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uffingtonpost.kr/2015/08/27/story_n_8047136.html?utm_hp_ref=tw
성소수자 엄마들의 이야기다. 자식이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을 하면, 엄마는 위기에 빠진다. ‘도대체 왜?’ 자문하고 자책하고 힐난하며 견디기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곁에 상담할 사람이 없다. 정확한 정보를 주고, 마음을 이해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간절히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모임에 나온 첫날, 1년 만에 잘 잤어요”
“게이(의) 엄마를 제일 만나고 싶었죠.” 올해 33살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하늘(59·별명)씨가 7년 전 그랬던 것처럼. 세월이 흘러 이제 하늘씨는 말한다. “아들들이 다 비슷하더라고요. 다른 엄마들을 만나보니 알겠어요. 타고나는 거구나. 어떤 전문 서적도 필요 없더라고요.”
19살 게이 아들을 둔 지인(46·별명)씨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 애보다 나이가 많은 동성애자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잘 살고 있는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그만큼 아들의 미래가 불안했다. 그는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조직한 ‘성소수자 가족모임’을 통해 하늘씨처럼 같은 처지의 엄마를 만났고, 친구사이 회원들을 통해서 아들의 미래를 보았다. “아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1년 동안 잠을 못 잤어요. 내가 잘못 키웠나 자책감이 컸죠. 모임에 나온 첫날, 1년 만에 잠이 잘 온 거예요.” 엄마는 안심과 함께 단잠을 잤다.
2011년 친구사이가 ‘성소수자 가족모임’을 시작한 무렵, 당연한 회의가 있었다. “한국에서 그게 가능할까?” 당시 친구사이에는 커밍아웃을 하고 가족과 갈등을 겪는 회원들이 있었다. 더불어 동성애자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가족도 있었다. 친구사이는 2011년11월 지보이스(G-Voice·게이합창단) 공연에 가족을 초대했다.
“호미가 이렇게 밝고 행복한 모습을 오늘 공연에서 처음 본 것 같아요. 호미가 정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고, 그만큼 폭넓은 인간관계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도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당시 모임 기록에 나오는 호미 어머니의 말이다. 이렇게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성소수자 가족모임을 만들었다. 박재경 전 친구사이 대표를 비롯한 활동가들의 오랜 노력의 결과다. ‘성소수자 가족모임’은 친구사이에서 이제 독립할 계획도 세운다. 가족모임 사람들은 행동하는 성소수자인권연대의 ‘성소수자 부모모임’에도 함께한다.
지난 8월7일 오후 4시, 서울 낙원동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성소수자 가족모임’의 하늘, 지인, 무애(44·별명)씨를 만났다. “어떻게 알게 됐나요?”라고 물었다. 자식의 커밍아웃은 대개 평온한 순간에 찾아오지 않는다. 아들이 이성애자 친구에 대한 열정으로 삶이 위기에 처한 순간, 따돌림을 당하다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순간에 엄마는 아들의 성정체성을 알게 됐다.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엄마는 아들을 살려야 한다. 아들의 안전보다 절박한 것은 없다.
그러나 성소수자는 이해받는 타자이고, 가족은 관용하는 주체여선 곤란하다. 오히려 이것은 관계의 문제다. 아들이 커밍아웃하는 순간에 ‘자식의 모든 것을 안다’는 모성 신화가 흔들린다. 엄마는 추궁하고 자책한다. “정말 몰랐냐?”고 물었다. 하늘씨가 답했다. “하나같이 (자식들은) 사인을 줬다고 하는데 정말 몰랐어요.” 무애씨가 덧붙였다. “세상에 오직 여자·남자가 있다고 배웠지, 성정체성이란 말을 누가 알아요?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엄마들은 자녀가 위기에 빠진 것처럼 보이면 “마음이 아픈가” 의심을 해보긴 했지만, ‘성소수자’라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보가 없으니 혹시나 하는 생각도 없었단 것이다. 여전한 암흑의 사회다.
“우리 애가 커밍아웃을 하는 순간에 지난 16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10초 만에 이해가 됐어요. ‘아, 네가 게이였구나.’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막은 적이 없는 쿨한 엄마한테도 아이가 커밍아웃을 못한 것이 이해가 안 됐어요. 그만큼 사회적 편견이 강하다는 거죠. 아이가 인터넷과 매체를 통해서 뼛속 깊이 편견을 알고 있었던 거예요.”
무애씨는 아들이 4B 연필로 눈썹을 그리면 화장품을 사주는 엄마였다. “화장하는 걸 숨기고 다니는 것 같았어요. 바닥만 보고 다니고. 제가 그랬죠. ‘네가 화장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고개를 못 들고 다니는 것이 문제다. 친구를 못 사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소통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그랬더니 아이가 커밍아웃을 하는 거예요.” 무애씨는 그리고 깨달았다. “인류가 봉인하고 진실을 은폐해온 문제라면 이건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 목숨이 달린 문제라고 느꼈거든요. ‘엄마도 알아볼 테니 너도 알아봐라’ 그랬죠.”
아들에게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삶을 살게 할 수는 없었다. 무애씨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천동설에 비유했다. “천동설이 진리이고 지동설이 부정됐던 시기가 길었죠. 제대로 정보를 알면 오해가 풀려요.” 그래서 그는 “봉인한 것에 대해 우리가 사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들에게 사과했다. “엄마가 바본가보다. 못 알아봐서 미안하다. 네가 인형을 사고 싶은데 그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하다.”
지인씨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동성애자가 되는 이유가 뭘까?”였다. 생물학적 원인일까, 환경적 요인일까. 상담심리학 석사인 그는 열심히 공부했다. “(성정체성을) 아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개신교 일부는 성소수자에게 ‘부모에게 불효한다’고 비난해요. 오히려 우리가 미안할 일인데 애들이 우리한테 미안해하고 있어요.”
그도 처음엔 청소년기 아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료를 찾고 사람을 만나며 알았다. “청소년 성소수자 47%가 자살 시도를 한다는 한국 통계가 있어요. 만약 선택이면 자살을 하겠어요? 그런데 부모까지 거부하고 내쫓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부모가 잘못해서 자식들이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그는 페이스북 등을 통해 성소수자 부모 상담을 하고 있다.
성소수자 당사자만큼 성소수자 가족은 동성애 혐오증에 고통받는다. ‘2015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에 손팻말을 들고 나온 이들을 보고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페이스북에 쓴 사람도 있었다. 성소수자 가족모임 제공
“개신교? 별로 신경 안 써요, 그 정도는 약하죠”
하늘씨는 파트너와 잘 사는 아들이 이제는 안심이 된다. “이제 인생의 황혼기거든요. 뭘 하고 살까 고민하죠. 여행을 많이 다닐까, 음식을 찾아다닐까. 저는 처음 나오는 (성소수자) 엄마들을 도와주고 살자고 정했어요. 내 삶의 주제는 그거예요.” 그렇게 아들의 커밍아웃을 통해 엄마도 성장했다. “제가 소외된 사람들을 살피며 산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아들을 통해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다는 걸 알았죠.”
어떤 편견도 감히 훼손하지 못하는 존엄이 있다. 오히려 그것은 정면으로 응시하는 이들에게 삶의 자양분이 된다. 커밍아웃하는 자녀들의 걱정보다 부모는 강하다. 그러나 인권운동에 나서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굳이 하시는 이유가 뭐냐”고 짓궂게 물었다. 무애씨가 바로 답했다. “지금까지 발언을 안 하니까 봉인해온 것 아니에요? 다들 왕따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어요. 사회적으로 성소수자를 왕따시키고 있잖아요. 더 큰 왕따를 하면서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죠.”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올해 퀴어문화축제에 함께했다. 서울광장 한켠에 홍보 부스를 차리고 행진에 나섰다. 지인씨는 지난해 혼자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갑자기 개신교 세력이 행진을 막아 눈물도 흘렸다. 올해도 퍼레이드에 함께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지만, 엄마의 팔뚝은 멍들었다. 누군가 때렸다. 지인씨의 손팻말을 경찰벽 너머 개신교 사람들이 낚아챘다. 팻말을 뺏기지 않으려 하다가 팔이 장벽을 넘어갔다. 지인씨는 “팔을 막 때려서 바로 펜스 위에 올라가봤다”며 “부모라는 팻말을 보고도 ‘정신병자, 정신병자’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시퍼렇게 멍든 팔 사진을 보여줬다.
무애씨는 담대했다. “저는 (개신교 세력에) 별로 신경 안 써요.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그 정도 반대는 약하죠. 조계종에서 성소수자 지지 법회를 열고, 가톨릭 신부님·수녀님들은 퍼레이드에 참여하잖아요. 저 정도 반대는 고맙구나 생각하죠.” 지인씨는 엄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성소수자 인권이 확산되면) 자식이 영향을 받는 줄 알고 반대하는 엄마들이 있어요. 동성애자가 이성애자가 되지 않듯이, 이성애자 자녀들이 영향을 받지 않아요.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엄마의 커밍아웃,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늘씨는 “친한 모임 사람들 대부분이 개신교 신자”라며 “마음을 나누는 친구 둘에게 먼저 아들 얘기를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지인씨도 “자꾸 말하고 싶어진다”며 “2시간을 정확한 정보로 설득하기 때문에 ‘아, 그렇구나’ 하게 만들어놓는다”고 말했다. 미국 동성결혼 법제화는 성소수자만의 성과가 아니다. 미국 전역에 조직된 성소수자 가족모임(PFLAG)이 인식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인씨는 “동성애 인권을 말하면 ‘너 동성애자이지?’라는 반발이 바로 나오지만, ‘동성애자 엄마예요’ 답하면 훨씬 잘 받아들인다”며 “한국에선 성소수자 가족이 설득하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경험을 전했다.
“‘동성애자 엄마예요’라 하면 훨씬 잘 받아들여요”
엄마의 걱정도 있다. “모임에 나오는 부모들은 오히려 편한 거예요. 지금 고민하는 가정이 더 힘든 거죠. 커밍아웃을 다룬 방송에는 가족끼리 갈등하는 얘기만 나와요. 우리 가족은 커밍아웃을 하고 오히려 유대가 끈끈해지고 행복해졌어요. 가족의 평화를 이루는 커밍아웃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무애씨는 “아들에게 오늘도 ‘너는 내 인생 최대의 선물’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자녀의 커밍아웃은 결코 죽고 사는 문제의 시작이 아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성소수자 가족모임’에 전화(070-4282-7943)하거나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즐거운 ‘설거지 수다’(집단상담·문의 친구사이 02-745-7942)에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