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둘의 차이는 크다. '북한의 비핵화'는 북핵 문제 해결만 겨냥한 것이지만, 한반도 비핵화에는 미국의 대북 핵 위협 해소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비가역적인'이라는 표현은 네오콘들이 즐겨 쓴 것으로 북한은 "패전국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라고 반발해 9.19 공동 성명에는 빠졌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표현의 차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북한의 비핵화'와 '비가역적인'이라는 표현은 이명박 정부 때 간헐적으로 사용되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 고착됐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은 가속화·고도화되고 있고 북한이 농축 우라늄 및 경수로 사업도 착수해 이를 되돌리기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북한의 책임도 크지만, 협상과 타협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상호 위협 감소' 정신을 한미 동맹이 저버린 데에도 있다.
이번 성명에서 가장 유감스러운 것은 '한반도 평화 체제'라는 단어를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는 점에 있다. 한미 정상 회담 역사상 첫 대북 성명이라면 이에 걸맞은 역사성과 미래지향성을 갖췄어야 했다. 그런데 노무현-조지 W. 부시 때에도 담긴 이 표현이 이번에도 담기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박근혜 정부 역시 평화 체제에 극히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로 인해 핵 협상의 시계는 9.19 공동 성명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것도 더 나빠진 형태로 말이다. 9.19 공동 성명 이전에 네오콘이 주도한 미국의 대북 정책은 선(先) 비핵화에 맞춰져 있었다. 이에 맞서 북한은 '선 평화 협정'을 요구했다. 한국과 중국이 양측의 간극을 조율해 동시 행동 원칙을 담은 것이 바로 9.19 공동 성명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한미 동맹은 또다시 '선 비핵화'로 회귀했고, 북한도 '선 평화 협정'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