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70년대 초반에 살던 동네에 가봤어요.
칼라사진 한장 남아 있는데 산동네라는 것만 기억하구여.
20년 전에 함 가봤는데 기억력에 의존해서는 도저히 못찾겠더라고요.
동네 입구가 아파트 촌으로 바뀌고, 올라가는 골목길을 못찾아서 도저히 못찾겠다 싶더군요.
이번에 작정하고 주민센터 가서 주소 확인하고 네비 들고 찾아가도
40 몇년동안 주소를 몇번이나 바꿔서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던데
50년씩 사신 터줏대감들 덕분에
옛 살던 집이랑, 엄마랑 손잡고 매일 다니던 시장 길을 다 돌아봤네요.
어릴 때 멀고 멀었어요. 그 시장 가던 길이......
동네 초입에 어릴 때 최고로 좋은 집이라고 생각했던 집이
일본식 집인데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던 게 놀라웠구요.
우리가 살던 집 골목은 햇볕이 잘 들어오고 사진 속 정경보다 훨씬 좋아보였답니다.
아 동네는 어려운 곳이지만, 밝은 집 모습 보니 좋았구 부모님께 감사한 맘도 들었답니다.
시장 갔던 샛길이라 추정되는 사람 한 명 지나다닐 수 있는 아주 작은 골목을 지나가는데
계단을 보니까 어릴 때 다닌 길 같다는 심증이 가더군요.
어릴 때 지나다니면서 무서워했던 난간 옆 거리로 추정된 길도 찾았구여.
--그 길 때문에 자라면서 항상 떨어져 죽을까 무서워하는 꿈을 많이 꾸었거든요.
저의 고소공포증이 그때 생긴 게 아닐까요.
내려오면서 성당의 쪽문을 보는데 어릴 때 수녀님들이 비둘기 모이 주시던 거
그 쪽문과 함께 기억이 나는 거여요. 45년이나 되었는데......
회색의 약간 무서웠던 성당 건물은 주황색으로 화사하니 바뀌었더군요.
성당의 철제 난간도 낯설지 않았고요.
시장 입구에는 어묵파는 곳, 플라스틱 파는 곳 그대로 다 있더군요.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게 다 기억이 난다는 게 놀라웠구여.
엄마가 그 산동네에서 그 "멀고 먼" 시장 길을 4-5살이었던
절 데리고 매일 다닌 게 저한테는 좋았던 건지 모르겠어요.
제가 닭을 안먹거든요.
언제가 엄마가 이런 말 한적 있어요. 네다섯살 때 제가 닭을 너무 좋아해서혼자서 한마리 다 먹은 적이 있다고요.
좋아하는 거 알아도 가난해서 닭을 사줄 수 없었는데, 어느날 크더니 닭은 커녕, 달걀도 안먹는다고요.
너무 먹고 싶어했는데 못먹으니까 그렇게 된 거 아니냐고......
놀라운 건, 제 기억 속에 엄마 옆에서 신나서 부엌에서 뭔가 익기만 기다린 기억이 머리에 있거든요.
그게 닭 삶던 날이었나봐요. 막상 닭 먹은 기억은 없구여.
어린 게 닭먹는다고 기다림이 신났었나봐요^.^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에 가보고 오니 여러 생각이 교차하네요.
초등 들어가기 전에 평지의 집으로 이사가서
동생들은 산동네에서 우리가 살았던 것 모른답니다....
미로의 하나를 해결한 기분이 듭니다.
마음 속 터널 하나, 숙제 하나를 끝낸 기분이 듭니다.
내 기억 속 눈깔사탕 팔던 가게는 결국 못찾았지만.....
**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초량성당 윗동네입니다.
혹시 저처럼 찾아가실 분 계시면
주소와 네비에 의존하셔서 가시길 권해드립니다.
동네 경찰지구대 가시면 도와주시구여.
따뜻한 말씀 남겨두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후기: 엄마랑 옛 집에 같이 한번 더 갔어요.
초량성당에서 불과 10분도 안걸리는 거리인데
예전에는 거의 계단이라서 멀고먼 길이었나 봅니다.
그 길이 포장도로로 바뀌어서 저는 기억을 못하는 거구여.
엄마도 첨에는 알아보지 못한 옛날 우리집(터).
정동문에 초록간문의 집은 집터로 남아있었어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그 집터가 참 좋던데요.
엄마가 여기가 대문이었다 하시니
대문과 마당을 지나가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옆에 물을 양동이에 팔던 집이 세월을 넘어서 그대로 남아있어서
어릴 때 물 산다고 서있었던 기억이 나더군요.
엄마가 물 몇동이에 5원인가 10원이라고 하셨는데
가만 생각하니 집에 수도가 없었나 싶기도 하네요.
여쭤봐야 할 것 같아요.
엄마의 말로 그 옛날 수도물 살려고 줄서 있던 기억이 나는 것도
참 놀라워요.
이번에 "도로"라는 게 참 중요하구나 느꼈어요.
엄마가 좁은 계단길이었다고 한 곳들이
도로로 변해서 제가 기억을 못한 거더라고요.
옛날 집들이 40년의 시간을 넘어서 이직 남아있는 걸
엄마가 알아채시더군요.
그러나, 집 바로 주위를 빼고는 많이 바뀌어서
잘 모르겠다 하시더라고요.
한장 있는 칼라 사진이 우중충해서
어떤 동네일지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있었는데
집 앞이 연탄집이 있어서 그랬나봐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집터가 좋은 기운을 내고 있었고
집 주위가 밝고 길이 넓어서 마음이 좋네요.
집에 먹을 게 많아서 사람들이 우리집에 늘 있었다고.
그때 동네 아짐들은 XX네 요리 잘하니까 오늘을 뭘 해봐라, 뭘 해봐라 하셔서
손 큰 엄마가 집에서 수제비, 칼국수 같은 거 먹을 것 만드시고
아짐들이 우리 집에서 음식 많이 나눠 드셨다고 하더군요.
엄마는 옛날에 알던 사람 한 사람도 못만나서
섭하신 듯 했네요.
45년 전만 해도 먹고 사는 게 다같이 힘든 시절이 있었나봅니다.
우리는 먹을 게 항상 풍족했다,라고 말씀하시는데서
전쟁을 겪은 엄마세대의 의식에는 굶는다는 게 항상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 읽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라고
세상은 발전하고
우리의 의식도 확장되나 봅니다.
1. ㅇㅇ
'15.7.13 9:13 PM (182.224.xxx.96)와...저도 해보고 싶은 일중에 하나가 어린시절 보낸 동네 찾아가는거예요.
전 70년대 중반에 산위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네요.
저도 빨리 가보고 싶어요.2. 저도 부산.
'15.7.13 9:16 PM (49.50.xxx.237)부산 어디쯤일까 궁금하네요.
꼭 우리동네같아요.3. ++
'15.7.13 9:18 PM (118.139.xxx.89)저도 6-7살때 였던 것 같은데 집앞에 넓은 갈대밭같은 곳이 있었는데 해질 무렵 진짜 진짜 붉은 노을이 아직도 기억 나요...그후론 그렇게 붉은 노을을 본 적이 없네요..
정말 그 시절로 딱 한번만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 같아요...
그 시절에 살았던게 행운같이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모두 행복합시다.4. oops
'15.7.13 9:20 PM (121.175.xxx.80)박완서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만나던 아련한 꿈결같은 풍경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글이네요^^
딱 원글님만할 때 제가 살았던 부산 토성동 산동네가 너무나 그립습니다.5. 궁금하네요~ㅎㅎ
'15.7.13 9:28 PM (101.250.xxx.46)저도 어느 동네인지 궁금하네요~
저는 40년 전에 동대신동에 살았었는데
어렴풋이 기억나는 곳이 몇군데 있긴 해요
높낮이가 막 지멋대로인 돌계단, 손잡이는 철봉 같은걸로 무심하게 박혀있었구요
커다란 돌모양이 그대로 드러나있는 벽, 댐장이 넝쿨.. 녹이 많은 슨 철문집
좁은 골목과 초록색 철대문들, 개가 짖는 소리.. ㅎㅎㅎ
근데 지금은 다 사라졌을거 같아요 ㅎㅎ
언제 한번 엄마랑 같이 가보고 싶은데
부산에서 너무 멀리 살고 있네요
부산. 가고 싶어요.. 나이들면 꼭 내려가서 살고 싶어요..6. 궁금하네요~ㅎㅎ
'15.7.13 9:29 PM (101.250.xxx.46)아. 또 하나 정확한 기억이 있네요~
우리 동네 가게 이름이 버드나무 상회였어요~ㅎㅎ7. 원글님
'15.7.13 9:31 PM (122.36.xxx.80)너무 아름다운분이세요
이밤에 맘이 짠해지네요
저에게도 원글님같은 감성이 남아있다면8. 부산~
'15.7.13 9:31 PM (39.113.xxx.188)저도 궁금해지네요. 초량동, 수정동? 아직도 옛모습이 남아있는 곳이 어딜지?
9. 거가 어댕교??
'15.7.13 9:32 PM (118.47.xxx.161)나두 부산 문현동 찿아가봐야 하는데..
성동초등학교도 가 보고 싶고..
아.. 옛날이여.. ㅋ10. ++
'15.7.13 9:34 PM (118.139.xxx.89)진짜 박완서님 소설 열심히 읽었던 생각이 나네요...12-13년전 더운 여름날에...
아웅.....진짜 세월이 빠르네요....11. 전
'15.7.13 9:36 PM (124.80.xxx.40)3살때부터 엄청나게 기억해요
지금도 눈앞에 다 그려질 정도에요
밤나무 위치까지도요
그곳은 그땐 오지였는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겠지만
다시 가봐야지 하면서도 쉽게 못가네요
사실 지금 고향에서도 가까운데 그래도
잘 안가져요
언제 가보긴 할꺼에요 ㅎㅎ12. ㅇㅇ
'15.7.13 9:58 PM (122.36.xxx.80)아직어린 동생들과
가난하지만 건강하고 젊었었던 부모님이
사무치게 그리워
전 못찾아가겠어요
아 어쩌다가 나는 이런 중년을 맞고 있는지13. ...
'15.7.13 9:58 PM (223.62.xxx.11)혹시 좌천동 아닐까 했는데 초량이었군요.. 읽어보니 부산 동구같더라구요.. 저는 부산 토박이는 아니지만 회사가 그 즈음이라 점심먹고 산책삼아 몇 번 올라가다 길 잃을까 무서워 내려오곤 했어요.. 지금도 아주 정겨운 동네랍니다~~
14. 아 옛날이여
'15.7.13 10:52 PM (182.213.xxx.79)반갑네요 원글님 우리 비슷한 나이인것 같아요. 저 65년 뱀띠...
초량성당이면 부산고 쪽 인가요? 아님 민주공원아래쪽?
하여간 그주변 산복도로 근처엔 지금도 가구수가 어마어마하죠.
수정동 경남여고 나왔는데 창밖 저멀리(아마도 초량지난 어드메...) 산복도로를 돌아나오던 차들을 눈으로 쫓느라 수업들 허탕 친게 기억나요 ㅎ
글고 저위의 어느님, 저 문현동 살아요.
성동초 최근에 리모델링 했어요. 완전히 다 바뀌어서.. 뭔 신도시 초등학교삘 납니다^^
부산 여기저기 질문하시면 아는대로 대답해 드리고 싶은 오지랖 이거뭐여...^^15. ditto
'15.7.13 11:39 PM (218.54.xxx.206) - 삭제된댓글저도 가끔 어릴 적 동네를 스쳐지나요 그럴 때면 가던 길 멈추고 저 골목으로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는데 뭐가 그리 바빴던지 아직 실천을 못하고 있어요 저도 원글님 나이 정도 되어야 그럴 마음의 여유가 생길까요...
16. 우와 ~
'15.7.13 11:39 PM (117.111.xxx.200)글 읽는 도중에 자꾸초량 윗동네가 생각나던데 마지막에 보니 그곳이 맞군요 ㅎㅎ 그 동네에서 제법 살았습니다 몇년 전까지
17. ㆍㆍㆍ
'15.7.13 11:46 PM (211.204.xxx.97)글읽으며 내어린 추억이랑 겹쳐서 깜짝놀랐는데 비슷한 동네군요
전 산복도로윗쪽 동네
수정동에서 살았거든요18. 노랑
'15.7.13 11:48 PM (175.121.xxx.225)내가 살던 하야리아 부대옆 경마장이란 동넨가 했네요^^
저도 70년대 중반 다니던. 중학교에 몇년전 가 보았어요
점심시간에 철조망 담 넘어 구멍가게에서 생엿 사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친구들도 생각나서 가슴이 아렸어요.
다시 돌아오지 못할날들이 그립네요ㅠㅠ19. ...
'15.7.13 11:49 PM (223.62.xxx.188)저는 좌천동 산동네.
저랑 같은 동네분들 있으신가봐요.
저도 6살 언저리 가물 가물 기억의 언저리를
어느날인가 꼭 찾아가보리라 늘 결심.
미성극장, 동네 초입, 수정국민학교 전부 기억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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