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의 정석>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사이버팀 임XX입니다.
먼저 이런 일로 연락드리게된 점 송구합니다. 아시다시피 최근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이태리 해킹팀과 저희와의 관계에 대해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단순한 해킹팀으로부터의 프로그램 구매 의혹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 측 자료를 파기하여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레노보 노트북을 이용한 개표 관리와 관한 정보가 이미 새나간듯 합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정보원 자체의 파멸밖에 없습니다.
일단 제가 추진했던 이태리 해킹팀과의 거래 내역은 전부 파기하였습니다. 특히 구매를 위한 기안서류나 결재서류, 송금확인증 등은 완전히 폐기하였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시 해외 송금은 농협 내곡동 지점에서 이루어졌으므로 가급적 신속하게 농협 측 협조를 얻어 송금 내역 삭제를 대신 요청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말씀드린 레노보 노트북 사건의 경우 일부 실행 파일이 해킹되어 빠져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가급적 이와 관련한 모든 책임은 저 개인의 테스트로 몰아가시는 것이 정보원의 입장에서 유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년간의 정보원 생활은 참 다난하였습니다. 철모르던 시기에 입원하여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변화도 많았지만, 국가를 위한다는 충성심은 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먼자 가는 입장에서 두고가는 가족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이제 큰 애가 고등학교에 진학해 한창 교육비면 뭐며 쓰임이 늘어날 때 책임지지 못하고 가는 가장으로서 마음이 아픕니다. 가급적 팀장님께서 저희 가족들의 후사를 조금이라도 돌봐주신다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그 동안 모자란 저를 격려해주시고 일으켜주신 팀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원장님, 차장님에게도 안부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다음부터 가짜 유서 쓸 일 있으면 나한테 부탁해라, 싸게 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