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지사 광복 70주년 경축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충남 도민과 이 자리를 빛내주신 독립 유공자 여러분,
올해는 뜻 깊은 광복 70주년입니다. 광복을 쟁취하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싸운 수많은 애국선열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1945년 8월 15일은 세계사의 중대 전환점이었습니다. 70년 전 오늘, 제국주의와 파시즘은 종식됐고, 전 세계 식민지배 질서도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우리 민족이 전 세계 평화세력의 일원으로서 이처럼 중대한 역사적 전환을 만들어 낸 주역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민족의 독립운동은 전 세계 식민지 저항 운동의 이정표였습니다. 3·1운동은 중국의 5.4 항일 운동과 인도·필리핀·베트남 독립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3·1운동의 비폭력 저항 정신은 약소민족 독립운동의 철학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은 전 세계 평화 세력의 일원으로서 제국주의를 굴복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장개석 총통으로부터 ‘중국 100만 대군이 못한 일’을 해냈다는 찬사를 받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 등지에서 끊임없이 벌어진 독립군의 무장투쟁,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승리를 위해 인도와 버마 등지에서 연합국과 펼친 공동 작전 등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의 노력은 아쉽게도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평화세력의 일원이었지만, 아직까지 8월 15일을 ‘승전일’로 부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광복을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닌 주어진 것으로 여겨왔습니다.
저는 이제 광복절을 자랑스러운 ‘승리의 날’로 기념하자고 제안합니다.
주권도 없는 식민지가 어떻게 승전국이 될 수 있냐고 누군가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를 보십시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는 맥없이 독일에 함락됐습니다. 하지만 레지스탕스의 치열한 저항과 망명정부의 외교적 노력으로 당당히 승전국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2차 대전 종전일을 승리의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프랑스보다 더 오랜 기간, 더 큰 희생을 치르며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습니다. 국제법상, 혹은 국제정치의 냉엄한 논리 때문에 우리나라가 2차 대전 승전국의 지위를 얻지 못했지만 우리 스스로 이 승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재평가해야 합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우리 후손들이 애국선열들이 만든 자랑스러운 이 역사를 ‘승리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말씀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날로부터 70년이 지났습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봅시다. 1945년으로부터 70년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조선의 강제 개항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조선은 굴욕적인 강화도조약을 맺고,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전락했습니다. 조선의 지배층 일부는 미국, 중국, 일본 등 강대국에 기대야 생존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140년이 지난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한반도와 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고, 중국은 ‘대국굴기’를 외치며 새로운 패권을 꿈꾸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러한 구도 속에서 미국과 손잡고 전쟁 수행이 가능한 소위 정상국가로 변모를 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미·중 G2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점점 곤혹스런 처지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최근 사드 배치와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 참여를 놓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진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앞으로도 이 같은 상황은 계속될 것입니다.
“한미 동맹이 최우선이다. 아니다 중국과 새로운 관계가 더 중요하다”19세기말 조선 지배층과 똑같은 논쟁으로 지금의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런 노선으로는 우리나라가 두 나라 모두에게 신뢰를 잃고 두 대륙판 사이에 끼어 허리가 꺾이는 불행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관점을 바꾸고 새로운 비전을 세워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두 나라가 서로를 잠재적 적국으로 여기지 않고 대결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새로운 21세기 비전이 필요합니다.
한반도와 아시아가 유럽과 같은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꿈을 키워야 합니다. 돈과 사람, 상품이 자유롭게 오고가는 하나의 시장, 집단안보체제에 기반을 둔 군사적 협력, 높은 수준의 외교적 협력으로 EU수준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그 미래를 준비합시다.
우리가 ‘아시아 평화 공동체’의 비전을 세우고 먼저 앞장섭시다.
유럽과 역사적, 경제적 상황이 다르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시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제 개인의 생각이나 주장이 아닙니다. 조국 광복과 전 세계 평화세력의 승리를 위해 피 흘렸던 수많은 독립 선열들의 정신이고, 철학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미 100 여 년 전 동양평화사상을 통해 현재의 유럽연합과 유사한 평화공동체 방안을 제시하신 바 있습니다. 한·중·일 3개국의 상설협의체를 만들고 경제, 군사 공동체로 만들자는 대담한 제안이었습니다.
저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사상이 ‘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상의 토대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이 원대한 꿈의 견인차가 되자고 제안합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충남 도민 여러분!
‘아시아 평화 공동체’는 한반도 통일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한반도 통일이 우리 한민족의 재결합이라는 의미에 머무른다면 주변 강대국들의 적극적 지지를 얻기 어렵습니다. 한반도 통일이 아시아 평화와 공동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한민족이 통일되면 인구 7,600만 명의 강대국이 됩니다. 인구 규모로 영국이나 프랑스를 뛰어넘는 단일 민족국가입니다. 주변국들이 잠재적 위협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통일의 관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남북통일이 ‘아시아 평화 공동체’라는 퍼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남과 북이 아시아 단일 시장과 집단 안보 체제 형성에 함께 노력하고,‘아시아 평화 공동체’ 형성의 중심에 선다면 주변국들이 남북통일을 지지할 것입니다. 한반도 통일을 아시아의 번영과 평화를 위한 중요 과제로 인식할 것입니다.
독일은 유럽 공동체(EC)의 우산 아래에서 통일이 유럽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주변국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우리도‘아시아 평화 공동체’를 통해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허리가 잘린 슬픈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통일을 위해 우리는 안팎으로 쉽지 않은 과제를 풀어 나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20세기 식 낡은 진보·보수의 이념갈등을 끝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종북과 친일이라는 원색적인 말로 비난하고 분열한다면 한반도 통일은 물론 아시아 평화 공동체의 실현도 불가능합니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 진보와 보수는 모두 작은 지류에 불과합니다. 나만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부질없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보십시오.‘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그 문장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정통성 논쟁이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 20세기 낡은 이념갈등을 끝내고, 21세기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진보도 새로워지고, 보수도 새로워져서 서로 협력하고 단결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자고 제안 드립니다.
둘째, 우리는 좀 더 주도적으로 북한과 대화해야 합니다.
“대화는 필요 없다. 북한을 고립시켜 붕괴를 유도하자”는 일부의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험한 생각입니다. 북한의 반발은 차치하더라도, 주변국들과 국제정세가 이런 흡수통일 상황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대북봉쇄 흡수통일론은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을 부추길 뿐입니다.
결국 대화가 답입니다. 북한을 대화채널로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때로는 북한에게 양보하고 무리하다싶은 요구들마저도 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퍼주기 아니냐?”,“종북 아니냐?”같은 대안 없는 비판만 반복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물론 북한도 변해야 합니다. 북한은 그동안 믿을 수 없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북한은 어떤 경우라도 무력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 지금까지 북한이 보인 모습은 남북관계는 물론 북한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북은 7.4 공동성명과 이어진 후속합의들을 통해 적대적 대결을 중단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남북 모두 약속을 성실히 이행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대화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 한반도 시련의 역사와 분단을 극복하는 일,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주도적으로 남북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저는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세 번째로 저는 미국이 평화로운 21세기를 위해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인류는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 중심에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역할이 있었습니다. 저는 20세기에 이어서 21세기에도 미국이 전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 수호 국가로서 자기 역할을 다해주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이제 미국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세계화로 인해 모든 국가들이 서로에게 의지해야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국가 간 협력 없이 어떤 국가도 번영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 일본, 러시아, 한국 등 주요 국가들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변화된 세계 질서에 걸맞은 미국의 리더십은 평화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이를 선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동북아 정세는 평화와 협력보다는 경쟁과 갈등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20세기 식 안보 전략에 기초해서 충돌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상대를 잠재적 적국으로 상정하고 대결을 벌인다면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고, 이 지역 모든 국가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에게 제안합니다. 미국도 한·중·일 3국과 함께 ‘아시아 평화 공동체’의 일원으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21세기 세계 경제의 중심인 아시아에 평화가 유지될 때 미국의 전략적 이익도 극대화될 것입니다.
이것이 한·미동맹 70년의 우정, 그리고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두 나라의 공동목표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웰링턴 국립묘지에 묻힌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목숨 바쳐 싸웠던 가치도 바로 ‘평화와 민주주의 수호’였습니다. 아시아 평화번영을 위한 21세기 미국의 새로운 역할을 기대합니다.
친애하는 충남도민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서 우리 충청남도가 앞장서서 이 시대적 과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합니다. 충청남도는 평화적인 교류를 통해 동북아 공동 번영을 이끈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유네스코는 백제 역사 유적을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부여, 공주, 익산에 산재한 백제 유적이 고대 동북아 문화 교류의 생생한 증거라고 전 세계가 평가했습니다. 예로부터 충남은 평화 교류의 중심지였습니다. 중국의 문물은 백제로 건너와 꽃을 피웠고, 다시 일본으로 전해져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무력이 아닌 문화, 고대 아시아 시민들의 교류의 힘이 한·중·일 고대 3국의 공동 번영을 이끌었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아시아 평화 공동체의 모습도 그러해야 합니다.
충청남도는 민선 6기 1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선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는 바로 충남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충남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자치분권과 행정, 농업 혁신을 선도할 것입니다. 또 새로운 성장 동력과 행복한 삶의 해법을 찾는데도 앞장설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충청남도는 분단 극복과 아시아 평화 공동체의 시대적 과제를 선도적으로 풀어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충청남도는 올해 안에 ‘환황해시대 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어‘환황해 포럼’을 개최합니다.‘평화’를 주제로 각국의 지방정부 지도자들과 학자, 언론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장이 열릴 것입니다. 또 충청남도의 환황해 경제비전을 구체화시키고 충청남도의 서해안이 환황해 시대 평화와 공동 번영의 바다가 될 수 있도록 충남 도정을 집중해 나갈 것입니다.
전 세계 평화세력과 한민족의 독립전쟁이 승리한 날! 광복 70주년!
우리 충청남도는 새로운 다짐을 합니다.
새로운 아시아 평화 공동체와 통일의 첫발을 충청남도가 앞장서서 내딛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과 충청남도 도민들께서도 한마음으로 응원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하늘에 계신 애국열사, 애국선열들이시여. 우리들의 이 길을 굽어 살펴 주소서.
감사합니다.
2015년 8월 15일 충남도지사 안희정
이걸 조금 전에야 봤는데...
개인적으로는 대통령의 경축사보다 나은 도지사의 경축사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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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걸 감당하며
역사 앞에 이름 없이 사라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조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가 있다.
- 박시백, ˝조선왕조실록˝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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