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아빠로부터 충격적인 얘기 듣고 하소연합니다.
저 어릴 때부터 몸이 유난히 약했어요. 아마 고등학교 가기 전까지 계속 병치레 했던 것 같아요. 초등 3학년까지 엄마 등에 업혀 병원 다녔으니 할 말 다 했죠. 지금도 매일 골골해요. 그래도 열심히 살아서 결혼도 하고 취직도 했어요. 하나뿐인 오빠는 외국에 있고 제가 늙고 아픈 부모님을 가까이에서 돌봐드리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항상 죄송했어요. 다른 집 자식들처럼 튼튼하고 야무지지 못해서 부모님을 힘들게 한다고 항상 죄책감을 갖고 살았어요. 성인이 된 지금도 부모님께 진 빚을 갚는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일하고 돈도 모으고 그랬어요.
그런데 오늘 저녁 아빠가 약주를 좀 하시더니 이런 얘기를 하시네요.
“너도 다 자랐으니 하는 얘긴데 너 엄마가 너 임신했을 때 약을 참 많이 먹었다. 없는 살림에 둘째까지 키울 여력이 없어서 널 지우려고.”
그 얘길 듣고 멘붕이 오더군요.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어요. 지금까지 난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회의감이 들었어요.
어릴 때 부모님을 너무 많이 고생시킨 죄책감 때문에 남편도, 아이도 둘째 순위에 놓고 오롯이 부모님께만 잘해드리려고 노력해왔는데...
몸이 너무 힘들 땐 왜 나를 낳으셨는지 부모님을 원망도 했지만 그래도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는데...
결국 내가 아프고 내 몸에 장애가 있는 건 부모님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었어요.
차라리 그때 약을 더 먹고 태어나게 만들지 말던지, 그렇게 낳고 키웠으면 지금 와서 그런 얘길 하시지 말던지. 저의 아빤 왜 그런 얘길 하셨을까요?
이젠 다 늙고 힘도 없는 엄마아빠 원망할 마음은 없어요.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이 참 허망하게 느껴져요.
내 잘못이 아니었는데 왜 난 항상 죄책감을 갖고 기를 못 펴고 살았는지,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 태어났으니 제 인생은 그냥 덤인거겠죠?
아빠가 한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툭 털어버리고 잊어버리기에는 너무 마음이 허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