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사람이 있긴 한데 얘기할 사람이 없습니다.
남편이라고 어떤 남자가 있는데 두 마디 이상 말을 나누기가 어렵네요.
가정 형편이 아주 어려웠지만 천사같이 착하디 착한 시부모님 밑에서 완전 까칠하게 자란 남자입니다.
단 한번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뭔가를 이룬 적도, 하려고도 안 합니다.
자나깨나 최고의 친구는 오직 텔레비전이며...세상에 불만이 너무 많습니다.
직장에 대한 불만, 뭘 못 이루거나, 사지 못한, 가지 못한 불만도 너무너무 많지만
그렇다고 계획을 갖고 준비하거나, 시도나 노력할 생각은 절대 안 합니다.
그냥 욕하고 매사에 분노할 뿐입니다.
어딜 가서 뭘 보자고 하면 티비로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며 굳이 피곤하게 고생해서 갈 필요 없다는 주의입니다.
그래서 아이한테 보여 주고 싶은 곳은 저 혼자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딜 같이 가도-그게 설사 아이 때문일지라도-원래 말한 시간보다 단 10분만 기다리게 해도 불같이 화를 내거나
아님 못 참고 전화를 끊고 가버립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쿵하고 내려 앉고 매사 너무 조마조마합니다.
제가 아주 가끔 당일 지방 출장이 있는 직업인데 아무리 밤늦게 와도 찾거나 연락하는 법도 없습니다.
갔다 와서 '거긴 어떠 어떠하더라~'라고 얘기를 시작하려고 하면
듣자마자 '니가 이상한 데 가서 그래'라고 하며 대화는 바로 끝이 납니다.
절대 뭘 물어보거나...오늘은 어떠했냐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처음으로 뭘 사 달라고 했다가 욕을 들었습니다. 10만원짜리였습니다.
11년전 아이 낳고 부부관계는 끝이 나서 지금까지...여러모로 노력했지만 그것도 잘 안 됐습니다.
병원에 가 보자고 했다고 길길이 날뛰며 분노해서 그것도 그만두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저한테 세련되고 이쁘다고 하는데 남편은 언제나 제가 항상 옷도 이상하게 입고 못 생겼다고 합니다.
시부모님 카드값 대느라(아님 다른 출처?) 결혼 후에 단 한 번도 월급 통장을 오픈하지 않았습니다.
같이 돈 합쳐서 관리하자고 몇 번 얘기했다가 불같이 화를 내서 포기했습니다.
아이 돌 전에 직장 동료랑 바람 초기에 들켜 제가 연락처 알고 찾아가서 파토냈는데
지금 아직도 연락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소소하게 생각나는 것들만 적습니다.
남편도 불만이 아주 많겠지요. 오늘은 그냥 제 입장에서 씁니다.
그간 여러 번 이렇게 사는 건 정말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친구나 친정에도 말할 수 없어서
출퇴근길 혼자 가끔 울었습니다.
아이한테 너무 미안하지만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저의 남은 생을 여기에서 접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지난 주말엔 아이랑 동네 산책하면서 무심코 긴 한숨을 내쉬었더니
아빠가 맨날 짜증내고 무섭게 해서 엄마가 너무 싫어서 그런거냐고 합니다.
아이한테만은 이런 모습은 보여서는 안 되는데 이미 들켰나 봐요.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제 삶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털어놓은 것만으로 해소될 수 있는 수준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그냥 나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드네요.
왜 이혼을 안 했냐 아님 너도 그만큼 상처를 주고 있을 거다 류의 돌은 던지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