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잊혀지는 기억력 때문에 부지런히 써야겠습니다.
해남을 떠나면서 생각해보니 결국 일지암은 못가보고 가네요...ㅎㅎ
해남에서점심 먹고 낮잠도 한숨 자고 출발한 터라 구례에 들어섰을 때는 해가 넘어갈려고 준비하는 그런 오후였습니다.. 예약한 숙소로 가다가 문득 보이는 이정표...“노.고.단”
백지연 앵커가 “노고단에서 백지연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눈앞을 스쳐가며... 노고단에서 지는 해를 봐야겠다는 욕구가 솟구쳤지요..
에라 저희는 생각할 것도 없이 노고단을 향합니다...
해가 지기전에... 노고단에 올라가야지요.. 거기서 석양을 보려면 말이죠...
헥헥헥... 꼬불꼬불 꾸불꾸불한 오르막길을 열심히 열심히 냅다 내달렸습니다...
다행히 해가 넘어가기전 노고단휴게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해가 넘어가는 지리산은 해가 저산을 넘어 다른 곳에 떠오르는 게 아니라 저 산속 어딘가로 숨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해를 품는 산.... 지리산은 정말 품의 크기가 다르더군요...
그렇게 턱걸이로 노고단의 일몰을 겨우겨우 보고... 어두워진 그 길을 다시 내려왔습니다...
하드트레이닝 운전교습 코스를 받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에고에고... 차도 힘들어 하고... 저도 힘들고...
다행히 아무일 없이 평지에 도착했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우리의 숙소는 참... 뭐라 말할 수 없는...
이런 곳도 있구나 싶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원래 모텔이었던 곳을 두 개의 방을 하나로 합쳐 주방시설을 넣어 만든 그런 펜션이었습니다.
이런 곳은 또 첨이네요...
그저 혈기왕성하고 패기넘치는 젊은이들이 밤새 술먹으며 지내다 가는 그런 숙소더라구요...
단체손님이 많다 보니 집기가 제자리에 있는 게 없더군요..
하지만 주인이 친절해서 참을 수 있었지요....
일단 저녁을 먹어야지요... 우리에겐 호박과 고추가 있지요 튀김가루도 있고..
샀으니 이걸 해먹고 가야되지 않을까요?
달랑 호박하고 고추만 넣고... 아까 대흥사 입구에서 손님이 너무 없던 옥수수할머니께 산 옥수수알을 까넣고... 후라이팬에 부침개를 합니다... 친구가 해줬어요.
뒤지개도 없어서 한수저씩 떠넣어서...그렇게..
부침개는 꿀맛입니다..
와인도 한잔씩 하고 피곤해피곤해를 외치며..
맛있는 저녁을 먹었습니다.... 이제 바깥잠을 잔지 7일째가 되어가니... 서서히 저희도 좀 지치나봅니다... 둘이 업어가도 모르게 곯아떨어져 잤습니다...
어제 친구가 부침개를 맛나게 해주었으니... 아침은 제가 북어국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일회용 북어국에 국물을 좀 넉넉히 붓고 (이게 좀 짜거든요...)어제 남은 애호박과 고추를 넣어 끓였더니 흠 해장에 아주 훌륭한 북어국이 되었습니다...
둘이 시원하다면서 국물을 몽땅 먹어치웠어요.
이제 오늘은 마지막 날이므로 남은 반찬은 다 정리하고 .. 설거지도 뽀득뽀득해서 짐을 싸 다시 출발합니다...
다소 역방향이긴 하지만... 섬진강을 즐겨야 하므로 구례에서 하동으로 갔다가 귀가하기로 했습니다...
펜션(모텔?) 사장님께 여쭈어보니 강 왼쪽길 보다는 오른쪽길이 차량통행이 적은편이라고 알려주시더라요... 불편했지만 사장님이 친절했던 숙소여 안녕!!
일단 왼쪽길을 달려보니 정말 차들이 많기도 하고 쌩쌩 속도들을 내네요...
그러고 보니 오늘이 주말이라 사람이 더 많은가 봅니다.
그렇다면 다리를 건너 오른쪽길로 가야지요.... 우리는 설렁설렁 느릿느릿파니까요...
건너와 보니 차량은 확실히 적은데... 강이 제대로 보이질 않네요... 흠 경치는 저쪽이 훨씬 좋군요.. 하지만 그렇게 속도를 내서 달릴 생각은 없으므로... 그냥 이길로 가기로 했습니다..
이상합니다... 이렇게 여행을 해보니... 분명히 그곳이 저희를 부르는 느낌이 있습니다...
왜냐면 국도변에 참으로 많은 마을들이 있는데... 이상하게 들어가고 싶은 길이 있거든요...
때론 마을 전경이 보일때도 있지만... 작은 길이 보일 뿐인데... 가고 싶을 때가 있더라구요...그런 길이 또 하나 있네요.. 가볼까? 이미 우린 그길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산자락에 기대어 펼쳐진 마을입니다... 올라가다 보니 두부라는 커다란 간판이 보입니다...
“저 두부를 사서 점심을 먹으면 좋겠다!” “근데 우리 반찬 다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데?”
제 머릿속에 떠오른 한가지 생각... 왕포마을에서 사온 아주 자잘한 새우로 담근 새우젓!
그걸로 두부와 점심을 먹는걸로 결정했습니다.
차를 세우고 두부한모만 파시라고 들어간 곳은
무농약콩으로 첨가제를 전혀 넣지 않고 옛방식으로 두부를 만드시는 곳이었습니다..
우린 정말 운이 좋은 편인 것 같습니다.
소매는 안하시는데... 저희가 이쁘므로 (그냥 이렇게 밀고 나가볼겁니다.. 에잇) 한모를 따끈하게 데워주시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햇반도 뎁혀주시공..
연세 지긋하신 여사장님은 자신이 만드는 두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신 분이었습니다.
근처에 밥먹을 만한 장소를 여쭈어보니... 길따라 높이 올라가면 마을에서 운영하는 펜션이 있다고 거기 마당에서 먹으라고 알려주시네요...
마을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보니 이곳도 감나무가 지천입니다... 감이 주렁주렁 열려 가지가 거의 찢어질 지경인 나무도 있습니다...
길 한쪽에 밤도 말리시고...
그런길 끝에는 황토로 지어놓으신 한옥펜션이 있었습니다...
정갈하고 깔끔한... 여기서도 자고 싶었답니다. 에공..
펜션에는 아무도 없고 마당에 고양이만 한 마리 오도마니 앉아 있더군요...
밥에 두부와 새우젓, 그리고 김뿐인 점심을 어찌나 맛나게 먹었는지...
점심을 먹고 마당에 드러누워 지리산과 섬진강을 머금은 하늘을 보았습니다...
푸르고 시린 가을 하늘이 저희를 굽어 내려봅니다..
늘어앉고 싶은 엉덩이를 일으켜 다시 하동으로 서서히 서서히 이동합니다.
마음이 넉넉해져서 콧노래가 절로 나오네요..
젊은 친구 둘이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게 보입니다..
차창을 내리고 파이팅을 외쳐주었습니다.. 청년들이 크게 감사합니다를 답해줍니다.
진정 그리하는 그대들의 젊음이 부럽소... 그런여행을 선택한 그대들을 무조건 지지하고 사랑하오 ...
이런 마음이 마구마구 피어오르며.. 심지어 저 친구들 불러서 맛난 커피한잔 뽑아 먹일까?
이런 생각까지...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이상한 아줌마들로 오해할 것 같아서요...
요즘엔 친절이 그냥 친절로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같은 곳을 여행하는 동지애는 그냥 파이팅 한마디에 실어보내는 걸로...
하동입구에서 저희는 다시 거꾸로 구례로 향해 옵니다... 아까 왔던 길의 반대편길로..
왜냐구요? 오늘 집에 가야하는 날이랍니다... 여러분..
반대편 길은 섬진강을 좀 더 찬찬히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행히 올라오는 차선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저기 보이는 저 모래톱에 가보고 싶다고... 저번에 왔을 때도 못내려가봤는데...”
친구가 말합니다... “그래 저기 가보구싶지.. 어딘가 내려가는 곳이 있을거야... 찾아보자..
근데 집에는 대체 언제 가냐“
오오 찾았습니다.. 저기로 내려가면 될 것 같네요... 차를 세우고 건너편으로 무단횡단하려는데 식당집 진돗개가 저희를 보고 마구 짖어댑니다...
“그렇게 무단횡단 하면 안돼! 위험해!” 그런 소리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횡단보도가 어디에도 안보이니 뭐 별 수 있나요... 건너는 수 밖에
건너가보니 대나무숲 산책로도 만들어놓고... 자그마한 차밭도 있고... 그곳을 지나니 드디어 모래톱입니다... 드넓게 펼쳐진 섬진강 하류를 드디어 마주 대할 수 있었습니다...
강에 비친 산과 하늘이 실물과 똑같아서 강도 두 개, 하늘도 두 개, 산도 두 개입니다...
섬진강에 오길 정말 잘했습니다...
정말 잘했습니다... 여길 못보고 올라갔음 후회할 뻔했습니다..
모래톱에서 한시간정도 앉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아쉬워 강가모래에서 예쁜 돌들을 주웠습니다...
까만색, 누런색, 하얀색, 줄무늬.......등등, 양쪽 바지주머니에 채워넣습니다.
이 돌들을 그릇에 담아놓고 섬진강을 마주했던 순간을 기억할 겁니다..
이렇게 쪼그려 앉아 돌들을 고르던 저의 모습과 그 순간의 제마음의 색깔도 기억할 겁니다.
다시 올라오니 아까 그녀석이 또 마구 짖어댑니다..
“미안해... 그치만 무사히 돌아왔잖아! 잘있어라”
차에 올라 이제는 미련을 모두 거두고 집으로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떠나기 싫지만... 또 살아내야 하는 제몫의 삶이 있으니까요...
이제 한 번 와봤으니 언제든 마음이 청하면 떠날 수 있을 거라 위로하면서...
고속도로를 타고 부지런히 북으로북으로... 향해 옵니다...
저희는 마치 긴 터널을 통해 현실세계로 돌아가는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그렇게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려 가족에게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열한시였습니다..
벌써 여행에서 돌아온지 9일이 지났습니다.
짐을 풀고, 여행가방을 정리해서 넣고, 그동안 썼던 경비를 정산하고,
다시 출근을 하고 식구들의 끼니를 챙기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치 어떤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여행지에서 느꼈던 순간의 감정과 장면들은 문득문득 제 눈앞에 스쳐갑니다...
행복한 8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