시 집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곳이니까요.
그래도 어젯밤 슬쩍 검색해 본 바,
천제연 폭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주상절리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거든요.
예전에 회사 후배의 제주도 여행담에서
악천후 속에 주상절리를 가서 
제대로 경치를 못 봤다는 말이 기억나기도 했습니다.
버스정류장의 안내판을 아무리 봐도 뭐가뭔지 모르겠다 싶을 때,
천제연 폭포 입구에 택시가 보입니다.
택시를 타고 주상절리로 갑니다.
주상절리까지는 걸어 갈 수 있는 거리라고도 하던데
아침 댓바람 혼자 걷기도 그랬고요.
또 이번 제주 여행의 택시 기사님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좋았어요.

주상절리에 도착하니 아직 입장 시간도 안 된대다가
비가 슬쩍슬쩍 내리고 있었습니다.
가는 비였지만 굵어질 것 같기도 하고...
걱정스러웠지만 저와 비슷하게 도착한 출입구 직원에게 표를 끊고
주상절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검은 현무암 해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주상절리는
전날 보았던 천제연 폭포에 비해 실망스러웠어요.
얼굴에 침 뱉는 것 같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요.
바다도, 검은 돌더미도, 평소 그토록 좋아하는 아침 시간도
다 엇박자를 이루는 순간이었습니다.
주상절리 구간이 무척 짧았던 것도 한 몫했구요.
그런데 다행히 밖으로 이어진 
월드컵 보조경기장 길을 따라 
산책코스가 있었습니다.
길은 무척 훌륭했구요.
다만 그 길은 주상절리 티켓이 없어도 갈 수 있는 그런 길이었는데
음, 비가 오고 있다고 했죠. 
우산없이 그냥 걸었어요.
월드컵경기장(그니까 아주 작은 보조경기장 같은 겁니다)에 다다르니
거기는 아무도 없었고
텅 비고, 막다른 곳이었습니다.
유럽의 작은 마을 축구장 같은 분위기였는데
사람 흔적이 있기를 바랐지만
텅, 텅 비어 있었습니다.
주상절리 비슷한 바다 아랫길이 있길래 내려가 보니
아무도 없는 가운데 해녀들이 잠깐 들리는듯한 표식의
작은 움막 같은 게 눈에 보입니다.
(음... 기억이 가물가물... 
어쨌거나 그날 아침 거기엔 저 밖에 없었으므로....)

월드컵 보조경기장을 빠져나오면서

내가 걸어온 길이 약간 비탈길었다는 걸 알았어요.

제 앞에 펼쳐진 주상절리를 향한 약간의 오르막에

어떤 여인이 혼자 걸어가고 있었답니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에 나오는 여자처럼 뚱뚱한 여자였는데요.

그녀는 우산이 있었어요.

저는 우산이 없었고요.

근데 저는 그녀가 저를 절대 돌아보지 않기를 바라며 걸었어요.

왜냐면... 그냥 무서웠거든요.

비오는 아침의 올레길은 진짜 무섭습니다.

운치있는 길이었지만 이미 뉴스로 접한 기타등등이 있어서요...

50미터 앞의 그녀가 그냥 돌아만 봐도 왠지 무서울 것 같은 그런 아침,

그 비오는 길에는 주먹만한 꽃이 핀 이름 모르는 나무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주상절리 매표소 앞으로 가면 괜찮겠지 하며 열심히 걸었답니다.


제주도는 원래 비가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분다는데요.

저는 충동적으로 갔고, 그게 7월인데

음... 날씨가 서울로 치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제주도로 치면 좋은 날이었나봐요.

주상절리 매표소 앞에서, 여전히 이른 아침인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비는 오고 이제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슬렁슬렁 드는데

텅 비어 있는 주차장만큼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주차 직원인 아저씨가 한 마디 하시더군요.

"어? 비는 오는데 바람은 안 분다."

그니까 그 말이 제주도는 워낙 바람이 심한데

비가 오면 더 심한데 오늘은

비가 와도 온순한 날이다...

이런 말 같았습니다.


- 한 편 더 써야 끝나겠네요. 

뜨문뜨문 쓰느라 뜬금없으실 분도 많으실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_-;;;

- 그냥 저도 오랜만, 혹은 거의 혼자 처음 여행이라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고픈 마음에 쓰는 여행기니까 

대충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IP : 175.213.xxx.170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음...
    '15.11.11 11:13 PM (222.238.xxx.125)

    밑에 지난 번에 올리신 글을 링크해주시면 찾아보기 더 좋을 것 같아요~~

  • 2. 돌멩이
    '15.11.11 11:30 PM (59.15.xxx.122)

    님 그거 아세요?
    글 굉장히 잘쓰세요. 소질있으시구요. 우울함떨쳐내시라고 드리는 말씀은 아니구요. .

    계속 연재부탁드려요
    대리만족이라도 하게요

  • 3. --
    '15.11.12 12:00 AM (58.65.xxx.32) - 삭제된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근데 디프레스 상태.. 우울감이나 우울한 상태라고 하면 글에 멋이 없어질라나요?

  • 4. --
    '15.11.12 12:03 AM (58.65.xxx.32) - 삭제된댓글

    그리고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그 여자가 살인마라도 되는 줄 알겠어요........

  • 5. jeniffer
    '15.11.12 12:27 AM (110.9.xxx.236)

    글을 읽으면서 스치는 생각...
    내가 후기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글 너무 좋아요. 같이 느낄 수 있어요.

  • 6. jeniffer
    '15.11.12 12:28 AM (110.9.xxx.236)

    페르난도 보테로의 여자 주인공! 전 딱 그림이 그려지는대요?

  • 7. 기다렸어요.
    '15.11.12 1:56 AM (39.120.xxx.5)

    오늘 2편이나 올려 주셨네요.
    글이 한 동안 안 올라와서 이젠 안 올려 주시나보다 했었어요.
    얼굴이 침을 뱉는듯한 비, 페르난도 보테로를 닮은 뒷 모습.. 딱 와 닿아요.
    다음 편도 읽으러 갑니다.

  • 8. ........
    '15.11.12 2:01 AM (180.230.xxx.129)

    나이들면서 책읽는 시간이 아까웠었어요. 필력없는 소설가가 의외로 많아서 뭔가 건질까 싶어 끝까지 읽다보면 아까운 시간만 보내고 마니까..한국에 이름있는 작가보다 원글님 글이 좋습니다. 어쩌면 묘사를 저렇게 할 수가 있죠? 원글님 시선을 따라 그대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574351 외고가고 싶어하는 아이,,,공부가 뭔지요 ㅠㅠ 7 ㅇㅇ 2016/07/07 2,541
574350 부동산 흐름에 대한 좋은 글이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14 .. 2016/07/07 5,126
574349 쇼미더머니 최고의 꽃미남 원 사진 올려요 16 주책이야 2016/07/07 2,825
574348 자살한 검사, 내 아들 이름은 김홍영입니다. 24 불쌍한 인생.. 2016/07/07 7,602
574347 한국 씨티은행 거래 많이 하면 미국에 이민가서 도움되나요? 3 궁금 2016/07/07 1,316
574346 . 4 두연 2016/07/07 774
574345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오니 한국이 정말 기회의 땅인것 맞아요. 100 .. 2016/07/07 49,032
574344 건성피부 흑설탕팩 후기 9 후기 2016/07/07 4,404
574343 산업디자인과 전망이 어떤가요? 4 미술전공 2016/07/07 1,902
574342 0cn 38 사기동대 재밌는데,보시는 분 없어요? 12 2016/07/07 1,818
574341 예민함..우울증약으로도 완화되나요? 2 ... 2016/07/07 1,460
574340 대중교통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미국 도시??(뉴욕, 샌프란 제외.. 12 미국 2016/07/07 1,379
574339 중학생 성적 여쭤봅니다. 15 은수 2016/07/07 2,320
574338 미국 갈때 달러 소지 한도 4 2016/07/07 4,240
574337 피자 만들때 생지 도우 사서 써 보신 분 계신가요? 5 문의 2016/07/07 1,160
574336 계란 후라이할때 너무 튀어서 불편하지 않나요? 6 계란 2016/07/07 3,736
574335 집에서 할수있는 근력운동 동영상 추천해주세요 4 유투 2016/07/07 1,337
574334 수납장이 서랍형과 박스형이 있는데 티셔츠류 넣으려고요. 1 남자애 방 2016/07/07 775
574333 예민한 남자와 사시는 분들 7 궁금 2016/07/07 11,522
574332 갑각류 알러지 떄문에 죽을뻔 했어요. 11 nn 2016/07/07 5,762
574331 밤 10시에 시어머니 전화... 40 황당 2016/07/07 8,283
574330 함부로 애뜻하게 이해안가는 부분 16 ㅈㅅㅈ 2016/07/07 3,992
574329 다시 태어나면 남자 키크고 운동신경 좋은 축구선수 6 축구선수 2016/07/07 2,032
574328 버터 네모로 잘라서 냉장실에 넣어뒀는데 군데군데 거뭇거뭇 ㅜㅜ 6 ㅠㅠ 2016/07/07 3,237
574327 납량특집-(박 대통령에게 할말을 해보자)과 세월호,범근뉴스 2 bluebe.. 2016/07/07 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